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고 광진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지역문화 진흥사업 - N개의 서울> 광진문화연구소 ‘작당모의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예술가와 기획자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지역 예술가그룹 ‘A32 스튜디오(이하 A32)’와 광장동 독립서점 ‘책방열음(이하 열음)’은 여름을 닮은 뜨거운 열정 하나로 <실패월간>을 창간했다.
‘실패는 패기다!’를 외치며 우리들의 인생에 크고 작은 실패를 응원하는 <실패월간> 창간 이후, 이들은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프로젝트 출판사 ‘도시비둘기’를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지역 예술가와 기획자의 만남으로 시작해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와 실험을 통해 지역과 호흡하고 있는 ‘도시비둘기’의 이야기. 지금부터 만나보자.
세 분을 ‘도시비둘기’ 팀의 이름으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웃음)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도시비둘기’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린다.
열음 ‘도시비둘기’는 광진구에서 독립책방 <책방열음>을 운영하는 나와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지역 예술가 <A32 스튜디오>가 결성한 프로젝트 출판사다. 우리는 광진문화재단의 지역문화 사업 일환인 <작당모의 프로젝트>를 통해 2018년도 처음 만났는데,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만나 기술과 재능을 공유할 수 있는 활동의 장이었다. 작당모의 프로젝트에서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다 지금의 ‘도시비둘기’를 만들게 되었다.
A32 도심 속에 살아있는 비둘기들은 많은 사람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잘 살아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웃음) 우리도 도시에서 살아가는 비둘기들의 야생성을 추구하고 싶어 ‘도시비둘기’라고 이름을 지었다. 현재 크고 작은 실패를 응원하는 실패 각성 잡지 <실패월간>을 발행하고 있으며, 다양한 굿즈와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웃으실 지도 모르겠지만 재단의 입장에선 ‘도시비둘기’ 팀 자체가 2017년부터 진행해왔던 지역문화 사업의 결실인 것 같아 꽤나 감동적이다. 개별로 활동하던 분들이 새로운 하나가 되다니. 너무 감사하다. (웃음)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다양한 매체 중 ‘출판’이라는 분야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A32 우리가 할 수 있는 기술을 종합해보았을 때 답은 출판이었다. <A32 스튜디오>는 지류 관련 디자인과 인쇄가 가능하고, <책방열음>은 도서 판매가 가능하니 자연스럽게 출판을 선택하게 되었다. 더불어 우리 셋 모두 자신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오랜 열망이 있기도 했다.
‘도시비둘기’에서는 누군가의 성공이 아닌 ‘실패’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실패’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A32 각자 개인 사업을 하면서 크고 작은 실패를 많이 마주했다. 하지만 그 실패들이 모여서 결국 삶이 되고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는 힘이 되더라. 이러한 우리들의 사례도 알리고, 다양한 실패담을 공유하다 보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든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미지 내가 <실패월간>에서 편집장을 담당하고 있는데, 글을 쓰거나 사연을 받으며 주제를 찾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실패’라는 것이 잘 와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패한 경험 있으세요?”하고 물으면 생각할 겨를 없이 곧바로 “실패한 것 없어요, 기억이 안 나요”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답하더라. 반면에 성공한 업적은 잘 기억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실패’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실패한 일에 대해서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신기했다. 이런 점에서 ‘실패’라는 주제가 갖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이런 점들이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 A32가 말한 ‘실패는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실패월간> 의미 그대로 매월 다른 주제의 잡지를 발행한다고 들었다. 각자 본업이 있기에 진행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A32 사실 월마다 결과물을 내는 것이 조금은 버겁지만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괜찮은 것 같다. 궁극적으로 완벽한 책을 만들기 위해 작은 포맷의 잡지를 선택하기도 했고. (웃음)
열음 글을 쓰거나 부탁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대부분 서점을 방문하시는 분들이고, 글을 쓰고 싶은 분들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잡지의 인지도가 낮아서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적어 아쉽다. 평소 만나기 어려운 독특한 일들이나 다양한 직업군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부디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월마다 결과물 내는 것을 우리도 하고 있는데 조금 많이 버거운 것 같다. (웃음) 보통일이 아니다. <나루사이>의 경우에는 매달 주제를 회의를 통해 정하고 섭외에 나서는데, <실패월간>은 어떤 식으로 발간되는지 작업 순서가 궁금하다.
