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이나 실제적으로 우리의 일상과 경제, 라이프 스타일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코로나19는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숙지해야만 하는 생활 필수상식이 되었다. 확진자 현황과 동선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온라인 공연 등 변화한 삶의 양식에서 저마다 균형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문화예술계 또한 다각도로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증유의 사태에 뾰족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 이전 문화예술 활동은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대면방식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장기화로 이른바 ‘온라인 시대’가 열렸고, 문화예술의 특징인 현장성, 대면성, 상호교감성, 집단성 등은 비대면으로 새롭게 정립되고 있다. 이른바 ‘언택트’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 공연, 안전 또 안전!
어떤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화를 ‘마이크로 컨택트’ 시장, ‘살롱 시대의 귀환’으로 정의한다. 가족, 동네 커뮤니티 등 상호 신뢰하는 안전한 공간에서 작은 공연을 여러 번 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이전에는 큰 무대에 서는 한 명의 아티스트와 익명의 다수가 있었다면,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는 한 명의 문화 소비자가 예술가와 동등하게 대면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문화재단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눈여겨볼만한 프로그램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경기문화재단의 ‘드라이빙 씨어터’이다. 제3킨텍스 부지에 마련된 특설 무대에서 경기문화재단의 주최 하에 100명의 예술인들이 오후 5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였다. 가족, 친구, 연인 등과 함께 총 162대의 차량, 370명의 관객이 공연을 즐겼고 비상 깜박이와 와이퍼 작동, 짧은 경적 울리기, 차창 또는 선루프 밖으로 손을 흔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환호를 표시했다. 주최 측인 경기문화재단에서는 리허설 전부터 무대 전체와 출연자 대기실 등을 집중 소독하며 발열 체크 및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고, 차량 내부 탑승자의 발열 체크까지 실시했다. 두 번째 소개할 프로그램은 화성문화재단의 ‘2020 ARTS STAGE:숲, 쉼’에서 ‘텐톡콘서트’다. 4회에 걸쳐 진행된 ‘텐톡 콘서트’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된 잔디 위 텐트 속에서 최대 4인(성인 2인, 자녀 2인)이 즐길 수 있는 콘서트였다. 45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은 물론 명화 극장, 재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졌으며, 화성문화재단에서 구현한 안전한 객석에서 관객들은 한 여름 밤의 피크닉을 즐겼다.
이제는 온라인 공연이 대세!
코로나19 시대는 공연예술의 온라인 유통을 재촉했고, 관객들은 공연장 대신 화면 속에서 무대를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감상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예술교과 수강생 208명과 음악 애호가 그룹 1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공연감상 현황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연을 본 경험이 있는 경우 두 그룹 모두 90% 안팎이었는데, ‘잡념 없이 온라인 공연에 몰입한 시간’을 물었더니, 두 그룹 모두 ‘20분’이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장르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몰입도 유지가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현장에서 문화예술 콘텐츠를 즐길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예술 기관들이 앞장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은 긍정적이나, 관객들과 교감하는 현장의 감동을 섬세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
지난 4월 SM엔터테인먼트와 네이버가 함께 런칭한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를 보자. 아티스트 퍼포먼스에 더욱 풍성해진 3D그래픽, AR(증강현실) 등 다양한 영상기술을 접목한 화려한 무대를 선사하는 것은 물론 실시간 화상채팅을 이용해 시청자들과 인터랙티브 소통을 즐길 수 있어 전 세계 K-Pop 팬들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비욘드 라이브'는 단순히 공연을 중계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 공연 콘텐츠를 기반으로 AR 기술을 도입하고 3D 그래픽을 구현하는 등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맞춘 새로운 공연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콘서트 중반 슈퍼주니어 멤버 최시원이 스크린을 뚫고 등장해 12m 높이의 공연장을 채우는 장면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해당 콘텐츠는 아티스트의 움직임을 카메라 106대로 촬영한 뒤 3차원(3D) 모델링과 첨단 얼굴 인식 기술을 활용해 고해상도 AR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슈퍼주니어의 콘서트는 12만 3천 명이 관람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온라인 콘서트만으로 약 4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공연의 영상화와 온라인화는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공연의 영상화 또는 공연과 영상기술의 접목은 미디어 시대의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행보일 것이다. 코로나19 시대가 그 흐름을 다소 앞당긴 것은 사실이지만, 언젠가는 향할 방향이었다. 다만 온라인 매체를 통해 문화예술 콘텐츠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예술 장르 별로 영상화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지금처럼 모든 예술 장르를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장르의 특수성에 따라 사이버 공간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충분히 고민해보고 장르별 롤 모델을 구상해야 한다. 영국의 로열 오페라 극장에는 카메라로 공연을 정확하게 촬영하기 위해 ‘비주얼 디렉터’라는 직업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들은 카메라를 다양하게 다루는 법을 전문적으로 숙지한 후, 2~3개월 전부터 극장 스텝들이 만나 공연 실황을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촬영하고 전달할지 등을 논의를 한다. 이들에 비해 국내에는 공연을 영상화하는 업체가 아직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라이브 공연의 현장감(liveness)을 대신할 수 있는 관객 소통의 통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연장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거나 스페셜 영상을 삽입하는 등 영상 콘텐츠만의 재미를 더하는 것이다. 무대 뒤 이야기, 안무 과정 이야기, 주연 아티스트 인터뷰, 관람 팁 제공 등 영상에 ‘서사’를 입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온라인 공연은 공연 그 자체와는 다른 영상 콘텐츠이며,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그리고 코로나19 시대, 문화와 문화예술인들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앞으로 더욱 디지털화와 개인화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해 예술의 진지한 감동과 진심을 전하는 예술이 발현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종건
방송사 TV PD로 ‘보령머드축제’, ‘천안삼거리 흥타령축제’ 등을 연출하였다. 태안 허베이 기름유출 사태 때는 자원봉사자 활동과 주민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구름포 그 해 겨울>을 제작하였다. 가끔 시간 내어 책을 보다가 과분하게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광진문화재단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광진구를 문화예술 1번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