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H>는 ‘홍대앞 동네 문화 잡지’다. ‘로컬 매거진’이라는 말보다 조금은 소박해서 마음에 든다. 얼마 전, EBS 라디오에서 만난 신예희 작가는 “겨우 동네 문화 잡지가 아니라 홍대앞 아카이빙 그 자체가 아니냐”고 했다. 고마운 일이다. 2009년 6월 창간하여 매월 무료로 배포되는 <스트리트 H>는 ‘홍대앞’이라는 공간을 ‘동네’로 인지하는 사람들이 만들고 읽는 잡지다. 여기서 ‘홍대앞’은 홍익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아니라 홍대로 통칭되는 음악, 미술, 출판, 디자인 등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하나의 ‘신(scene)’으로서 동네를 말한다.
<스트리트 H>를 만들고 동네를 기록하는 이유
왜 <스트리트 H>를 만들었을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뉴욕에 장기 체류한 적이 있다. 그 시절에 <타임아웃 뉴욕>, <L매거진>, <빌리지 보이스> 같은 뉴욕의 로컬 매거진들을 발견했다. 잡지엔 종종 특집이 실렸다. ‘숨겨진 뉴욕’, ‘당신이 뉴욕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101가지’ 같은 기사에는, 그 도시의 면면을 만들어낸 오래된 공간과 인물과 역사가 촘촘히 얽혀 있었다. 그런 것들이 부러웠다.
마침 홍대 카페에 대한 책을 쓰며, 90년대 후반 안상수 교수와 금누리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던 ‘전자카페’ 일렉트로닉스에 대한 사진 자료를 찾다 보니 더 그랬다. 당시엔 사진을 찾을 수 없었고, 나중에야 연락이 닿은 안상수 교수는 해당 공간을 소개했던 잡지의 기사를 스캔본으로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 아쉬움이 <스트리트H>를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잡지를 창간하고 2년 후 자료를 수집하고 싶은 차원에서 ‘90년대 홍대앞’ 전시를 준비할 때도 그랬다. 모던록의 성지와도 같았던 스팽글, 라이브 클럽쌤, 고급 예술서점 아티누스의 1층 카페 리브로, 런웨이 같은 무대 위로 찌그러진 맥주캔이 날아다니던 ‘발전소’, 한 시대를 풍미한 ‘황금투구’와 ‘언더그라운드’ 같은 록카페들…. 인디문화의 발현지와도 같았던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자료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적었다. 있다 해도 어딘가에 흩어져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기록’과 ‘아카이빙’을 우리 잡지의 기본으로 잡았던 것은 우리는 우리가 애정하고 아끼는 홍대앞이라는 동네의 면면을 잘 기억하고 싶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 건축가 알도 로시는 “기억은 장소와 연결되어 있으며 도시는 집단적 기억의 장소”라고 말한다. 우리의 기억은 특정 장소와 결합돼 있으며, 도시는 이처럼 그곳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얽혀 집단적 기억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식민지 치하 청년들에게 명동 ‘은성’이 그랬고, 50년대생들에게 종로의 쉘부르, 대학로 학림다방이 그랬듯이.
그러나 이 ‘집단적 기억의 장소’라는 측면에서 보면, 서울은 불행한 도시다. 서울이 “유래 없이 젊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6백년 도읍지라는 서울에 있는 건물 75% 이상이 1980년 이후에 지어진 것들이다. 50년이 넘은 건물은 2.43%에 불과하다. 부동산 광풍과 재개발 붐은 낡고 오래된 것을 가치 없다고 규정짓고 가차 없이 부수었다. 그리고 새롭되 정체불명의 건물을 쌓아올렸다. 이경훈 교수가 서울을 ‘기억 상실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홍대앞의 우리는 겹으로 불행한 존재다. ‘단 한 번도 불이 꺼지지 않은 부동산 광풍의 메카’인 홍대는 끊임없이 기억과 연결된 공간들을 지우고 부수어왔으니까. 그렇게 제로시어터가 사라졌고 살롱바다비가, 클럽 타가 사라졌다. 공간이 사라지면서, 그 공간을 운영하던 주체도 떠나가고 그 공간에 쌓인 의미 있는 활동과 가치와 멋진 이야기도 사라져버렸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잡지를 통해 지금 현재의 중요 공간들을 기록하고, 동시에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공간들을 계속 호명하기 위해 애쓴다.
그 측면에서 조금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은 지도 작업이다. 우리는 매달 지역을 돌아다니며 없어진 공간과 새로운 공간을 파악해 지도를 업데이트하는데(요즘은 조금 게을러지긴 했다.) 그 이유는 어떤 공간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보통 어딘가를 찾아갈 때, 즉 위치 정보가 필요해서 지도를 본다. 그러나 <스트리트 H>는 지도가 갖는 존재 정보에 주목한다. 어떤 공간이 ‘여기 있었다.’라는 팩트에 주목한다. 1년이면 12장의 지도, 10년이면 120장의 지도가 나온다. 시간성을 가지고 공간 정보가 쌓이면 그 시간의 레이어(layer) 속에서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 홍대에 있는 공간 전체를 마킹하진 못하기 때문에 한계는 있겠지만, 이런 레이어를 통하면, 2000년대 초반 카페의 확장, 그리고 상수나 당인리, 합정과 같은 특정 지역의 개발을 읽어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양적 성장에 대한 기초 데이터가 쌓이면, 누군가는 다른 눈으로 홍대앞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공동체가 되었다
이렇게 한 호 한 호 잡지를 만들고 이 동네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면서,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가장 큰 변화는 누군가는 그저 술 마시고 공연 보러 오는 동네일지 모를, 이 홍대앞을 바로 나의 동네로, 공동체로 느끼고 응원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난 이곳을 더 나은 동네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문화예술가 이웃, 동료 시민들, 네트워트 속에 속해 있고, 그 사실이 뿌듯하다.(나는 실제로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잡지를 통해 지금의 홍대앞을 만들어온 예술가와 취향생산자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지역사회에서 그들의 삶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기획을 만들고 실천하는 기획자들과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도록 마이크를 쥐어준다. 그렇게 마포 로컬리스트 컨퍼런스를, 제로 웨이스트 카페를, 홍대앞의 1인 책방들을 찾아서 기록한다. 서교예술실험센터가 문 닫아야할 지도 모른다고 할 때, 당인리문화발전소가 생긴다고 할 때, 홍대를 예술관광특구로 지정한다고 할 때, 이 모든 동네의 이슈에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타자가 아니다. 기계적 중립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잡지를 만드는 중간 중간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던 독자들, 오랫동안 잡지를 만들어왔음에도 잘 보이지 않던 독자들의 얼굴이 비로소 잘 보이게 되었다.
올해 <스트리트H>는 11년째를 맞이한다. 시작할 때 ‘적어도 10년은 채우자’라고 했던 약속을 이렇게 지킨 것이 놀라우면서 한편으로는 놀랄 만큼 덤덤하기도 하다. 쏜살 같이 흘러간 시간이었다. 때론 고단하고 때론 지지부진하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꽤나 즐겁고 멋졌던 10년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여전히 <스트리트 H>를 만들고 있을 것 같다. 왜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 글의 제목으로 대신할까 한다.
정지연
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잡지계와 출판계에서 일했다. 홍대앞 동네잡지 <스트리트H>를 통해 홍대앞의 변화상을 기록하고, 홍대앞 문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면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소소북스라는 이름으로 여러 공공기관과 콘텐츠 기획 및 제작, 출판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