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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빅 쇼트>

by 다시

빅 쇼트Big Short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찾아보았더니 여기서 쇼트란 공매도空賣渡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니까 빅 쇼트라고 하면 큰 규모의 공매도 정도가 될 것이다.


공매도는 한자 그대로 없는 것을 판다는 뜻이다. 1주에 만 원인 주식이 있다고 쳐보자. 나는 지금 주식이 없지만 공매도를 하면 1주에 만 원인 주식을 언제까지 사기로 약속하고 미리 팔 수가 있다. 내가 100주를 공매도하기로 결정했다면 지금 나에게는 1주도 없지만 100주의 매각대금인 100만 원이 당장 수중에 들어오는 셈이다.


문제는 100주를 사기로 약속한 시점이다. 해당 시점에 주가가 만 원보다 내려갔다면 돈을 벌게 되지만 만 원보다 올라가면 손해를 보게 된다. 가령 8천 원이 되었다면 100주의 매입 대금은 80만 원이므로 20만 원을 번 셈이다. 반대로 만천 원이 되었다면 10만 원을 잃게 된다. 말하자면 공매도란 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것을 확신 혹은 예상하고 취하는 금융 기술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투자은행으로부터 매수하는 상품은 모기지 부도 스와프다. 간단히 말해 모기지 론Mortgage Loan이 망하면 이익이 생기는 상품이므로 이것은 일종의 쇼트, 즉 공매도가 된다. 망할 것을 예측하고 그 반대 상품을 사들이는 행위는 거꾸로 말하면 지금 파는 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매수한 금액은 적어도 억 단위. 물론 원이 아니고 달러다. 그러니까 한화로 조 단위의 쇼트를 친 것이므로 제목 그대로 빅 쇼트가 된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모기지 론에 대한 약간의 사전 지식이 있으면 좋다. 먼저 모기지 론이란 모기지Mortgage와 론Loan의 합성어로 일명 주택담보대출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전에 <뿅뿅 지구오락실>에서 미미 가수가 말한 것처럼 집을 100% 자기 돈으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대출을 끼고 주택을 매입하게 되는데 모기지 론이란 바로 이 주택대출을 내주면서 동시에 주택을 담보로 잡는 상품을 말한다. 가령 내가 5억짜리 집을 사는데 3억을 은행에서 모기지 론으로 빌렸다면 만약 3억을 갚지 못할 경우 은행은 이 집을 팔아서 3억을 회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집값이 오르고 있을 때 모기지 론은 리스크가 거의 없다. 은행은 담보를 팔아서 얼마든지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 있고 대출자도 부득이하게 대출을 갚지 못할 경우 집을 팔면 되기 때문이다. 만약 5억에 산 집이 1년만에 7억이 되었다면 나는 은행에 3억을 돌려주고도 2억이라는 순자산이 생긴다. 그래서 꼭 집값 상승기에는 꼭 생활할 집이 아니라도 투자의 목적으로 모기지 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소위 ‘영끌’이라는 단어도 바로 여기서 생겨났다.


그러나 집값이 오르고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 오를지 언제까지 오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대출자가 은행에서 빌리는 돈은 적게는 몇 천만 원에서 많게는 몇 억이지만 은행 입장에서 보면 수천 억에 달하는 돈이다. 은행이 이 채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집값이 내려가기라도 하면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가령 집값이 대출금 이하로 폭락할 경우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은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을 고안한다. 바로 대출자에게 이자를 받을 권리, 즉 채권을 민간에 판매하는 것이다.


모기지 론으로 빌린 돈이 3억일 때 금리가 4%라면 연간 이자는 1,200만 원이다. 이런 채권을 낱개로 파는 건 아니고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의 채권을 모은다. 그럼 연간 받게 되는 이자는 적어도 수십 억에 달하게 되는데 은행은 바로 민간투자자들에게 이 결합된 채권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함으로써 혼자서 수천 억의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을 피하는 동시에 수수료로 이득을 취한다.


다만 채권 상품에는 등급이라는 게 있다. 보유 자산도 높고 직장도 안정적인 고수익자라면 집값이 떨어져도 원금과 이자를 받지 못할 확률은 적다. 이러한 채권을 모아서 만든 상품은 안정성이 높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므로 안정성 높은 상품은 수익률이 낮다. 그래서 은행은 상대적으로 덜 안정적인 상품도 만든다. 가령 직장은 있으나 보유 자산이 없다거나 어느 정도 자산은 있지만 직장은 불안정한 대출자들의 채권을 모으는 것이다. 이런 상품은 리스크가 올라가므로 그만큼 수익률도 커진다.


