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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진문화연구소 Sep 08. 2020

[17호] 나루의 발견_팔레트 사진관

기록은 우리의 일상 도처에 존재한다지금 우리의 모습은 과거의 기록들이 쌓인 결과물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것처럼 짧은 메모부터스케쥴러매일 쓰는 일기이미지소리영상까지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늘을 써 내려가고 있다.     

광진구에는 다른 기준과 방법으로 기록의 중요성을 외치는 공간들이 있다바로 팔레트사진관과 광진구마을자치센터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추억과 삶의 순간을 담아내는 동쪽의 유일한 필름 사진 현상소 팔레트사진관부터 춤추는 마을꿈꾸는 자치라는 슬로건 하에 주민이 마을의 주인이 되는 그날을 위해 동네를 기록하는 광진구마을자치센터까지오늘도 의미 있는 기록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두 곳을 만나보자.     


먼저 팔레트사진관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린다.

‘팔레트사진관’은 2019년 5월 오픈한 필름 전문 사진관이다. 주 업무는 필름 현상이지만 서브로 증명사진과 여권 사진도 촬영하고 있다. 사실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운 적은 없다. (웃음) 원래는 IT 및 게임 분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었다. 그저 필름 사진이 좋아서 오랜 시간 찍다 보니 필름 현상까지 다루고 싶어졌고, 독학으로 깨우치게 되었다. (웃음) 잠시 직장 생활 휴식기를 갖던 중 사진 업계에 있는 선배의 추천으로 광진구 자양동에 덜컥 공간을 꾸리게 되었다.     


독학으로 시작해 공간까지 오픈하다니 정말 대단하시다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사장님을 보니 떠오른다. (웃음필름 사진을 오랜 시간 찍었다고 하셨는데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생 때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 디지털 카메라,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이 한창 보급되던 시기였는데, 사진을 찍다 보니 원류인 필름 사진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처음 접한 필름이 슬라이드 필름이었다. 슬라이드 필름은 현상 후 라이트 박스를 통해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순간 디지털 카메라에서 느낄 수 없는 희열을 맛보았다. 동시에 “아! 필름 사진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웃음)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DSLR을 다 팔고 필름 값을 충당하며 가열차게 필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필름 현상소는 충무로에 밀집되어 있는데, 집에서 거리가 있기도 하고 흑백 필름의 경우 당일 현상이 안되었기에 내가 직접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내가 시작할 때는 아니었다. (웃음)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추억과 기록이 날아갈 수 있기에 지금도 항상 조심하면서 작업하는 중이다.     


하나에 몰두하면 굉장히 빠져드는 성격이신 것 같다답변에서 필름 사진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사실 저는 필름 사진을 잘 알지 못하는 필..못이다. (웃음필름 사진의 종류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

필름 카메라는 크게 세 가지 종류다. ‘컬러 네거티브’, ‘흑백’, ‘슬라이드’로 나뉜다. ‘컬러 네거티브’ 필름은 일반적인 사진관에서도 작업할 수 있지만, ‘흑백’과 ‘슬라이드’ 필름은 전문 현상소를 찾아야 한다. 수요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흑백’ 필름의 경우 어떤 약품을 쓰느냐와 온도에 따른 민감함이 있어 결과물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현상 시간을 단축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단축하는 만큼 사진의 질을 포기해야 한다. ‘팔레트사진관’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기본을 잘 지키면서 퀄리티를 높이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실제 타 업소와 비교해서 가격을 조금 더 받고 있는데도 단골 분들이 많다. 필름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여 스스로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으면 자연스레 주변에서 인정해줄 것이라 믿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웃음)     


필름 사진을 촬영하고 맡기는 기다림 자체가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는 매력적인 부분인 것 같다 . 필름 현상에 온도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몰랐다굉장히 세심한 작업이구나 싶어 새삼 놀랍다그렇다면필름 사진이 주는 특별한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같은 필름이어도 사람마다, 필름마다 개성이 각기 다른 점이 참 재미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원본이 있다는 점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디지털 카메라로 찍으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들도 너무나 잘 나오고. 2010년 즈음 필름 사진이 점차 종적을 감춰서 이러다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몇 해 전부터 아날로그 열풍이 불면서 다시 필름을 찾는 수요가 많아졌다. 필름 사진을 촬영하고 맡기는 기다림 자체가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는 매력적인 부분인 것 같다.    

