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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 Feb 21. 2022

가장 어려운 자리 '면접'

방송작가 13년 차지만 제일 어려운 자리는 늘 '면접'이었다. 프리랜서라곤 하지만 늘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일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겁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막내 때는 막내라서 어렵고 서브일 땐 또 서브라서 어렵고 메인일 땐 누군가를 뽑는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의 막내작가 면접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방송국과 집이 아주 멀었기 때문이다. 그땐 9호선이 없어서 환승에 환승을 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꼭 면접장에 들어가면 날아오는 질문이 '집이 꽤 머네요' '네! 그래도 열심히 다닐 수 있습니다' '막내는 가장 늦게 들어가는 데 택시비는 어떻게 책임지지' 결국 늘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 방송국에선 난 절대 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1년 차 막내가 되어 또 다른 면접장에 들어섰다. 그곳에선 우리가 지금 OOO 원로 배우를 섭외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다 

'네 그럼요' 면접장에서 받은 번호로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소리를 했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운이 좋았던 건지 그 원로배우를 섭외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근데 이게 참. 무례한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섭외를 하는 쪽도 섭외를 받는 쪽도. 자고로 면접이란 서로 대면하여 만나보는 자리인데 일종의 테스트를 하는 건 썩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다른 면접장에서 번호를 수배해보세요라는 미션을 줬다는 데. 과연 그게 올바른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내가 작가 일을 하면서 정말 가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마치 로망 같은 프로그램이랄까. 차근차근 면접 준비도 마쳤고 아는 피디님께서도 전폭적으로 일 잘한다는 푸시를 넣어주셨다. 그! 런! 데.


- 혈액형이 어떻게 되죠? 

- A형입니다.

- 난 A형이랑 안 맞던데.

- 알겠습니다. 가보세요


면접이 끝났다. 그리고 장렬히 떨어졌다. 와 씨! 나 지금 혈액형 때문에 떨어진 거야? 진짜!! 그 피디는 A형이랑은 일 안 하다는 소문을 왜 몰랐을까. 그럼 혈액형을 속여서라도 들어갔을 텐데. 증명서를 떼오라고 하진 않을 거니까. 와. 이렇게도 떨어지냐!!! 내 피를 원망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방송국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방송국은 '개편'이란 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편시기엔 피디들이 인사이동을 하게 된다. 난 다시 작가 구인 공고가 나올 때까지 그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구인 글을 보게 됐고 다시 지원을 하게 됐다. 결과는! '합격' 운이 좋았다. 날 A형이라고 떨어뜨린 피디는 옆 팀이었는데 여전히 A형을 불신하고 계셨다. 


이제 내 위치는 사람을 뽑는 자리가 됐다. 작가도 출연자도.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출연자가 있다. 연예뉴스를 진행할 때였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영화 인터뷰 자리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꼭 가서 영화도 보고 배우들 인터뷰도 보려고 한다. 그날도 우리 팀 인터뷰를 기다리며 앞에 다른 팀 인터뷰를 먼저 보고 있었다. 유튜브에 나가는 웹 예능이었다. 근데 배우들이 하하하하 웃으며 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정말 인터뷰하기 어려운 배우들이라고 알았는데. 이 분위기는 도대체 뭐야? 정말 그 출연자의 진행력, 수집력, 스킬에 감동하고 말았다. 그때 마침 우리 팀은 그때 새로운 출연자를 물색 중이었다. 난 그 출연자의 정보를 찾기 시작했고 이런 팀인데 혹시 이력서를 받아볼 수 있을지 물었다. 다행히 메인 피디님도 나의 시그널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셨고 순식간에 면접을 진행하게 됐다. 그리고 그 출연자는 우리와 함께 하게 됐다. 어디서도 실망시키지 않는 진행력으로 영화 인터뷰는 늘 그 출연자가 맡게 됐고 배우들의 반응도 좋았다. 당시 실검에 우리 출연자 이름이 뜨면 괜히 뿌듯할 정도. 때로 이렇게 기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걸 그 출연자를 통해 알게 됐다. 


하지만 관찰할 수 없는 작가라는 자리는 뽑기가 정말 어렵다. 당연히 혈액형, MBTI로 뽑지 않는다. 우리 팀과 잘 어울릴 것인가, 성실히 일을 수행해줄 것인가. 이것저것 면모를 살피지만 단 5분에서 10분 사이에 사람을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은 그 작가의 이전 직장 동료, 선후배들에게 이 작가의 특징을 물어보곤 했다. 일은 어떻게 했냐. 괜찮았냐 뭐 그런. 근데 이제 이것도 믿지 못하겠다. 후배가 정말 싫어하던! 일을 못해도 이렇게 못할 수가 있냐라고 했던 작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작가가 3-4년이 지난 후에는 칭찬이 자자한 작가로 바뀌었다는 거다. 실제로 내 또 다른 후배가 그 친구랑 일을 하고 있는데 괜찮았던 거다. 어쩌면 그 작가는 지금껏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프로그램에서 고생을 하다가 찰떡같이 잘 맞는 프로그램에서 인정해주는 선배들과 뒤섞여 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떤 선배는 뽑을 작가들의 사주를 들고 (생년 월일) 점을 보러 가서 우리 팀과 제일 잘 어울리는 작가를 추천받기도 한다는데. 차마 그렇게까지 사람을 뽑고 싶진 않다. 


정말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과연 이 방송가에서 면접의 기술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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