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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 Feb 20. 2022

방송작가와의 소개팅

 술꾼 도시 여자들을 보며 가장 감정이입을 했던 인물은 방송작가이자 세컨드 작가 '안 작가'였다. 특히 첫 회에 나왔던 소개팅 장면. 노트북 잠시 열어서 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 예전에 내가 절로 떠올랐다. 난 소개팅을 곧잘 했다. 20대 때는. 들어오는 소개팅을 막지 않았다. 왜냐. 방송국 놈들과는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내 때부터 언니들은 말했다. 같이 밤새다 눈 맞는 게 조연출인데. 절대 절대 사내연애는 안된다고. 더더군다나 PD는 절대 절대 안 된다고. 막내 땐 뭐 그렇게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말리나 싶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아. 방송국 놈들과 안 사귀길 잘했다 싶었다. 언젠가 헤어진다면 괜히 그 사람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프로그램, 방송사가 생길 것이기 때문. 사귀는 내내 선배 피디, 작가들의 눈총을 피할 수 없기 때문. 아 물론 막내 때 썸은 있었다. 언니들 말을 참으로 무시하고 썸을 시작해 연애로 가려던 찰나. 프로그램 제작진이 바뀌며 자연스레 그와도 헤어졌다. 잘 될 인연이 아니었던 거다. 


방송작가가 소개팅에 나가면 늘 받는 질문이 있다. 

- 연예인 많이 보시겠어요.

- 네.. (근데 그땐 교양국에 있어서 연예인보다 작가님들을 많이 봤었다. 방송국이라고 해서 누구보다 연예인을 많지 보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 비해 기회가 생길 수는 있지만.) 

- 지금까지 봤던 연예인 중에서 누가 가장 예뻤어요?

- 아 글쎄요. 하하하하 (나 소개팅하러 온 거 맞아?)

- TV랑 화면이 가장 다른 사람은요? 아! 성격 제일 별로인 사람? 최근에 그 사람 엄청 핫하던데 (ASMR) 진짜예요? 찌라시 그거 진짜예요? 


소개팅의 주인공 '나'가 아니라 '방송국'의 비하인드를 궁금해하는 남자들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그런 남자들과는 1차 식사를 하고 2차 커피로 이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약속을 피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조연출에게 문자로 '지금 제발 나에게 전화 좀!!!' 콜을 외쳐서 '어어~ 어 정말? 지금 당장 갈게.! 어떡하죠? 지금 파일에 문제가 생겨서 제가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다음에 뵐게요' 그렇게 난 일단 아무 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는 척했다. 그리고 난 돌아 돌아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심지어 진짜 친구들이 넌 최악의 소개팅녀라고 했던 사건도 있었다. 상대방 얼굴은 기억 안 나지만 그 상황은 기억난다. 마치 방송작가가 꿈인 것처럼 방송작가의 A부터 Z까지 물어대던 그 남자. 와 난 진짜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거기다 명동 한복판에 만나 소개팅을 했었는데 그땐 또 그 남자가 방송국 뒷이야기가 너무너무 듣고 싶다며 2차까지 가자는 거다. 거의 질질 끌려나갔는데 이 남자 걸음은 또 왜 그렇게 빠른지. 축지법 쓰는 줄 알았다. 처음엔 저기요! 같이 가요를 외치다가 그래 마음대로 해라. 난 내 갈길 가련다 하고 뒤를 돌아 소개팅 자리를 벗어났다. 어느 정도로 그가 걸음이 빨랐냐면 5미터 이상은 먼저 걸어가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그 사람 많은 명동에서 5미터는 무시할 수 없는 걸음이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렇게 직진 토크를 한다면 직진으로 혼자 가셔라 이 마음은 변함없다. (그래도 예의상 문자는 남겼다. 그때도 방송국 핑계를 댔던 것 같다.) 


당연히 다른 직업군에 비해 전문직종인 데다가 연예인들도 출퇴근을 한다는 방송국에 다닌다고 하니 궁금할 게 있기야 하겠지만. 그래 백번 양보해 아이스 브레이킹이다. 스몰토크다!라고 해도 1시간 내내 그런 방송가 TMI 질문이 이어진다면 그 어떤 소개팅도 성사 확률은 0%가 나오지 않을까.  그럼 그 이후로 소개팅은 안 했겠네? 에이 무슨 소리. 열렬히 언제든 소개팅을 주선받았다. 방송작가가 방송국 밖 사람 만날 일은 오직 그 길 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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