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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an 04. 2023

영화 이야기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어느새 2022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12월 31일은 특별합니다. 물론 이 날이 25시간이라거나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밤이라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같은 날일뿐입니다. 어제나 내일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다른 날과 다르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이 날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의미 때문이겠지요. 마지막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많은 것들과 작별하게 하지요.


작별한다는 것은 내 안에 들어왔던 것들을 다시 내 바깥으로 보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신기해서 한 번 내 안에 들어왔던 것은 어떤 경우에도 다시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했던 사람들, 지키지 못한 약속, 잊어버렸던 기억들은 일상의 한가운데 불현듯 떠올라 아무리 멀리 온 것처럼 느껴도 사실은 제자리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별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디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부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거창해 보이는 말이지만 사실 사람들은 매일 알을 깨려고 시도합니다. 부질없는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애쓰고, 아무 약속도 없는 미래를 애써 기대하며, 시끌벌적한 축제의 한복판에서 나만 소외된 것 같은 오늘을 다르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개념이고, 개념은 상상 속에서 1초, 1분, 1일, 1달로 분절될 수 있어도 삶은 분절되지 않는 것이어서 어디까지가 지난 단락의 끝이고 어디서부터가 새로운 단락의 시작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별이라는 말을 씁니다. 바로 여기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불치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마틴(틸 슈바이거)과 루디(잔 조세프 리퍼스)는 각각 뇌종양 말기와 골수암 말기로 같은 병동에 입원하게 됩니다. 병동에 누가 숨겨놓은 데킬라를 마시면서 문득 루디는 얘기하죠.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그러자 마틴은 천국에 가면 사람들은 온통 바다 얘기만 한다며 죽기 전에 바다를 보지 않으면 천국에 가서 할 말이 없을 거라고 말하죠.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차를 훔쳐 바다로 떠나게 됩니다.


마틴은 몰라도 루디는 차를 훔쳐서 병원을 탈출하는 일 따위 아마 죽을 때까지 할 일이 없는 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바다를 보러 떠난 건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요컨대 죽음이 명확해지면 삶도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라틴어 격언 중 하나인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삶의 투명성이지요. 모호하고 흐릿한 것을 걷어내고 뚜렷하고 분명한 일에만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늘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루디에게 있어 지금 가장 명확한 일은 바다를 보는 것입니다. 만약 마틴의 말이 사실이라면,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루디는 천국에 가서 아무 할 말도 없을 테니까요. 말하자면 평생 오늘을 사는 것 외에 아무 관심도 없었던 두 남자에게 비로소 목표라는 것이 생긴 것입니다. 목표가 생겼을 때 삶은 비로소 운동성을 가지게 됩니다. 가슴이 뛰고, 숨이 차며, 피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죠. 말하자면 살아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곧 마틴과 루디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는 죽음만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삶도 데리고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들을 바다로 데려다주는 운송수단, 즉 훔친 자동차입니다. 이 자동차는 원래 그들의 것이 아니라 두목의 돈을 운반하기 위해 마련한 갱단의 차입니다. 그런데 어리숙해 보이는 두 명의 갱은 이 차에 돈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들은 단지 윗사람의 말대로 차를 두목에게로 가져다 줄 뿐 이 차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대로 마틴과 루디는 차를 타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씁니다. 게다가 차 안에 들어 있던 돈까지 발견해서 바다로 가는 짧은 여행 동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호사를 누리죠. 남에게 친절을 베풀기도 하고, 평소라면 생각할 수도 없었던 물건을 사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데 사용하기도 하지요.


말하자면 이 영화 속에서 돈은 삶이며, 자동차는 삶을 운반하는 수단, 즉 시간인 셈입니다. 돈이 실린지도 모른 채 두목의 물건을 운반해주다가 도둑맞은 갱단의 모습은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의 삶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쓰다가 마침내 그 시간마저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하는지, 그 시간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옮겨지고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시간과 삶은 진정으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탈취되고 마는 것이죠. 


반대로 마틴과 루디의 경우에 그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분명히 차를 몰아갑니다.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시간은 온전히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쓰이며, 그로 인해 그들의 삶은 마치 그들이 써대는 돈처럼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평생을 살아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들을 불과 죽음이 선고된 며칠 만에 이뤄냈다는 점에서 명확한 삶의 형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명확한 삶이란 다름 아닌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죽음을 자각한 삶인 것입니다.


이것은 저축할 생각 말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 뭐든지 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의미로 가득한 삶과 방종으로 내팽개친 삶은 다릅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단지 지금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바로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나의 목적을 향해 투신하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삶을 생명력으로 가득 채우라는 것이지요. 단지 허영과 쾌락을 위해 지금 당장 돈을 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영화는 말미에 바다에 도착한 두 사람을 보여줍니다. 그때 그들은 차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삶도 시간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목적지에 온전히 도착했습니다. 인생을 하나의 여행이라고 비유한다면 두 사람은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런 것입니다. 삶은 낭비하거나 아껴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을 향해 마땅히 지불해야 할 여비 같은 것이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고. 만약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천국에 들어가도 아무 할 말이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소외당하고 따돌림받을 게 분명한 곳이라면 아무도 그 문에 노크하지 않겠지요.


오늘은 2022년의 마지막 밤입니다. 이제 저는 2022년과 여기서 작별하겠습니다. 하지 못한 숙제들을 불태우고 미련이 남은 글자와 입 안에서 맴돌기만 했던 말들을 삼키겠습니다. 그래서 해가 뜨면 바로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새해가 밝았고 이것으로 한 걸음 더 죽음에 가까워졌으니 죽음이 한 해 더 명확해진 만큼 삶도 명확해질 거라고 기대하겠습니다. 그리하여 2023년은 아낌없이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을 위해 지불하기로. 언젠가 천국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두려움없이 문을 두드릴 수 있게.



2022년 12월 2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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