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편지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을 맞이하는 요즘, 왜인지 이 노래가 입가에 맴돈다. 누구나 버리지 못하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분명 서랍 속의 빛바랜 편지가 아닐까. 이따금 꺼내 읽으면 흐릿해져 가는 추억에 먹먹해지고, 풋풋한 우정을 나눴던 옛 친구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이제는 손 편지보다 스마트폰 메신저가 더 편한 세상이지만 우리는 이따금씩 손 편지로 추억을 소환한다.
광진구에는 꾹꾹 눌러쓴 아날로그의 기록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이들이 있다. 익명의 고민에 손 편지로 답장을 보내는 ‘온기 우편함’이 그 주인공이다. 따뜻한 마음과 함께 실어 보내는 손 편지만큼 온기가 넘쳤던 ‘온기 우편함’ 운영자 ‘조현식’님과의 이야기를 지금 들여다보자.
먼저 ‘온기 우편함’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포털 사이트에는 ‘온기 제작소’라고도 나오던데 정확한 명칭도 궁금하다.
‘온기 제작소’로 처음 시작을 했고 정식 명칭은 ‘온기 우편함’이다. ‘온기 우편함’은 익명의 고민 편지에 손 편지로 답장을 해주는 손 편지 상담소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고민을 편지에 적어 온기 우편함에 보내면 ‘온기 우체부’들이 손 편지로 답장을 전해드린다. 우편함의 이름인 ‘온기’는 따뜻한 진심을 전달하자는 의미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따뜻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우편함 색도 노란색으로 맞추었다. (웃음)
내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나
‘온기 우편함’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영감을 받아 시작하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모두 내용을 아시겠지만, (웃음) 이 책은 과거로부터 고민이 적힌 의문의 편지가 도착하고, 이에 대해 현재를 사는 주인공이 답장하는 이야기이다. 책을 읽은 후 우리 사회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는데, 누군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나. ‘온기 우편함’이 외로운 타인을 위로하는 좋은 방법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온기 우편함’을 운영하기 위한 여러 공간 중 특별히 광진구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는지
처음에는 공간을 만들 여건이 되지 않아 카페를 전전하며 활동을 했다. 이후 서울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비교적 월세가 저렴해 광진구 군자동에 자리잡게 되었다. ‘온기 우편함’에서는 자원 봉사자를 ‘온기 우체부’라고 부르는데 광진구는 ‘온기 우체부’분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중간 위치기도 했다. 살짝은 다른 이야기지만 (웃음) 우리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린이대공원이 있는데, 어린이대공원을 찾는 가족들의 표정을 보면 내 마음까지 따뜻해질 때가 있다. 이런 모습에 반해 (웃음) 어린이대공원에 ‘온기 우편함’을 설치하고 싶었었는데, 실제로 이번 달에 어린이대공원에 우편함을 설치하게 되었다. (웃음) 설치되면 모두들 꼭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다.
광진구에도 ‘온기 우편함’이 생긴다니 무척 기대가 된다. 설치되면 꼭 보러 가겠다. (웃음) ‘온기 우편함’에서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쓰는 편지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온기 우편함’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진심’이었다. 손 편지에는 이러한 진심이 담겨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SNS의 발달로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것이 보다 쉽고 빨라졌지만, ‘과연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이뤄지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속도는 느릴지라도 나의 진심이 전해지는 소통의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고, 그 해답을 손 편지에서 찾았다.
앞선 질문에 ‘온기 우편함’ 자원봉사자들을 ‘온기 우체부’라고 부른다고 하셨는데, ‘온기 우체부’ 모집이나 활동하시는 분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부탁드린다.
처음 모집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했었다. 활동을 계속 하다 보니 언론 보도를 통해 자녀를 둔 어머님들도 오시고, 그 분들의 지인들도 오시고 계속 연결되더라. 편지를 보낸 분들이 ‘온기 우체부’가 되기도 하고. (웃음) 그러다보니 현재 90명 정도가 ‘온기 우체부’로 활동 중이다. 아무래도 직접 답장을 받아 봤기에 이 경험을 다른 분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편지를 받으신 분들이 ‘온기 우체부’ 활동을 하려고 많이 오시는 것 같다.
고민에 대한 정답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가 필요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혹시 ‘온기 우체부’ 분들이 답장을 할 때 지켜야 한다거나 강조하는 규칙이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답장할 때 꼭 지켜야 하는 규칙 중 하나는 고민에 대한 ‘정답’을 드리지 않는 것이다. 삶에 정답이 없지 않나. 고민 편지를 보내는 분들도 정해진 답을 바라고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고민에 대한 정답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가 필요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온기 우체부’들 모두가 고민에 대한 답을 드리기보다 최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와 공감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외에도 ‘온기 우체부’의 연령대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데, 각자 경험이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춰 답장을 쓰고 있다. 답장을 쓰다가 어려운 부분이 생기면 ‘온기 우체부’분들이 서로 이야기 나누며 최대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온기 우체부’들만 보기엔 아까운 내용들도 많을 것 같다. 고민 편지를 따로 보관하는지, 보관한다면 이 기록들을 나중에 전시나 책으로 공개할 계획은 없는지
고민 편지는 카테고리를 나눠 따로 보관하고 있다. 편지 공개 관련해서는 사실 손 편지 대부분이 익명이기에 오픈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온기 우편함’에서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온라인 플랫폼이다. 손으로 쓴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면 ‘온기 우체부’가 답장을 주는 시스템이다. 온라인 손 편지 같은 경우 익명이지만 사전에 동의를 받을 수 있어 가능하다면 이를 엮어 책으로 발행하고 싶긴 하다. ‘온기 우편함’에서 편지를 카테고리별로 나눠 구분 할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사람들의 고민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훗날 손 편지가 책으로 발행된다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누군가가 이를 통해 위로 받을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그동안 ‘온기 우편함’ 활동을 하며 수많은 편지를 받았을 것 같은데, 가장 인상 깊었던 편지가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는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분이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결혼 축하를 받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래서 ‘온기 우체부’로 활동하시는 어머님 한 분께서 그분의 부모님이 되어 사랑하는 딸에게 답장 편지를 적어주었다. ‘온기 우체부’님께서 편지 내용을 그 자리에서 읽어 주셨는데 딸에게 자랑스럽고, 정말 사랑하고, 하늘에서 잘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자녀를 키운 어머님 입장에서 편지를 쓰다 보니 더욱 진심이 느껴져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야기를 듣는데 코끝이 찡해졌다. 답장을 받은 그 분도 편지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제 질문을 광진구로 돌려보려고 한다. ‘온기 우편함’ 혹은 현식님에게 광진구는 어떤 곳인지
광진구에서 활동한 지 이제 1년 반 정도 되었다. 서울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다녔지만, 광진구는 활동하기에도 지리적으로도 적합하고, 활발하면서도 안정적인 모습이 공존하는 지역인 것 같다. 대학가도 많고 주거단지도 생각 이상으로 많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양면성이 있는 느낌이다. (웃음)
오늘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인터뷰는 또 처음인 것 같다. (웃음) ‘온기 우편함’이라는 이름답게 많은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주고 계신 것 같다. 어느새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처음 시작했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편지가 10통만 와도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70통, 많게는 80통에 편지가 오고 있다. (웃음) 양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모든 편지에 집중하기 어려워질 때가 있다. 그런데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정성스럽게 답변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앞으로도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온기 우편함이 나아가야할 목표이자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글 최윤아
사진 이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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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070-8614-6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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