A32 <나루사이>와 비슷하다. 우선 회의를 통해 일상적이고 계절감 있는 주제를 선별한다. 이후 편집장님이 글을 선별하고 편집을 마친 후 우리에게 파일을 넘겨주고, <A32 스튜디오>에서 인쇄를 한다. 그리고 셋이 모여 과자 한 봉지 까먹으며 가내수공업 시스템으로 잡지를 접고, 포장을 한다.(웃음)
가내수공업 과정까지 <나루사이>와 작업 순서가 거의 동일한 것 같다. 우리 모두 파이팅이다. (웃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조만간 <실패월간>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계신다고 들었다. 정말 축하드린다. (박수) 이 시점에서 세 분에게 <실패월간>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A32 사람들에게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계속 성공만 해도 너무 지루한 삶이 될 것 같다. (웃음) 그리고 ‘실패를 인정해라’라는 의미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지거나 혹은 세상에 졌을 때, 실패라고 인정하지 않고 상처를 덧대면서 어물쩍 넘어간다. 한 번쯤은 ‘그게 실패였다!’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무너지지 않을 마음의 집을 잘 지을 수 있다고 믿는다.
열음 나는 <실패월간>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는 무거운 것이 아니다’를 알리고 싶었기에 <실패월간>이 갖는 의미는 ‘의미 없음’으로 정의하고 싶다. 앞으로도 편안하고 가볍고 빈틈이 있는 무리하지 않는 잡지가 되고 싶다.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 같다. 작년 연말에는 <실패월간> 주제에 맞춰 경매 프로그램도 진행한 적 있다고 들었다. <실패월간>과 관련한 프로그램과 굿즈들은 어떻게 기획하는지 궁금하다.
열음 경매 프로그램은 <실패월간>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눠 보고 싶어 오프라인으로 기획한 행사다. 그 달 잡지의 주제가 ‘소비 실패’였는데, 이와 연계하여 자신이 소비 실패했던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경매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아주 기발한 상품도 있었고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기억 남는 것이 내가 물건을 여러 개를 냈는데 아무도 사지 않더라. (웃음) 그 날도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여기 두 분이 모두 구매해갔다.
A32 계획 실패에 연관된 굿즈로 달력과 클립, 엽서 등 그 달의 주제에 맞춰 아이템들을 제작했다. 또, 사업에 실패하신 분들의 재고를 털어드리자는 취지에서 귀걸이나 옷을 잡지의 부록으로 함께 엮어 드리기도 했다. 나름 실험적인 프로젝트다. (웃음) 지금은 잠시 쉬어가는 단계인데, 단행본이 나오면 다시 재개하여 더욱 다양한 굿즈를 기획해볼 생각이다.
광진구는 주민 자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동네를 위해 많이 모이기도 하고,
지역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계속 나온다.
다시 질문을 ‘도시비둘기’ 팀 그리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기획자의 시선으로 돌려보고자 한다. 세분 다 광진구에 자리 잡은 지 그리고 광진문화재단 지역문화 사업과 함께 호흡한지 꽤 되었다. 광진구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하다.
열음 나는 어렸을 적부터 광진구민이었고,<책방열음>을 시작한 지는 어느덧 3년 차다. 다른 지역에 살아본 적이 없어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광진구는 주민 자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동네를 위해 많이 모이기도 하고, 지역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계속 나온다. 이런 움직임들이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참여하고 만났던 ’작당모의 프로젝트’가
올해는 참여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움직인다고 들었다.
그것 자체가 지역문화의 큰 변화라고 본다.
A32 우리가 참여하고 만났던 ’작당모의 프로젝트’가 올해는 참여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움직인다고 들었다. 그것 자체가 지역문화의 큰 변화라고 본다. 그 와중에 신기한 것이 이런 모임들의 규모가 커지지 않고, 작지만 다양하게 많아진다는 점이다. 언제가 광진구도 홍대나 성수처럼 성장할 것 같다. 실제 전보다 많이 변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이어준 광진문화재단의 존재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지역문화 사업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고. (웃음)
마지막에 재단을 콕 찝어 주셔서 감사드린다. 언제 말씀해주시나 기다렸다. (웃음) 어느새 마지막 질문이다. ‘도시비둘기’의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열음 단행본을 내는 것이 나의 꿈이었는데 이루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이루고 싶은 작고 소소한 목표들이 많은데, 거창한 무엇을 이루려 하지 않고 오늘을 충실하게 나아가고 싶다.
A32 <책방열음>과 함께하면서 동료가 한 명 더 생기고, 오랜 기간 소망했던 꿈이 현실화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단행본을 하나씩 쌓아가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다. ‘더 많은 실패가 더 많은 사람에게’를 지향점으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실패월간>을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글 이슬기 사진 이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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