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학에서 은퇴하는게 꿈이었고,
당연 그리될거라 그 때는 믿었었는데,
대학강단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려오고 난 뒤의 방황
그 기간이 길 수도 있었지만,
두 아이의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냐 맘이 시키는 대로 길 수만은 없었다
그래도 이어졌던 3~6개월간 참 무수한 책들을 접했던 듯 싶다
외부와의 차단속에 내 방안에서만 시작되고, 끝났던 24시간속엔
아침이나 저녁, 낮과 밤의 구별이 없었던 그러한 내 인생의 유일한 시간
아마도 그 시간이 나를 심리학으로 더 밀어 넣었던 듯하다
내분비 닥터로 그래도 선배들의 기대감속에 학회와 강단위에서 논문을 썼었던 것이
다 옛이야기가 한 순간 되 버리던 시절
그리고, 개원을 하면서 들어간 곳이 중앙대 심리학 박사과정이었다
학부과정을 지원했으나,
의학박사소지자의 지원이 신기했던지 지도교수의 부름
학부대신 박사과정지원에 대한 테스트를 그 자리에서 해 주셨다
비록 박사과정의 논문을 마무리 짓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속에서 내 시간의 많은 부분을 가져갔었던 비트겐슈타인
그의 책중 아마도 대중적으로 가장 알려진 것은 '논리철학논고'가 아닐까?
다른 이름가진 누군가와는 달리 언어철학, 언어와 사회에 대한, 언어가 만드는 인격
'아포리즘'
그의 책들은 길기보다 단 문장의 이어짐이 많았다
속담이나 세상속에 전해져 내려오는 삶의 가르침과는 달리 아포리즘은 그 말을 한 자가 누구이고, 어떤 문장속에 포함된 요약의 힘을 가지고 있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세계는 사물의 총체가 아니라 사건의 총체이다'
잊지 않고 싶은 문장들을 적어 둔 작은 수첩
참 오래된 수첩이다
붉은 색이었던 수첩이 이젠 적색에서 검은색으로 넘어가려한다
미국에서 돌아올 때 공항에서 구매했던 몰스킨의 손수첩이니 거의 25년은 함께 한 듯
주말 광양에서 구해온 천리향과 홍매를 일부는 화분에 심고 힘듬에 방안 의자에 반 듯 누워있는
내 눈에 들어와준 수첩 한 권
덕분에 잊었던 문구를 접할 수 있었구만
CORONA 19
WHO가 정한 정식 명칭은 COVID-19
corona vital diseae정도의 뜻이 되나 보다
나만이 아닌 세계가 타국의 동향과 모습을 유의롭게 지켜보던 시절이 지금 정도일 때가 있었을까?
어느 한 나라가 아닌 지구내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함께
이를 보면 '사물의 총체가 아닌, 사건의 총체'가 바로 세계라
말한 비트겐슈타인이 거 봐라 하며 껄껄 웃고 있지는 않을런지
아마도 그가 즐기던 피아노를 경쾌하게 전쟁중 한 손을 잃어 한 손으로의 연주지만
즐기고 있지는 않을까
몇가지 아쉬움
그간 우리가 접했던 신종플루, 메르스와는 달리 지금의 covid-19는 전염성은 높다해도
기저질환이나 연세가 드신, 다소 건강에 대한 염려를 가졌던 분들에서 주 사망률을 보이고 있다
아직 이렇다할 치료제가 없는 지금 집안에서만의 활동이 면역에 주는 건 +일까? -일까?
가둠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 현실적 답을 찾아야할 때가 아닐런지
마스크?
예비군훈련에 대해서는 그리도 열심히 통지하고
각종 세금과 전기, 수돗세
하물며, 당신 그 병원 갔던 거 맞냐는 물음을 위한 엽서조차도 주저없이 그리도 열심히 보내는 정부가 굳이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세우고, 복불복으로 줄을 서도 빈손으로 돌아감을 보여야하는 것일까?
각 집에 몇이 사는지
언젠가 집에 있다 인구조사나오신 분의 질문에 응대를 한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지키겠다는 대통령의 말
믿고 싶고, 그 행동도 보고 싶다
비행기를 날리기 보다 쉬운것이 우리처럼 도시화, 계획화된 구조속에서 마스크를 나누어주는 방법을
그렇듯 어려운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을텐데
예전엔 각 마을에
머리에 꽃을 꽃은 여인과
삼돌이가 있었는데
다 어디갔을까?
삼돌이로, 가볍게 그냥 오늘 점심은 뭐가 맛있을까?
다른 모습없이 그냥 나 너 좋아, 너 미워 하며
누가 때리면 돌아보며 그냥 헤헤 웃음도 짓고
현실속 나는 오늘 점심에도 오후진료를 위해 잠을 청해야하는
반나절용 바테리에 좀 있으면 충전기를 쫒아야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