그러나 안정성이 높으면 수익률이 낮고 안정성이 낮으면 수익률이 높은 식으로 모든 게 정직하게 드러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라는 게 있는데 이건 말 그대로 온갖 종류의 채권 상품을 모아서 만든 재탕 상품이다. 팔리지 않는 하이 리스크 채권 상품과 적당히 안정적인 채권 상품을 섞어서 마치 안정적인 상품인 양 내놓거나 아니면 아예 팔리지 않는 상품만 모은 뒤 등급을 허위로 받아서 내놓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때부터 문제가 커지기 시작한다. 부실 채권에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은행이 채권을 팔고 또 CDO를 팔아서 그만큼의 투자금을 받으면 설령 집값이 떨어져도 충분히 손실을 메울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러나 집값이 떨어지면 투자자들은 당장 투자한 돈을 회수한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건 곧 채권의 가치가 떨어지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계속 떨어지는 주식을 무한정 들고 있을 수 없듯이 가치가 끊임없이 하락하는 채권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투자자는 없다.


투자자들이 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당연하게도 은행은 자금이 마른다. 은행도 회사라서 돈이 없으면 직원들 월급도 줄 수 없고 사무실을 운영할 수도 없다. 집값이 떨어져서 모기지 론으로 빌려준 원금을 받지도 못하고 채권을 팔아서 받은 투자금까지 모두 잃으면 파산, 즉 회사로 치면 부도이다. 안정성 있는 채권과 불안정한 채권을 나누어 안정성 관리를 하는 대신 두 개를 섞음으로써 안정성 관리를 할 수 없게 된 시발점이 바로 CDO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은행이 채권을 마구 섞어서 상품을 만드는 걸 본 일반 투자사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채권의 채권. 즉 합성 CDO를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은행에서 채권을 섞었다고 해도 CDO는 엄연히 담보를 가진 채권이다. 그런데 합성 CDO는 집이 아닌 CDO를 담보로 상품을 만든다. 영화 속 비유에 따르면 카지노에서 딜러와 대결하는 겜블러가 채권이라면 겜블러가 이길지 질지를 두고 대결하는 구경꾼이 합성 CDO다. 문제는 이 합성 CDO가 무한정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구경꾼은 겜블러에게 걸었지만 두 번째 구경꾼은 첫 번째 구경꾼에게 돈을 건다. 이런 식으로 세 번째, 네 번째까지 이어지면 부실 채권 상품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의 돈이 모이게 된다. 당연히 채권이 휴지가 되는 순간 그들은 모든 것을 잃는다.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모기지 론에 대해 길게 설명한 이유는 이러한 모기지 론의 구조야말로 영화가 지적하는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한지 3분만에 결말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 영화는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가 아닌 왜 이렇게 되었나요다. 우리나라에 IMF가 터졌을 때 그 원인을 국민들의 사치풍조로 지적했던 것처럼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 이민자와 저소득층을 비난하는 사례가 있었다. 결국 빌린 돈을 갚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터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빌려준 것은 다름아닌 은행이다. 모기지 론과 CDO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인 은행들은 좀 더 많은 채권을 팔기 위해 규제 없는 대출을 시행했다. 모기지 론이 붕괴할 거라는 자레드 베넷의 말을 들은 마크 바움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마이애미로 가보는데 그곳에는 100개의 집이 있다면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은 네 가구가 채 되지 않았고 기르던 개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거나 소득이 불안정한 스트리퍼가 집을 다섯 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집값이 오르고 부동산 경기가 활황을 띠자 은행이 모든 대출 규제를 풀어줌으로써 경제 위기를 방조, 나아가서는 조장한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행위를 사기라고 규정한다. 이민자, 스트리퍼 등 경제상황이 불안정한 사람들로부터 불안정한 채권을 사들인 다음 마치 안정적인 채권인양 시장에 내놓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리가 오르고 사람들이 이자를 갚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후에도 은행은 모기지 론이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는 한편 뒤로는 몰래 모기지 부도 스와프를 매수하기 시작한다. 위험한 채권을 모두 팔아치운 다음 채권이 휴지조각이 되었다는 사실을 공표하면 스와프를 통해 채권손실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민간에는 비밀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은행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주범인 것처럼 들리는데 물론 빠져나갈 수 없는 책임이 있지만 이게 모두 은행의 탓인 것만 아니다. 보다 정확한 원인은 바로 은행이라는 기관이 존립할 수 있는 경제적 상황, 즉 금융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경제 구조 그 자체이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데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자를 받을 권리를 팔고 또 다시 팔아서 수익을 계속 불려나가는 방식이다. 채권을 팔고 또 파는 방식의 금융거래는 부동산 시장에 엄청난 돈이 유입되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집값을 계속 오르게 만들지만 실제로 집은 불어나지 않고 가격만 불어난다.


