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진문화연구소 Jul 10. 2020

[15호] 나루의 발견_이질적공간

                 

Space| 나루의 발견 #39

이질적공간


불편함을 마주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오는 장소에서 느끼는 ‘낯섦’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질적이고 생경하지만 결국 익숙함의 시작은 낯선 모양. 저마다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비로소 나의 길을 찾을 수 있다.    


광진구에는 기분 좋은 낯섦 속으로 힘차게 발을 내딛는 곳이 있다. 바로 ‘이질적공간’과 ‘자양스테이션’이다. 젊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위한 대안의 예술 쉼터를 꿈꾸는 ‘이질적공간’부터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클래식화를 외치며, 다양한 예술 장르 간의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자양스테이션’까지. ‘낯섦’의 지속 가능성을 믿고, 시도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두 곳을 만나보자.    

       

‘이질적공간’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린다.

‘이질적공간’은 <잔나비의 묘한 계책>이라는 예술 단체가 올해 2월에 오픈한 공간이다. 청년 예술가들이 비용 부담 없이 마음 편히 창작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간을 마련했다. 공간은 전시 및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 생각’, 연습실로 사용되는 ‘공간: 움직임’, 이렇게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질적공간’이라는 이름은 단어 그대로 관객들에게 이질적인 느낌으로 항상 새롭게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과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의 가치가 높았으면 하는 ‘이 질적인 공간’이라는 중의적인 뜻을 담고 있다.    


중의적인 뜻까지 담고 있었다니. 너무 멋진 것 같다. (웃음) ‘이질적공간’을 소개하며 “젊은 예술가들이 마음 편히 창작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공간을 마련하게 된 계기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이질적공간’을 꾸리기 전, 독립 안무가로 활동했었는데, 공연을 올리기 위해 대관을 하다보면 셋업과 철수 시간에 쫓기기 일쑤였다. 이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나의 공간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기분이 들더라. 오랫동안 나의 작품을 지속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자 예술가와 관객 모두가 자유로운 공간이 절실헀다. 공연이 끝나고 모두가 무대를 충분히 느끼고 돌아갈 수 있게 말이다. ‘이질적공간’을 오픈하고부터는 지인, 선후배를 비롯해 공간이 필요한 예술가들에게 무상으로 연습실을 대관해 주고 있다. 물론 대관료를 지불하겠다고 하면 굳이 말리지는 않는다. (웃음)    


광진구 외에도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지역이 많은데 특별히 광진구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대학시절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광진구에 머물고 있는데, 아무래도 익숙함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작년 초, ‘이질적공간’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육사이십사(6424)‘라는 공간을 자양 전통시장에서 잠시 운영했었는데 이것이 큰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월세 60만원에 4개월. 총 240만원으로 공간을 운영해보는 프로젝트였는데, 시장 한복판 지하에 작은 공연장을 만들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들이 많이 남아서 더욱이 광진구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예술가와 관객이 모일
  조건이 충분하다.    


처음 공간을 준비할 때 “이미 광진구에는 연습실이 많은데, 왜 그곳에 자리 잡으려 하느냐”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광진구에 있는 예술대학만 봐도 적지 않았다. 건국대학교, 세종대학교, 선화예술고등학교까지. 쏟아져 나오는 문화자원이 충분하다고 느껴졌고, 언제든지 붐이 일어날 수 있는 준비가 충분한 지역이라고 생각되어 광진구를 선택했다.    


