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빨리도나보다, 현기증이 난다
'나는 내가 지구위에 살며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바삐 내려 버리고 싶었다'
어제는 퇴근후 좀 시간이 지난 딸아이가 받았다는 블루투스 스피커에 선을 달아 오래된 싸구려 턴테이블의 AUX단자와 연결을 시켜보았다. 아마도 턴테이블보다 블루투스가 더 비싸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내가 산 스피커도 아닌 것이니 가격을 알 수는 없지만, 메이커를 보아서 싸지는 않을 성 싶다. 턴테이블위에 판을 올려놓고, 중고 시장에서 구매한 LP판은 잊을만 하면 한 번씩 그 존재를 알리려는지 튀어준다. 비련, 비참, 또는 반대로 교만과 자기학대의 한 사람으로 불리던 슈만의 판이 턴테이블위에서 돌아간다. 난 침대위 배개에 등을 의지해 책을 읽는다. 언제부터인지 읽는 책들이 자꾸만 과거로 올라간다. 어제는 이상의 날개와 김유정의 동백꽃을 읽다 잠이 들었다.
위의 구절은 날개속 한 구절이다
저 구절을 읽다 다시 돌아와 3-4번은 반복하여 읽었다
그 동안 느끼지 못해왔던 걸까?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지구의 돌아감의 속도를 인식못해왔을 뿐 현기증속에 살아왔던 듯 하다
즐거이 올라타라했던 회전목마도 알고 보니 조금씩 그 속도에 익숙해지게 하며
조금씩 더 빨리 더 빨리 돌고 돌았을 뿐 제자리를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나보다.
마차로, 말로,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 태워 즐거움을 주었지만,
그 즐거움을 돌아보니 어딘가를 갔던 것이 아닌 바로 그 자리
깨달으니 현기증이 느껴진다
지구위에서 내릴 수 있을까?
도는 속도가 느려지고, 조용했던 적이 있었을까?
인간들 사회와 역사속에서는 그 어느 시간대, 어떤 장소에서든
크고 작고의 성적, 감정적인 작은 개인적에서 부터 종교나 인권, 개개 국가를 위한
또는 다른 다양한 포장을 한 약육강식의 이어짐이 끊긴 적이 있었을까?
때로는 전 지구위에서
때로는 어느 한 적한 골목, 아니 대로변에서도
일어났던 어지러운 돌고 돌던 것이 이번엔 바이러스가 그 역을 맞았나보다.
이젠 들어가 내 것이 아닌 것임에도 뺏어 가지려하기 보다,
들어옴을 막으려 함과 하나라도 더 사서 방안에
오늘이 아닌 언젠지 모를 내일 쓸 것을 담아 둔 채로
부족함에 당혹해 함에 고개를 돌림을 보면
바이러스가 세균은 어쩌면 역사속 인간의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로
그 의미를 보여주려 주기적으로 나오고는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걸 보면 인류는 학습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인플루엔자가, 페스트가 알려준 것은 이미 수십년, 수백년이 흘러 잊었고,
신종플루나 메르스 역시도 수년이 지나
마스크만이 그 기억속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건 아닌지
미국내 친구의 메시지, 마트에 휴지도 동이 나있다 한다
우리가 그리 바라던 선진국, 잘사는 것의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
잘 꾸며진 카페보다
초가집안에 앉아 따스한 차 한잔했으면 싶다
아니 술 한잔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