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차이가 크지 않음에도 그의 호칭은 항상 교수님이다
교수와 제자의 연으로 만난것도 25년의 시간
그도 나도 이젠 중장년을 넘어서는 동료 닥터이건만
소주 한 잔 채워주며 형이라 부르라해도
교수라는 호칭을 버리지 않고,
스승의 날이면 전화와 꽃을 보내준다
89년, 2월의 졸업식장, 6년의 시간 마지막이자
그 시간동안 준비했었던 진짜 시작의 시간
연단위에서의 그 많던 덕담들을 담은
졸업식의 지루한 긴 시간은 기억속에서 다 잊혔지만,
연단위의 그 분이 하셨던 말 하나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제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린 동업자이자 경쟁자가 된다는 말
다툼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길위에서 같은 목표를 가진 선의의 경쟁자로
길지 못한 이 나라의 의료를 이 자리까지 같이 왔고
더 앞의 길로 같이 가게 해야할 동료들이라고
짧지 않은 시간 여러분들과 싸워왔고, 여기 함께한 그대들이 버텨 남아 있어주어 고맙고
한 번 우리 해 보자시던 말씀
그 시간이 30여년이 흘러가 버렸다
의사에 대한 자존감, 그 의미 깊이에 대해 소명감이 강하시던 교수님 한 분
사람의 생명, 삶의 질을 다룰 줄 모르는 의사를 의사라 할 수 있느냐며
손 길 좋은 기술자가 되기 위해 지낸 시간이 부끄럽지 않냐던 교수님
인사오는 제자중 자네의 머리와 재능으로 기술자가 된건
자네의 불행이라며 문밖의 고급 외제차안으로 밀어 넣으시던 분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를 우리 시절에는 메이저과라 불렀었다
벌써 강산이 3-4차례 변한다는 시절만큼, 이젠 해당과들의 지원자가 미달이고는 하다
60이 막넘은 선배 외과의는 지금도 동료들과 돌아가며, 당직, 숙직을 스며 수술을 한다
산부인과 선배는 부인과는 떼어내고, 산과만을 보며 분만은 어떻게 하더라하며 이젠 잊으려 한다고 한다
물론, 그 때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수 있었던 몇개의 과 들은 경쟁이 심했지만
지금 정도의 치열함과는 다소 의미와 차이가 있었지만
명문대를 다니다, 의전으로 옮기며 여전히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한
지인의 자제
기뻤다
난 못했지만, 이 친구의 재능이라면 이룰 수 있는것들이 의료 현실엔 많이도 남아 있기에
졸업과 수련의후, 인사를 와 기대와는 다른 과에 지원을 했다는 말에
실망보다는 현실감을 더 잃어가는 나에 대한 아련함이라해야하나?
미달이 되어가는 메이저과들
하지만, 사회적 의료 문제가 생기고 나면 메달리는 메이저과들
환자들은 일이 생기면 살려달라 의사에 메달리지만,
해당과의 닥터는 일상속에서 살려달라 소리없는 외침을
선술집 그져 작은 탁자위의 쓴 소주잔 한 잔속 눈물을 떨구며 홀로 속으로 외친다
이러려 닥터가 됐을까를
밥그릇
개도 아니건만
뭔가를 말하면 밥그릇싸움을 하는 투견대우를 받으며
진료실을 지킨다
어제의 그냥 작디 작은 인생사의 한 이야기를 전화로 나누고
된장찌게와 고추를 안주삼아
퇴근 후 쓴 소주 한 잔 입을 통해 털어 넣었다
그리곤, 아내에게 혼났다.
집에서 파전해 줄 수 있었는데 하며 ^^
때론 글로, 말로 전하지 못하고 맘속에 묻어 두어야할 이야기도 있는게 인생일테니
수면제의 덕에 잠이 든 탓인지
꿈속에서도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글은 좀 어둡네 ^^
세수를 했다
얼음몇덩이에 로션을 섞어 얼굴을 문질러 본다
정신 차리고, 웃자
진료실 작은 거울을 보며 웃는다
둥그런 작은 거울내에 내 큰 얼굴이 다 안들어가서 그냥 웃는 입만 비추어 본다
말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냥 웃자
웃으면, 사람들은 즐겁구나 하고 생각해주겠지
머리에 꽃도 꽂은 마을의 삼돌이가 되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