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숨기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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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주초부터 시작된 몸이 주인에게 주던 항변이

이번주는 내내 이어지나보다

의사로 30여년

화요일 오전 진료를 하지 못했다

아무리 심한 몸살이어도 쉬지 않아왔었는데,

마음과 달리 주인을 무시하며 꼼짝을 못하게 하는 몸과 무너질 듯한 두통

결국 오전 진료 대신 일반 처방의 거의 3-5배에 달하는

자가 처방후 오후 진료를 이어한게

아마도 내 기억으로 30여년만에 처음이 아니었을까?

어제 침대에 누워 또 한 주의 마지막날이 찾아왔음에

시간은 여지없구나

쓸모란 뭘까?

꼭, 쓸모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만 했었을까?

아니, 내 진짜 쓸모있는 사람으로 살아는 온걸까?

흔히 반어법처럼 자랑스레 말하기도 하는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

그 개천은 어떤 곳일까?

금수저

흙수저

한 가수 덕분에 알게 된 술집의 한 병당 얼마짜리의 술이 있구나를 알게 됐지만

그러한 술을 마시면 금수저일까?

젊은 친구들이 마이애미에서나 어울릴 법한 오픈카를 몰고 괴음을 울리며 지나가는 모습

그 들의 경제적 능력은 아니겠지?

아마도 그 중 일부는 개천에서 올라온 용이 품은 알에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개천에서 난 용들은 승천을 하기 보다

호랑이마냥 날렵한 다리도 가지지 못한채 왜 땅위를 기어다니고 있었을까?

그러니, 용이 용의 알을 품었다 착각속에 스스로도 용이라 혼동하는

지렁이들을 이 땅에 너무 뿌려 놓은 건 아닐런지

지렁이는 이 땅의 정화능력이라도 가지지만,

용의 알에서 나온 지렁이의 능력은 이에 반하는 재주를 그 안에 품고 있는지도

가까운 사이였다며 누군가 전하지만,

그 보다 한 때는 그리 멀지 않은 인연으로 지냈다 생각했던 어느 한 분

개천에서 난 용을 자처하며 덕분에 멋들어진 재즈카페에서

음악과 함께 병당 얼마인지 숫자를 구별하기 어려운 와인도 종종 사주시던 분

공천과 정치에 대해 논하며

마치 내 병원 쇼파를 바꾼 것 마냥 쉽게

와이프 병원의 수십억짜리 시술기를 몇대 바꾸었음을 말하던 분들 속에서

바보같던 나도 한 때는 그 무리에서의 벗어남이

그 들이 삶을 말하는 레벨의 업다운과도 같이 생각했었던

멍청한 시간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금수저

흙수저

개천

나이가 고마울 때도 있다

그 기준과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니

주초부터의 몸의 반란이 이어져 그런가?

오늘은 두통이 조금 더 심해지며, 맘도 가라앉으니 글도 바닥으로 내려앉으려하나보다

숨박꼭질

상대에게 안보이게 숨는 게임

반대로 보면 나도 상대가 안보인다

내 두눈을 가리면 상대가 안보인다

그럼 나도 숨은걸까?

육중한 몸은 땅위에 덩그러니 둔채로 머리만 땅속으로 숨으면 적을 피한거라 믿는다는 타조마냥

나도 호의의 지인은 푸우라, 다른 지인들은 곰돌이나,

더 한 누군가는 곰탱이라 부르듯 적지 않은 덩치의 몸이지만

오늘은 그냥 어디 길가의 들꽃이나 풀속에 머리만 집어 넣고 나 없다 하고 싶은 하루다

물론, 누군가 고이 심어 놓은 그러한 꽃밭은 못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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