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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벅스 라이프>

by 다시

픽사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는 괴짜로 취급당하며 무리에서 따돌림받던 개미 플릭이 메뚜기의 폭정과 착취 속에서 개미 왕국을 구해낸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인물이 두 명 나온다. 하나는 구원자 플릭이고 다른 하나는 개미들의 지도자 아타 공주다. 플릭이 그렇다는 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중에는 구원자가 되지만 그전까지 플릭은 이상한 기계를 만들어내느라 다른 개미들이 일하는 시간에 다른 짓을 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다른 개미들이 열심히 일한 것을 망칠 때도 있었다. 자기가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으면 누구나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플릭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반대로 당연하지 않은 케이스도 있다. 아타 공주는 아직 정식 여왕이 아니지만 일선 뒤로 물러난 여왕을 대신해 개미들을 다스리는 실질적인 지도자다. 카리스마는 없지만 옆집 언니처럼 친숙해서 개미들이 편하게 대하는 그녀는 왜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할까. 대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상과 실제 자신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이 경우 두 가지 극단적인 선택지가 생기는데 불일치를 부족함으로 여기고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불일치를 불가능으로 여기고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현실에서 몽상의 영역으로 옮겨놓는 경우도 있다. 아마 대부분은 이 두 개의 꼭지점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을 것이다.


아타 공주에게도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상이 있고 어느 순간 그 상과 일치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경우 중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상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것도 아니고 이번 생은 글렀다며 자포자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애쓰는 것은 현상 유지다. 메뚜기와 싸워서 자유를 쟁취할 생각은 못하지만 메뚜기에게 바칠 공물을 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추측컨대 아타 공주가 생각한 이상적인 지도자란 모든 개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지도자일 것이다. 지금 개미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메뚜기다. 메뚜기는 개미들이 열심히 모아놓은 식량을 아무 대가 없이 착취하고 그로 인해 개미들은 그토록 고생을 하고도 부족한 식량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한다. 메뚜기를 쫓아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부족한 식량으로 배를 곯지 않아도 되고 자기 노력의 대가를 강제로 빼앗기는 공허함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아타 공주가 생각한 이상적인 지도자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메뚜기를 물리칠 수 있는 지도자일 것이다.


간극이 발생한 지점은 이곳이다. 메뚜기를 물리쳐야 개미 왕국이 좋아지는데 자신은 메뚜기를 물리칠 힘이 없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메뚜기를 물리치거나 아니면 메뚜기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굶어죽거나. 그러나 이것은 어느 한쪽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메뚜기를 물리칠 힘이 있다면 진작에 물리쳤을 것이고 죽음을 간단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면 긴 시간 동안 이런 고통을 당해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플릭은 일개미이고 아타 공주는 왕족이지만 그런 점에서 ‘보통 사람’에 가까운 것은 아타 공주다. 플릭은 확실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나중에는 그것을 모두의 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하는 영웅이지만 아타 공주는 단지 신분이 높을 뿐 내면에는 타인과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그녀는 지도자지만 흔한 일개미와 차이가 없다. 그래서 플릭과 아타 공주의 차이는 일개미냐 왕족 개미냐가 아니라 메뚜기의 폭정이라는상황 하에서 언제쯤 사람들이 나를 알아줄까 하는 혼자만의 고민을 품고 있느냐 아니면 이 고통은 언제 끝날까 라는 다수의 고민을 공유하고 있느냐의 차이에 기인한다.


그래서 <벅스 라이프>는 일개미, 즉 보통 사람이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영웅 서사다. 관객은 이 영화에서 보통 사람이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를 보지 않는다. 관객이 보는 것은 보통 사람인 줄 알았던 특별한 사람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이며 그로 인해 특별한 사람(왕족)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사실은 보통 사람이었음을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통 사람들을 매료시키는가. 모든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자기도 모르는 놀라운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설령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과거의 어느 시점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그 무언가가 드러나는 날,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너의 위치는 뒤바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짜 보통 사람인 아타 공주가 아닌 숨겨진 영웅 플릭에 감정을 이입하고 <벅스 라이프>를 보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플릭에 의해 구원받는 개미들 중 하나이며 아타 공주는 바로 그 개미들의 대표다.


만약 이 말이 비하처럼 들린다면 그건 너는 플릭이 아니야 라고 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너는 플릭이 아니야 라는 말은 네게는 어떤 놀라운 가능성도 없으며 평생 메뚜기에게 착취당하는 일개미처럼 살다가 끝날 거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전자는 맞지만 후자는 틀렸다. 우리는 아마 플릭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메뚜기를 물리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은 소위 팩트를 가장한 언어 폭력이거나 냉정한 척하며 냉소하는 말은 아니다. 메뚜기에게 착취당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상황이다. 영화 속 보통 사람의 대표인 아타 공주는 메뚜기를 물리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현상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은 운명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타 공주는 플릭이 메뚜기에게 바쳐야 할 공물을 모두 강물에 빠뜨리는 대형 사고를 쳤을 때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플릭이 돌아와 가짜 새를 만들어 메뚜기를 물리치자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다. 아타 공주가 보통 사람의 대표라면 이른바 보통 사람이란 특별한 누군가의 결정적인 실수를 용인할 수 있는 동시에 집단의 진보를 위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 즉 자기 자신만이 아닌 우리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때,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던 거리가 의외로 아득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손을 헛디딘 암벽가처럼 순식간에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처럼 아무리 높은 위치에서 떨어져도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잡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붙잡으려고 노력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러기는 어렵다. 플릭처럼 집단 밖으로 방출되어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구원을 찾아서 돌아오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암벽에 매달려 있는 한 추락했다고 줄을 풀어버리는 사람은 없다. 플릭이 공물을 강물에 빠뜨린 이후에도 아타 공주가 다시 공물을 모으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통 사람은 추락한 지점에서 다시 올라가려고 시도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구조대를 기다린다. 다시 시작하거나 혹은 시작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어쨌든 삶을 함부로 포기하지는 않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의 인생이 삶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면 보통 사람의 인생은 삶이 어디까지 수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특별한 사람의 인생을 보면 우리가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는 반면 보통 사람의 인생을 보면 삶의 끝이 어디쯤인지 헤아릴 수 없게 된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보통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모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 10일부터 2024년 12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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