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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진문화연구소 Nov 16. 2020

[19호] 헤맴의 다른 이름


Life  | 헤맴의 다른 이름

이철


당신은 ‘청년’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름답고 활기찬 나날? 모든 게 새로운 설렘? 즐거운 대학 생활? 그런 아름다운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면 당신은 청년이라 불리기엔 너무 이르거나 이미 늦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가올 청년의 때를 기대하고 있거나, 지나친 청년의 때를 그리워하고 있거나.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청년’이란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오전 0시’가 떠오른다. 늦은 저녁 고즈넉한 방에서 홀로 맞이하는 자정 즈음. 하루 온종일 헤매다 정신을 차려보면 시간은 어느덧 오늘도 내일도 아닌 어정쩡한 자리에 걸쳐있다. 그 모습이 꼭 ‘청년’ 같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오늘이라 불리던 어제는 온 데 간 데 없고 갑자기 오늘이 된 내일만 남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어린애였는데, 세상은 나를 내일이라 부른다. 어른이라, 한다.     

오늘의 행방이 묘연해질 때 즈음이면 펜을 든다. 내일이 되어버릴 오늘을 서둘러 붙잡아보려고 글을 쓴다, 아니 헤맨다. 헤맸던 하루만큼이나 헤매는 글을 적는다. 적고 또 적고, 헤매고 또 헤맨다. 내일이 되어버린 오늘, 어른인 척해야 하는 세상에서, 헤매도 되는 유일한 일이니까, 글쓰기는.      


필자가 다니는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종교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다. 종교 지도자는 흔들림 없는 어른이어야 한다. 비록 모든 게 다 서툰 청년일지라도 교회에 가면 어른이어야 한다. 헤매는 건 용납될 수 없다. 그래서 장신대엔 어린 나이에 전도사, 목사라는 이름표 달고 교회에서 어른처럼 행동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다. 모든 게 다 서툴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해야 하는 청년들이, 장신대엔 참 많다.     


마음껏 헤매고 싶은, 장로회신학대학교 청년들이 모여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글을 쓸 때만큼은 헤매보자. 종교니 교회니 예수니, 뭐 그런 거 말고, 우리, 서로의 헤맴을 나누자. 모임 이름은 퍽 거창하게 “문예창작”이라 적어놓았지만 실은 자기네들 헤매는 거 글로 적는 모임이다. ‘헤맴’은 ‘시’라는, ‘수필’이라는, ‘허구’라는 다른 이름을 갖는다. 그렇게 우리는 청년 어디 즈음을 배회하는 중이다.     


주로 우리의 헤맴은 학교 앞 책방에서 이루어진다. 담쟁이넝쿨처럼 어딜 향하는지 모르는 우리의 헤맴이 기대어 쉴 수 있는 담장. 우리에게 책방열음은 헤매다 지친 꿈들이 쉬어가는 담장이다.      


처음 작당모의에 대해 알게 된 곳은 책방열음이었다. 열심히 헤매는 우릴 보고 책방 사장님께서 “작당모의”라는 말을 꺼내셨다. 언뜻 우리가 뭔가를 꾸미는 거라 오해하셨나, 싶었다. 작당모의란 말에서 사회 전복을 꿈꾸는 레지스탕스를 떠올렸으므로. 듣고 보니 “작당모의”란 지역 문화 사업의 이름이었다. 꽤 상당한 금액을 지원해 준댔다.      


필자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 일을 통해 얻을 이익보다는 일로 인해 져야 할 책임을 먼저 고려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작당모의 참여를 망설였다. 우리에게 글쓰기는 헤맴 그 자체이기에.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분명 돈을 주는 데엔 그만큼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겠는가. 누가 헤매는 일에 돈을 지원해주겠는가.     

 

정보가 필요했다. 작당모의란 대체 뭐하는 거고, 광진문화연구소는 어떤 단체인가. 지원금을 주는 이유와 원하는 결과는 무엇인가. 그렇게 5월 네트워킹 파티에 참여했고 거기서 또 다른 의미로 ‘헤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광진구의 지역 문화예술인들. 지역 문화를 사랑하고 가꾸는 사람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며, 아, 작당모의라면 마음껏 헤맬 수 있겠다, 싶었다. 헤매는 일 그 자체가 ‘문화’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은 작당모의와 함께한 첫 번째 분기를 보내며 확신이 되었다. 작당모의를 통해 그저 몸짓에 불과했던 우리의 헤맴은 문화라는 이름의 꽃이 되었다. 작당모의에 참여하여 우리의 헤맴을 보고서로 남기고 지원금을 받아 모임을 이어나가며 우리의 헤맴은 ‘문화’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지원금의 쓰임은 아주 다양했다. 무엇보다 우리 돈 안 내고 모임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됐다. 지원금 중 얼마를 사용해서 문학 분야 전문가를 만나 글쓰기에 대한 조언과 격려를 얻기도 했다. 아울러 우리가 쓰는 글에 도움이 될 만한 책도 한 권 살 수 있었다.     


바쁜 일과를 소화하면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작당모의는 그 이유였다. 작당모의 전처럼, 우리의 글쓰기가 단순히 우리끼리의 헤맴이었다면 모임이 이토록 풍성해질 수 있었을까. 작당모의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헤맴이 하나의 지역문화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좀 더 당당히 헤맬 수 있었다.    

 

더 당당한 헤맴의 끝에서, 한 사람은 “서울시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시 공모전”에 당선되어 자신의 글쓰기를 인정받았다. 또 한 사람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미국에 있는 어느 회사에 보내기도 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으나 첫 걸음을 뗀 그의 글이 언젠가 세상을 놀라게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성원 중에 가장 글재주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나루42』에 글을 쓰고 있다니. 이렇듯 작당모의로 함께할 수 있었기에 우리의 헤맴은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문화예술인들과의 교류가 적었다는 점. 네트워킹 파티를 통해 학교 밖 다양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만나고 싶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원금보다 우리 모임을 더 풍성하게 해줄 거라 기대했던 네트워킹 파티가 취소되어 아쉬웠다. 상황은 더 좋아질 테니 이러한 아쉬움은 자연스레 없어질 거다.     


글을 마칠 때가 되니, 또 자정 즈음이다. 헤매다 스러져가는 하루의 숨소리가 또 한 번 잦아든다. 그래도 이제는 이전처럼 헤맨 것 때문에 가슴 시리진 않다. 오늘은 어제가 되지만 오늘을 헤아렸던 헤맴은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 “작당모의”라는 이름과 함께. 언젠가 ‘청년’이라는 ‘헤맴의 다른 이름’도 어제에 두고 오는 그때가 와도,     

미련 없이 더 당당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철     
올해로 스물다섯 째 해를 살고 있는, 청년이다. 요즈음 사회 분위기 때문에 밝히기 좀 민망하지만 개신교 목사다. 필자에게 있어 목사란 정체성은 직업이라기 보단 성별이나 인종에 가까운 개념이므로 누군가 하는 일이 뭐냐 물으면 학생이라 대답하곤 한다. 광진구에 있는 장신대를 다니고 있으니 학생이란 말도 영 틀린 건 아니다. 실은 못난 꿈이 하나 있는데, 시인이 되고 싶다. 시를 쓰면 시인이라고 누가 말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스스로를 시인이라 소개하고 싶다. 독립출판으로 수필집 한 권 내본 적 있는데, 관심 있으시면 책방열음으로 문의 주시길. 뭐, 누가 찾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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