‘이질적공간’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궁금하다.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코로나19의 여파로 현재는 공연보다는 대관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관람하는 오프라인 공연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지 않나? (웃음) 그래서 요즘은 ‘이질적공간’을 일종의 예술 쉼터와 같은 곳으로 성격을 바꿔보려고 시도 중이다. 우선 기존에 가지고 있는 공연 레퍼토리를 온라인 콘텐츠로 제작하려고 하는데, ‘이질적공간’을 배경으로 촬영한 후 가능하다면 VR(Virtual Reality) 기술까지 도입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외에도 <잔나비와 묘한 계책>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댄스 필름’ 영상도 제작하고 있다. 과거에 2년 정도 촬영감독으로 활동하며, 독립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데, 미흡했던 점들이 많아 아쉬움이 남더라. 언제가 한 번 더 영상 작업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준비 과정 삼아 틈틈이 제작 중이다.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획이 샘솟는 공간인 것 같다. 앞으로의 ‘이질적공간’이 기대된다. 공간을 꾸리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간의 모든 시공을 셀프로 진행했다. 우리 중 누구 하나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그러다보니 생각보다 기간도 오래 걸리고, 어려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무를 자르고 못질을 하고 페인트를 칠하면서 일주일이면 하겠거니 짐작했던 작업들이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자재가 들어오던 날이었는데, 이 작은 공간에 그렇게 많은 자재가 필요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 하루 종일 계단을 오르내리며 짐을 정리하다 집에 돌아가기 일쑤였는데,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참 뿌듯한 기억인 것 같다.    


말씀을 듣다보니 예술단체 <잔나비의 묘한 계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궁금해진다. 단체명도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웃음) 단체명이나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잔나비의 묘한 계책>은 구성원들의 띠를 의미한다. 92년생 잔나비(원숭이)와 87년생 묘(토끼), 93년생 계(닭)까지 이렇게 총 세 명이다. ‘묘한’은 영화음악을 전공했고, ‘잔나비’와 ‘계책’은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계책’은 바로 나다. (웃음) 묘한과는 몇 해 전 마포구 서교동의 위치한 어느 예술가 작업실에서 처음 만났는데, 작품을 함께 준비하면서 서로 합이 잘 맞는다고 느꼈다. 내 작품에 들어가는 음악은 모두 ‘묘한’이 전담하고 있을 정도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게 되었고, ‘잔나비’와는 사실 남매 사이다. (웃음) 친누나인데, 같은 분야를 전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활동이 많아졌다. 아울러 ‘육사이십사(6424) 때부터 현재 ’이질적공간‘까지 모든 전시들을 담당해 기획/운영해주고 있는 팽지현 작가도 빼먹을 수 없는 일원이다.    


남매 무용수라니 굉장히 놀랍다. 그렇다면 대표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본격적인 시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시작한 편인데, 그때 이미 누나는 무용을 전공하고 있었다. 누나가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며 여러 번 권유했었는데, 당시 정서상 남자가 무용을 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많아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 (웃음) 그러던 어느 날 누나의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함께 출연했던 남자 무용수가 너무 멋있는 것이 아닌가. ‘남자가 무용을 해도 멋있구나!’하는 내 안의 편견을 깨뜨려준 순간이었다. 그때를 계기로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여담으로 항상 누나에게 내 인생 책임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웃음)    


예술가로서, 그리고 ‘이질적공간’ 대표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같이 나아갈 동료들과 주변 지인들, 아직은 모르는 미래의 내 사람들과 더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고민하고 싶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계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를 새로운 시작이라고 보면 좋겠다. 대중들이 온라인으로 공연을 찾아보는 시대가 열린 것처럼 말이다. 주변 동료들이 이 부분을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비록 스마트폰에 갇혀 무용수들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열정은 느낄 수 있지 않은가. 하나의 국한된 장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가와 문화기획자들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헤아려 함께 짚어갔으면 좋겠다.   


스마트폰에 갇혀 무용수들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열정은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이로써 공식 질문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린다. 혹시 못다 한 말이나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는지

광진구라는 지역 특성을 살린 프로젝트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광진구에 거주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지역 내에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적 특성이 많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시장과 특색 있는 소규모 공간들, 한강을 잇는 프로젝트가 생겼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지면을 빌어 평소 쑥스러워 표현하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공간을 함께 실현시켜준 잔나비와 묘한은 물론 가깝게 안부를 주고받는 모든 지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낸다.    


 이슬기 사진 이기완    


주소 : 서울 광진구 능동로50길 14, 지하 1층
e-mail : gwsram@gmail.com
홈페이지 : https://e-zil.imweb.me
매거진의 이전글 [15호] 나루의 발견_자양스테이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