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주체'를 철학의 제 1원리로 삼았던 데카르트
그를 이어 받아 이론화를 더 깉이했던 칸트
붉은 홍매가 피었다
어느 나무엔가는 아직 그 꽃망울이 맺혀져 있고
또, 다른 꽃망울은 떨어지고 있다
데카르트나 칸트는 대상, 사물 자체가 인식의 출발점이자 중심이고 그 둘레를 주체라 행성처럼 회전한다고 했다
마치,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 것이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지동설과도 같이
가깝지 않은 길을 달려 내려온 섬진강변
섬진강 그 이름만으로도 웬지 마음을 설레이게 하여준다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섬진강변 광양 매화마을
처움에는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 계절을 대표하는 꽃 축제
사실, 사진속에서 보았던 그 꽃들
그 마을
사진 전문가들과 관광 담당자들이 찍어 올린 그 어떤 사진보다 더 나은 사진을
담기는 어렵다
또, 결국은 사진속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
더 의미있는건 그 길을 운전하며 오고,
섬진당변을 달리며 재첩국도, 화개장터로 보며,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진주 냉면을 먹어보러 가려한다
잠시 섬진강변에 놓여진 벤치에 앉아 노트북을 꺼내 커피한 잔과 함께 습관처럼 글을 쓴다
아직은 바람이 좀 차다
요즘 내 머리속에 맴도는 화두는
삶의 중심은 뭘까?
꽃이 있어 꽃구경을 왔으면 꽃이 중심일까?
결국 주체는 나다
대상이 되는 꽃, 맛집, 섬진강이나 세상사 그 무엇이 되었든 나를 중심으로 돈다
모두가 다 그러하지 않을까?
지동설, 내가 태양이다
그게 칸트가 말했던 철학의 가장 첫번째 주장인 사유의 주체에 대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고교시절, 대학시절 읽던 책들을 다시 접하게 된다
둥그런 원이 있고
그 원안에 나라는 한 주체가 존재한다
그 원의 주변을 다양한 대상들이 돌고 돈다
꽃이 될 수도, 맛집이 될 수도, 돈이 될 수도, 성공이나 실패 뭐든 나를 중심으로 돈다
내가 그 들을 중심에 두고 돌면서 다가가려 하는 삶이 아닌
난 그져 나일 뿐
거울에 비친 모습은 내 모습, 내 마음일까?
거울에 비쳐진 것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할 듯 싶다
우선은 나 스스로 내 자신에 대한 이해와 책임
난 왜?
이과를 택했을까?
고교시절 한 때는 칸트에 푹 빠져 지냈었는데,
세상의 모든 철학은 칸트라는 호수로 모이고, 그 이후의 철학은 칸트라는 호수에서 또 작은 줄기로 흘러 퍼진다는 문구를 본 기억이 난다. 이젠 너무도 많이 잊어 버린 그의 철학, 다시 접하고 읽어보려한다.
지동설이 의심의 여지를 가지지 않듯
사물에 대한 판단과 선택의 중심에는 내가 있는 것이다
그게 칸트가 첫 화두로 말했던 사유의 주체의 주된 주장으로 기억에 남는다
내 기억이 맞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