흔히 버블이라고 말하는 과열 현상은 네이버 지식백과를 보면 시장 가격과 내재 가치의 차이로 풀이된다. 즉 내재 가치보다 시장 가격이 과대평가되었다는 것이다. 은행은 채권을 팔고 그 채권은 다시 합성 CDO가 된다. 유통 라인이 길어질수록 유통 마진이 붙어 원가가 상승하는 것처럼 하나의 채권은 팔리는 과정을 거듭함에 따라 원래의 가치보다 훨씬 높은 시장 가격이 매겨지게 된다. 물론 채권은 현물처럼 유통마진이 차곡차곡 수직으로 쌓이는 건 아니다. 채권 거래는 모두 개별적인 거래다. 겜블러에게 구경꾼이 돈을 건다고 해서 겜블러에게 프리미엄을 줘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채권이 계속 팔린다고 해서 가격이 상승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돈을 건 구경꾼이 계속 불어나면 겜블러의 가치는 점점 커진다. 구경꾼이 돈을 걸었다고 해서 겜블러의 판돈이 커지는 건 아니지만 모두의 돈이 걸려 있으므로 승부 자체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다. 집값의 상승이 이와 같다.


아무리 많은 CDO와 합성 CDO가 팔려도 대출자가 은행에게 갚아야 할 원금이 줄어들거나 커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CDO가 그 집 하나에 붙게 되면 엄청난 자본이 유입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 자본을 삼킨 집은 원래의 가격을 초월하여 무럭무럭 자란다. 하지만 영원히 가격이 오르는 집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가격은 내려가게 되고 그 순간부터 투자자들은 돈을 빼고 은행은 손실을 메꾸기 위해 금리를 올리며 갑자기 늘어난 금리를 감당하지 못한 대출자는 집을 내놓게 된다. 하지만 집값은 이미 곤두박질 친 다음이기 때문에 은행빚을 갚을 수가 없게 되고 결국 파산하거나 홈리스가 되는 것이다.


영화 <빅 쇼트>가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현물이 아닌 금융 거래를 통한 시장이 경제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함으로써 유동성이 크게 증가하고 그 유동성의 크기만큼 사람들의 생활이 불안정해졌다는 것. 실제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주목을 받은 건 파산한 세계적인 은행들이었지만 정작 집을 잃고 직장을 잃고 가족이 해체되고 거리에서 목숨을 위협받게 된 것은 돈을 빌린 일반 서민들이었다.


영화 속 ISDA의 사례처럼 소수의 은행이 거대 자본을 이리저리 휘저으면 그 파도에 보통 사람들은 휩쓸리거나 익사한다. 벤 리커트가 은행권은 비인간적이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비인간적인 파도를 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은행에게 속지 않은 소수의 깨어있는 자들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들이 돈을 벌게 되는 것은 깨어있어서가 아니라 올라탄 파도의 높이가 높았기 때문이다. 은행과 똑같은 놈이 되기 싫다며 마지막까지 매도를 망설이던 마크 바움이 끝내 가지고 있던 스와프를 파는 이유도 지금 팔지 않으면 반대로 자기가 파산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금융이라는 바다에는 해변이 없다. 파도를 타서 생존하거나 혹은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두 가지 선택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생존자의 수에 비해 익사자의 수는 훨씬 많다.


영화는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말했던 주인공들의 승리를 치켜세우지 않는다. 승리의 순간 마이클 버리는 투자자들에게 더 이상 펀드를 운영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마크 바움은 옥탑 카페에서 쓸쓸하게 차를 마시며 제이미와 찰리는 실업자들이 줄줄이 나오는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 사무실에서 낮게 읊조린다. “여긴 좀 더 성숙한 어른들이 있을 줄 알았어.”


그러니 영화 <빅 쇼트>는 승리가 아니라 패배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은행의 패배가 아니라 경제의 패배. 궁극적으로 이런 경제를 만들고 몸을 맡긴 인간의 패배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그리고 인간은 패배에서 배운다. 모기지 부도 스와프를 사고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제이미와 찰리에게 날리는 벤 리커트의 일침은 그런 면에서 패배에서 배운 인간의 교훈이라고 할 만하다. 유념할 문장이라고 생각해서 여기 옮긴다.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우리는 미국 경제가 무너진다에 돈을 건거야. 우리가 옳으면 사람들은 집을 잃고 직장도 잃고 은퇴 자금도 잃어. 연금도 잃는다고. 난 은행권이 비인간적이서 싫어. 실업률이 1% 증가하면 4만 명이 죽는다는 거 알아?”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일은 실험적인 기법이 많이 등장한 21세기에도 여전히 금기다. 나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배우라고, 여기는 말하자면 가짜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이 말은 영화 속과 바깥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 <빅 쇼트>는 등장인물이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고 심지어 실제와 달랐던 일은 그 자리에서 바로 알려주기도 한다. 이것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이건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고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25년 1월 31일부터 2025년 1월 31일까지


보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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