 

팔레트사진관에서 필름 관련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계신다고 들었다어떤 프로그램들인지 설명 부탁드린다.

본인이 촬영한 필름을 직접 현상해보는 ‘자가 현상 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난감했던 나의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실패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획했다. 3인 이상 모이면 언제든지 오픈할 수 있다. 또, ‘슬라이드 체험 클래스’도 있다. 나 역시 슬라이드 필름에 매료되어 사진에 입문하게 되었기에 이 감동을 더욱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이 클래스는 출사지를 정해 모여서 슬라이드 필름을 받아 촬영하고, 다음날 현상된 필름을 받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아무래도 코로나19 때문에 최근에는 홍보나 모집을 소극적으로 하고 있다. 하루빨리 상황이 안정되어 다시 많은 분들과 만나고 싶다.     


앞선 질문에 현상소가 주로 충무로에 위치해있다고 하셨는데광진구에 자리 잡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처음 지역을 고민했을 때에는 광진구를 떠올리지 못했다. 필름 현상소가 모여 있는 을지로와 충무로를 고민하던 중 굳이 포화 상태인 그곳에 가서 경쟁하는 것이 맞을까 싶었다. 찾아보니 직접 모든 종류의 필름을 작업하는 필름 현상소가 서울의 동쪽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광진구에서 강 건너 위치한 강동구인데, 여러 가지를 따졌을 때 광진구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조건도 알맞다 싶어 자리 잡게 되었다. 공간을 오픈하고 1년 정도 지내보니 동쪽에 필름 현상소가 생겨서 좋다는 말씀을 손님들이 종종 전하신다. 다행히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다. (웃음)               


서울 동쪽에서 모든 종류의 필름을 직접 현상하는 유일무이한 필름 현상소라는 타이틀이 참 멋있다공간을 운영하면서 혹은 사진을 촬영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언젠가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명을 받아 카메라 하나 달랑 들쳐 메고 강원도로 급히 떠난 적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한 곳에 삼각대를 올려놓고 밤새 별 사진을 촬영했는데, 너무 배가 고프더라. 허나 밥을 먹으러 가려면 카메라를 가져가야 할텐데, 밥 먹는 시간 동안 촬영 할 수 없다는 점이 아깝더라. 결국 카메라를 바다에 두고 헐레벌떡 급하게 밥을 먹고 왔다.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찍었나 싶다.     


공간을 운영하면서는 영정사진을 스캔할 수 있냐는 문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보통 영정사진 스캔은 디지털 사진을 가지고 오시는데 그 분은 필름 자체를 스캔할 수 있냐는 말씀이셨다.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급하게 영정사진이 필요하신데 오래된 필름 속 사진을 인화하고 싶어 하셨다. 여느 때 보다도 더욱 심혈을 기울였고, 다행히 사진이 잘 나왔다. 그 날의 현상과 인화 작업은 말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기분이 들어서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아 있다.     


어느새 오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이다. ‘팔레트사진관이라는 이름으로 나아갈 미래가 궁금하다.

처음 공간을 오픈할 때 구하고 싶은 필름 스캔 장비가 있었다. 그 장비를 구하지 못하면 가게를 차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운 좋게도 장비를 구하게 되었고, 이 장비는 한국에 5대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스캔 장비는 세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나오는데 수 백, 수 천 번의 튜닝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가게마다 지향점이 다르겠지만 나는 현상소가 자기의 색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팔레트사진관’이라는 이름답게 다양한 색을 담으며 앞으로도 지금의 초심과 주관을 잃지 않고 싶다. 손님들이 자신의 기억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가게로 오랜 시간 남고 싶다.     


글 이슬기 

사진 이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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