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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진문화연구소 Sep 08. 2020

[17호] 이달의 책


Pick | 이달의 책 


도시 공간에서 여성들의 기록, 마을의 기억으로 남다

(페이퍼백컴퍼니)  


도시와 지역에 관한 정보와 기록들은 단순하게 공적인 자료들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통계학적 수치들과 사건에 관한 단순한 사실들의 나열은 명확하게 ‘있었던 일’로 계속 남겨지겠지만, 그곳에서 숨을 쉬던 사람들의 온기는 쉽게 묶여 있지 않다. 지역 내에서 문화를 이어가기 위한 아카이브를 제작함에 있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페이퍼백컴퍼니에서 펴낸 『여자들의 도시 아카이브북 : 서울의 기억』은 도시라는 공간에서 살아 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직접 담고 있다. 여기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기억하는 서울 곳곳에서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경험은 그렇게 사소하기만 한 이야기들이 아니다. 충분히 그 시대와 그 공간을 담아내고 있으며 지금은 사라져간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의미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이 프로젝트는 여자를 위한 여행커뮤니티인 ‘여행여락’에서 진행하였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성들이 각자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의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보편적이지 않을지라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넘기며 좋았던 부분이 바로 이러한 분이다. 프로젝트 소개에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이상적이고 보편적인 도시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들을 위한 도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시’라고 하면 떠오르는 보편적인 모습들은 여기서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여성으로서 말할 수 있는 도시와 지역의 또 다른 이면들도 분명히 있었다. 각자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서울, 기억, 여성에 관해 쏟아지는 이야기들은 서로 모여 서울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책에서는 다섯 명의 기억이 서울 곳곳을 비추고 있다. 광진구와 가까운 장안동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기억은 70~80년대 서울의 부동산과 ‘집’에 관한 기록들을 읽을 수 있으며 동시에 ‘빨간 바지’라고 불리는, 글쓴이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부동산 시장의 일원이었던 여성들에 관한 기억도 읽을 수 있다. 두 번째 기억에서는 남성이 부재했던 여성들 골목인 무악동에서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세 번째 기억은 나루사이 16호에서 소개한 『마을 학교』의 배경인 성미산 마을 속 여성들의 주도로 자리를 지켜온 공간인 마을카페 ‘작은 나무’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네 번째 기억에서는 남편의 유학이 끝난 뒤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여성의 합정동 모임 참여 기록들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기록은 은평구에서의 작은 서울 지도를 그려나가는 지역 아카이빙 작업들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지역 곳곳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쓴이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잘 몰랐던 서울이 보인다. 과거와 지금이 보이고, 후에 여기가 기록되어 있을 미래도 보인다. 독립출판 서적 중 임채희 작가의 『동네와 이별하는 법』이란 책과 박지현 작가의 『나의 포근했던 아현동』이란 책이 있다. 이 두 책 또한 실제 개인이 한 지역의 곳곳에서 느꼈던 미세하고 여린 감정들을 한 장 한 장 켜켜이 쌓아놓았다. 책에 아카이빙된 지역들의 기억을 읽으면서 지금 사는 주변 지역을 한 글자 한 글자 담아보자. 이런 행위 하나하나가 지역의 기억을 의미 있게 보관하는 일일 것이다.


글 박광택
동네책방 생산적헛소리 前 책방지기
현재 부산에서 독립영화를 대중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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