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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l 12. 2023

영화 이야기 <그레이트 월>

장예모 감독의 모든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레이트 월>이나 <영웅> 같은 블록버스터와 <집으로 가는 길> 같은 드라마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이 감독의 장점은 드라마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레이트 월>이 나쁜 영화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확실히 재미가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재미는 오락으로서의 재미, 즉 킬링 타임에 해당하는 재미입니다. 반대로 <집으로 가는 길>은 시간을 죽였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2시간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2시간 중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레이트 월>이 보여주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프로파간다라고 생각합니다. 멧 데이먼부터 유덕화에 이르기까지 얼굴만 보면 누구나 다 아는 배우들을 기용하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CG가 난무하는 것은 자본의 선전이며, 군대를 색깔 별로 분류하고 장벽을 거대하게 묘사하며 괴수의 흉측함을 강조하는 각종 클로즈업은 시각의 선전입니다. 사사로운 이익과 국가를 대한 봉사 중에서 명백하게 한 쪽 손을 들어주는 서사는 사상의 선전이며, 보상을 마다하고 우정을 택하는 결말은 재물보다 정의가 더 중요하다는 윤리의 선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감독과 배우 그리고 CG를 제외하면 사실 이 영화의 구조는 지극히 흔한 양산품에 속합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모험을 떠났다가 대의를 위한 일에 참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반성하고 개인의 욕망 대신 전체의 이익에 투신하는 사회적 인간을 만들어낸 이야기는 어느 쪽으로든 참신하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이 뻔한 이야기의 감독이 장예모이고 주인공의 얼굴이 유명 헐리우드 배우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뻔한 것이 뻔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말하자면 누가 봐도 흔한 달걀말이를 만들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죠. “이 달걀 아주 귀한 거야. 재벌들만 먹는 건데 어렵게 구했어.” 그런 말을 들으면 갑자기 흔한 달걀말이가 반찬이 아닌 고급 요리로 바뀝니다. 젓가락 대신 나이프와 포크를 써야 할 것 같고 대형 마트에서 파는 케챱을 뿌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도 들죠. 이유는 이 달걀말이가 아주 비싼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무리 비싸도 달걀말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장은 본질은 바꾸지는 못해도 본질을 이해하는 방식은 바꿉니다. 가령 똑같은 물건이라도 명품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쇼핑백에 담겨 있는 것과 편의점 비닐 봉지에 담겨 있는 것은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니까요.


요컨대 자본이라는 포장은 그 본질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영화 <그레이트 월>을 예로 든다면 이 영화는 흔한 서사에 자본이라는 포장을 입힘으로써 이 서사의 가치를 급격하게 높입니다. 말하자면 전체가 개인에 우선한다는 서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것이지요. 사익보다 대의가 중요하다는 것은 달걀말이와 비슷합니다. 나쁜 이야기도 아니고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식탁에 올라간 반찬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달걀말이가 엄청나게 비싼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갑자기 반찬 중 하나였던 달갈말이는 메인 디쉬가 됩니다. 요컨대 식탁의 왕이 되는 것이지요.


사익보다 대의가 중요하다는 말을 왜 이토록 많은 돈을 쓰면서 해야 했는가. 사익은 개인에 해당하고 대의는 전체를 의미합니다. 개인이라는 개념은 한 개인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실행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성립합니다. 반대로 전체는 전체를 위해 개인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접을 것을 요구하지요. 말하자면 이 영화는 개인이 전체에 종속되는 것을 윤리적 이념으로 삼고 있는 집단에서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자본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하면 그것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영화 <그레이트 월>의 제작사는 LeEco와 레전더리 픽처스입니다. LeEco는 중국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이고 레전더리 픽처스는 중국 완다 그룹 계열사지요. 즉 <그레이트 월>은 철저히 중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2013년 당 대회와 전국인민대표회의를 통해 시진핑 주석을 필두로 한 독재 체제를 완성했습니다. 나치 정권 때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독재에 필요한 것은 바로 프로파간다입니다. 좋게 말하면 독재를 윤리와 효율의 이상적인 접합체로 생각할 수 있는 마케팅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영화 <그레이트 월>은 한 감독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집권 체제를 옹호하고 이해시키려는 목적의 프로파간다 상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은 이미 국내용으로 만든 무수한 비슷한 내용의 영화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이트 월>을 새롭게 제작한 것은 헐리우드 배우를 기용하고 영어를 사용한 점으로 미루어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도 이러한 프로파간다를 홍보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바꿔 말하면 국내 선전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판단에서겠지요. <전랑2>나 <장진호> 같은 영화의 흥행 성적은 이미 엄청난 수준이니까요.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프로파간다가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거기에 더불어서 이 프로파간다를 말하는 방식 역시 비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예모 감독의 블록버스터, 대표적으로 <영웅> 같은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의 무술 경합이나 화살이 날아오는 장면 등 미장센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시각에 집중시키고 있다는 말이 될 텐데요. 이야기를 시각을 통해 집중시키는 방식은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데는 분명 효과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인상 이상을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요컨대 사람에 비유하면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매력은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레이트 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대를 색깔 별로 나누고 번지점프를 이용해 적을 공격하는 모습이나 풍등을 타고 날아오르는 장면 등은 분명 인상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의 재미는 그런 미장센이 아니라 멧 데이먼의 매력에 기대고 있는 바가 큽니다. 나아가 화려한 미장센의 향연으로 말미암아 영화의 제목이 성벽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성벽이 갖는 매력은 반감되고 말지요. 거대한 벽이 갖는 웅장함과 묵직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제목에 걸맞는 이미지였을텐데요. 적이 땅꿀을 파고 쉽게 통과해버린 것처럼 결과적으로 벽은 한없이 가벼워지고 말았습니다. 프로파간다도 그렇지요. 지나치게 강조하면 가벼워 보이는 법입니다. 묵직한 것은 원래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2023년 5월 28일부터 2023년 7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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