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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an 08. 2023

영화 이야기 <미 비포 유>

사랑은 당신과 나의 공통점에서 오는 것일까요, 차이점에서 오는 것일까요.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고들 하죠.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나와 너만 있었던 공간에 우리가 들어서면서 내 안에 나보다 우리가, 네 안에 너보다 우리가 많아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제나 불안한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내 안에 나도 너도 아닌 우리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생은 그렇게 위태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삶의 대답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사랑이 이렇게 너와 나 사이에 수없이 많은 우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면, 사랑은 결국 너와 나의 공통점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끌리는 사랑도 있습니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는 서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아주 극단적인 이성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끼기도 하죠.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온 일기는 말하자면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세상의 어떤 부분입니다. 이 말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건 내가 모르는 세상이라는 뜻도 되겠지요. 그렇다면 나와 다른 사람에게 강한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그것은 내가 모르는 세상을 향해 떠나는 모험이니까요. 대륙을 건너고 하늘로 날아오르고자 했던 사람의 열망은 어쩌면 미지에 대한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결국 너와 나 사이에 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미궁으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영화 <미 비포 유>는 흥미로운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얼핏 보기에 이 영화는 가난한 여성과 부잣집 남성의 신데렐라 이야기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성이 유폐된 남성의 본질을 구원한다는 이야기 등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여기에 신데렐라는 없고 구원을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뻔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시작하지만 얼핏 노골적으로 보이는 이 이야기 속에는 눈에 보이는 차이점과 눈에 보이지 않는 공통점 사이의 긴장감이 있습니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백치 아가씨처럼 보여도 치마 속에는 장전된 총이 있다는 말입니다.


직장을 잃은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는 사지마비가 된 윌(샘 클라플린)의 간병인으로 고용됩니다. 실의에 빠져 타인에게 날을 세우는 윌은 밝고 상냥한 루이자와 지내면서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루이자는 평생 동안 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 날 윌이 자신의 고용 기간이 끝나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가난한 시골 아가씨와 최상류층 도련님. 자유롭고 솔직한 영혼의 여자와 스스로를 유폐시킨 남자. 얼핏 보기에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렇습니다. 루이자는 파리에 가서 패션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이 시골을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그리고 윌은 자유롭고 강한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그 영혼은 마비된 육체 속에 갇혀서 나오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처럼 보이는 루이자 역시 윌과 마찬가지로 유폐되어 있는 셈입니다.


루이자가 자유롭고 솔직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윌 역시 육체 속에 갇힌 영혼은 여전히 뜨겁고 활달합니다. 그가 잠에서 깨어 비명을 지르는 것은 단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방금 전까지 꿈 속에서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목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가 죽음을 결심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은 몸 속에 갇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윌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죽음을 결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갇혀 괴사하기 전에 영혼의 자유로움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윌이 루이자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자신과 그녀의 차이가 아니라 오히려 동질감 때문입니다. 그녀의 처지가 바로 지금 자신의 처지와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현실의 여건에 갇혀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죽이고 사는 삶. 그렇기 때문에 윌은 루이자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가능성이 있다고.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열심히 사는 것이 삶의 의무라고.


그러나 마음을 여는 것이 곧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표면의 차이에서도 이면의 동질감에서도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루이자는 우연히 윌이 안락사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게 삶을 되찾아주기 위해 바깥으로 함께 나가게 됩니다. 경마장에 가고, 공연장에 가며 나중에는 여행도 떠나게 되지요.


이 일련의 외출들은 얼핏 윌의 생의 의욕을 북돋기 위한 루이자의 일방적인 노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위한 일입니다. 사지가 마비된 후 윌이 바깥으로 나온 것도 처음이지만 루이자 역시 경마장이나 공연장은 물론 해외여행도 가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런 것입니다. 루이자가 윌을 위해 계획하는 일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윌이 그런 루이자의 계획에 순순히 응해주는 것은 바로 루이자에게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 너머에 있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지요.


사랑의 가장 큰 증거가 있다면 그건 바로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꾸는 일은 스스로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루이자가 드레스를 입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낯선 일들에 뛰어드는 것은 표면적으로 윌을 위한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스스로를 바꾸어 가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를 위해 하는 일과 너를 위해 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는 것. 윌이 루이자의 계획대로 따르는 것은 사고를 당한 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외출의 즐거움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루이자를 위한 일이기도 한 것처럼요.


자신과 평생 살겠다는 루이자의 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윌이 끝내 자신의 계획을 수정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역설적인 것이 아니라 순리적입니다. 사랑을 알게 될 때 사람의 영혼은 가장 큰 자유를 느낍니다. 이 말은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감옥의 체감 역시 더욱 뚜렷해진다는 것입니다. 루이자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느낄 때, 윌이 느끼는 것은 영혼의 힘찬 날개짓인 동시에 날개를 펼 수 없는 차가운 쇠창살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만약 자신이 계획을 수정하고 루이자와 함께 살게 된다면 역설적으로 윌은 자신과 루이자를 위해서 했던 이제까지의 모든 일을 배신하는 셈이 되지요. 바로 자유로운 가능성의 삶을 사는 것 말입니다.


루이자는 자신에게 매여 패션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자신은 루이자를 사랑하는 영혼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끼면서 잊어버린 줄 알았던 감옥의 존재 앞에 절망한다면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해왔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셈이 됩니다. 두 사람이 해왔던 것은 사랑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살게 해주는 것이었지요. 말하자면 사랑이라는 것은 공자의 말처럼 애지욕기생(愛之欲基生)인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지금과 같은 생을 이어간다면 두 사람은 다시 좁은 감옥 속으로 들어가고, 그 감옥의 존재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유폐된 생을 살게 될 거라는 것을 윌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랑이 삶이 아니라 죽음을 주고, 그 죽음이 삶으로 이끄는 이 역설의 궤적은 어쩌면 사람의 성장이란 사랑을 통해서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인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나’는 오직 '당신을 만난 후에야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내가 지금과 다른 어제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내일의 나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나와 당신을 만난 후에 나는 이렇게 달라졌다고. 비로소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에요.



2023년 1월 3일부터 2023년 1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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