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무대를 채운 클래식음악 공연장? 아니면 역사적인 작품이 벽면 가득 걸려있는 미술관? 우리가 떠올리는 전형적인 예술은 대체로 내가 아닌,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 특별한 사람이 만들어낸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가진 무언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래리 샤이너가 <순수예술의 발명>이라는 책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역사가 불과 300여년 남짓한 발명품일 따름이다. 그보다 훨씬 오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예술은 우리 삶 속에서 일상과 구분되지 않은 형태로 존재해왔다. 때로는 종교적 의식으로 때로는 국가적 예식으로 그리고 훨씬 더 보편적으로는 보통 사람의 삶 속에서 예술은 우리의 일상과 구분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오래전 예술의 모습이 21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재현되며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 미들즈브러 현대미술관(Middlesbrough Institute Of Modern Art, MIMA)의 전 관장 알리스테어 허드슨(Alistair Hudson)은 “훌륭한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뮤지엄 1.0 시대라면, 사람들이 와서 예술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2.0 시대이다. 그리고 3.0 시대는 이미 마련된 구조에 참여하는 방식을 뛰어넘어 보다 적극적인 사용자 기반(usership)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뮤지엄 3.0 시대의 미술관은 모든 사용자 행동의 총합으로 그 최종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창조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1)
허드슨이 이야기하는 뮤지엄 3.0 시대는 관람객과 분리된 공간에서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 전시를 접했던 과거와 달리 관람객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 방향으로 뮤지엄이 발전해가는 방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뮤지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뮤지엄을 넘어서 21세기의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나타낸다. 1990년대 이후 문화민주주의 개념의 보편화와 더불어 세계 각국의 문화예술 정책은 엘리트 예술가 중심에서 탈피하여 창작자와 수용자가 구분되지 않고, 수용자가 이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위치에서 창작자의 역할까지도 함께 하는 참여형 예술을 권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오고 있다. 이에 따른 참여형 예술의 확대가 반드시 이전의 엘리트 예술을 부정하거나 그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의 수동적 감상 태도에서 벗어나 능동적 감상을 통해 이전과 다르게 예술을 수용하는 새로운 예술 소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최종적인 예술 소비자의 적극적 참여가 부각되는 흐름 속에서 지역과 커뮤니티의 역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는 예술가가 공연장이나 미술관과 같은 특별한 공간에서 자기만의 고고한 예술작품을 완성하고 소비자가 찾아와 감상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공간을 직접 찾아가서 소비자와 함께 예술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창작과 소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광진구 ‘늘푸른돌봄센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돌봄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음악클럽"은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우: 나를 있게 하는 우리>라는 공식명칭을 가진 이 프로젝트는 제약회사 ‘한국에자이’와 대중음악인 ‘이한철’이 함께 이끌고 있는 지역커뮤니티 기반의 참여형 음악 프로그램이다. 나우의 이한철 총감독은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이후 인디뮤지션을 거쳐 이제는 어느 누구나 힘들 때마다 “괜찮아 잘 될 거야~~”하고 흥얼거리는 국민가요 <슈퍼스타>로 명성을 얻어왔다. <나우>에서 이한철 총감독은 지방자치단체, 기업, 복지기관, 음악기관 등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20여개의 파트너와 더불어 질병이나 장애 혹은 고령 등의 이유로 예술과 가까이하기 힘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향유자, 아니 더 나아가 예술의 창조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한철은 “장애인, 중증질환자, 암 경험자, 어르신 등 나를 있게 하는 우리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나답게 살 때 모두가 더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어떤 여건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이야기한다.
<나우> 프로젝트는 매년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예술을 만들어왔다. 2020년의 <나우>는 광진구의 늘푸른돌봄센터와 "돌봄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음악클럽"을 표방하며 <위대한 복식클럽>이라는 프로젝트를 함께 펼쳐가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누구나 일생에 걸쳐 경험하게 되는 '돌봄'이다. 어르신과 생활지원사들로 구성된 참여자들은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돌봄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어르신 한 명과 어르신을 돌보는 생활지원사 한 명이 복식조를 이루어 서로의 경험과 생각, 마음과 마음을 나누며 돌봄과 인생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돌봄 서비스의 제공자(giver)와 수혜자(taker)는 음악을 창조하는 현장에서 더 이상 역할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호흡을 맞추는 동등한 역할의 듀오로서 공동음악창작, 음원발매, 공연 등을 진행해간다. 이들의 노래에는 자신들이 겪어온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예를 들어 참여자들은 '어린시절의 나에게 - 청년시절의 나에게 - 중년시절의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랫말로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의 지나온 시절을 떠올리며 삶과 음악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하여 생생한 삶의 경험, 때로는 웃음과 눈물이 곳곳에 스며든 가사가 만들어진다. 이로써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매 시간 시간이 참여하는 사람 모두에게 뭉클하고 감동적인 경험이 된다. 바로 나와 예술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이처럼 <나우>의 프로젝트는 비단 사회적 교류만이 아니라 공동 음악창작과 악기연주를 통해, 돌봄이 서비스가 아니라 함께 하는 즐거움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하여 돌봄은 음악을 매개로 하여 삶을 함께 하는 동반관계로 발전해간다. 나아가 이들의 음악 활동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향유되는 과정에서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촉발제 역할까지도 하게 된다.
<나우>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지 한 음악인의 창의적 선행이나 부수적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며 우리 삶에서 제외시켜 저 먼 곳에 두고 바라만 보았던 바로 그 예술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 우리의 삶이 예술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새로운 예술 창작과 향유의 방향이 어떠해야하는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술의 창작과 향유가 특정한 예술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공간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돌봄센터와 같은 사회복지 공간과 더불어 우리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일의 공간과 생활의 공간이 모두 예술 창작과 향유의 장으로 변할 수 있다. 우리 삶의 터전이 되는 지역사회에서 매일 만나는 건물과 거리와 공원과 그 밖의 모든 공간이 곧 예술의 공간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예술은 더 이상 특별한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다양한 모습으로 결합하여 우리 일상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지역 문화재단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우리의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이른바 ‘일상생활의 심미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계기와 기반을 제공하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 ‘변화하는 미술관: 새로운 관계들 발표자료에서 인용. <뮤지엄3.0 : 예술소비에서 생산의 기지로 : ‘창작자로서의 관람객’, 영국 미들즈브러현대미술관>, Arte 365 웹진, http://arte365.kr/?. 검색일 2020.07.21
김보름
현재 세종대학교 문화사업경영 연계융합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문화재단 시민문화팀 팀장, 영국 런던대학교 SOAS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 및 역서로는 『뉴욕미술시장』 (2010), <미술가로 살아가기』 (2008) 등이 있으며, 미국 뉴욕대학 미술품감정연구 Certificate를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