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와 이태백은 살아 서로 한 번 만났지만,
서로를 그리워 했다 한다
술을 즐기며 즉흥적으로 시를 읅던 이태백
한 번 쓴 시를 다시 읽으며 고치고 다시 고치던 두보
둘의 성격은 아마도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열살 가까이 더 위였던 이태백을 두보가 그리도 그리워한 이유는 어떠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술을 사랑한 시선(時仙)이태백
가족을 잃고 방랑의 길에 올라 나라를 떠돌던 시성(時聖) 두보
지겹던 것이 일상이 되버렸던 의과대학시절의 시간들과 병원속의 삶
어려서 부터 그냥 익숙해져 다른 삶을 몰랐다 함이 더 맞을 듯
그게 내 삶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이 그냥 그 속에서 살아왔었다
난 스쳐간 누군가의 삶 그리워하며 살아 볼 기회 조차.
아니 그럴 시간마져도 주어지지 못했던 듯 하다
언젠가 다른 삶은 어떤 것일까 싶어
음악을, 악기 하나를 익히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를 않더구만
그냥 듣는 것만이 내 능력의 다 인가보다
한두해 전부터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었다
대학시절엔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현상인화를 즐겼지만
언젠가부터 많은 것을 잊었던 삶
카메라로 사람의 삶을 담으려다 보면 때론 거친 말을 듣기도 한다
아내가 사람들이 싫어한다며 카메라로 누군가를 찍으려면 말리던 것을
아들이 아내에게 하던 말이 뒤에서 들여온 적이 있다
아빠가 그래도 유일하게 즐기는게 사진인데 그러지 말라고
난 사람을 찍는다보다
나와 다른 그 들의 삶을 찍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찍어 올리면 몇 들어오지도 않는 블로그의 글을 어찌 보는지
본인의 얼굴을 지우라는 항의의 메일이 몇번 날라오다보니
내 엉떠리 그림속 인물은 자신인 지 알아보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그리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한 해가 지고, 새로운 해가 올 때면
지는 해를 찍기 위해, 새로 뜨는 해를 찍기 위해 태백산, 한라산을 올라 밤을 새고
때론 서해의 낙조를 찍고 달려 동해의 일출을 찍기도 하며 20-30년을 이어왔었는데
몇년전 부터는 날의 숫자, 해의 숫자가 바뀜에 그렇듯 의미를 두어야할까 싶어진건
내 안의 어떤 변화일까?
마구 잡이로 엉낀 살구나무 가지를 과감하게 쳐냈다
아마도 1/3은 잘라낸 듯
작던 나무들을 심은 것이 매화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가 자라며 서로의 가지들이
엉키기 시작한 것을 매화나무는 아래 가지를
자두나무는 그래도 가지들이 위로 올라 다른 나무과 엉킴이 없건만
살구나무는 옆으로 다른 나무를 건드려 쳐 냈다
4년을 자라고 나니 처음 자리한 곳들의 간격을 너무 좁게 했었던 내 잘못이
그들의 가지치기로 돌아가나보다
잘린 나무가지도 화가 났는지
가지치기하던 톱날에 왼손 엄지에 다소 깊은 상처가 나 가지에 피가 줄줄이 떨어지며 맺힌다
아프기 보다 웬지 미안함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사진속 '이 동네꺼'
맞을까?
틀려도 그냥 믿고 싶어서 언젠가 춘천여행시 아내와 몇 몇을 샀다
아니면 어떠하리
맞는다 생각하면 그만 일 것이지
그 간 그린 그림들을 모아둔 것을 보니
참 못그렸다
이번 사진은 그냥 올려보련다
난 잘하는게 뭘까?
아니, 지금은 못한 다 해도 잘 할 수 있는게 뭘까?
아니, 내가 원하는건 뭘까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