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WHO는 장애에 대하여 신체적 장애, 정신, 정서, 심리적 장애, 또 이를 다 함유한 사회 환경적 장애, 세 개의 차원으로 분류를 하고 있다. 말은 거창하지만, 결론은 주어진 사회의 체계와 구조에 부적합한 개인적 문제을 말한다.
즉, 장애란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되어지고 이를 받아 들여주는 사회는 배려와 배품으로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길을 넓히고, 도움을 주는 미덕을 논한다. 소아마비로 본인 스스로의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건축가 로널드 메이슨은 이러한 특정 장애에 대한 구조물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며 장애인들을 위한다는 구조물이 아닌 모든, 누구에게나 다 도움이 될 수 있는 보편적 구조물과 시설을 말하고 있다.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유모차도, 또 일상의 피로에 지친 누군가도 편하게 지나갈 수 있는 길인 것이지 꼭 특정 누군가에 대한 배려만을 논할 수 없음을
사회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원한다
드물지 않게 문의를 받게 되는게 어느 분야에 아는 사람없는가를, 어느 누구와 친분이 있지 않느냐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한 것이겠지만, 돌아보면 나도 그러했던 듯 싶다. 필요한게 있으면, 그 분야에 내 누구 아는 사람이 없던가? 아니면, 그래 이 친구는 그 쪽에 좀 줄이 있을거야를
네트워크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현대에서는 또 하나의 장애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든다. 어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어느 신문사에 아는 기자가 있으면 좀 연결해 달라는 후배의 부탁, 한 때 해당 신문사에 짧지 않은 기간 칼럼을 써왔기에 아마도 그 후배가 그런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아는 기자가 남아있다해도 그리 소개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 아는 기자들도 대부분은 이젠 퇴사를 한 상태이기에 미안함을 전하면서 저녁 강아지들과 1시간정도 걸으며 지난 시간과 지금을 돌아보니 언제부터인가 내가 속했던 여러 네트워크들에서 자연스레 벗어나고 있는 나를 느끼게 된다
그 벗어남이 편하고, 자유롭다 생각했는데
현대문명 속 네트워크에서 벗어남이란 또 하나의 장애가 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건 무엇 때문일까? 지난 주 고교, 대학동문들과의 자리에서 몇년만 더 도시 속에서 일하다 저 남녁의 한 도시로 내려가 덜 분주하게 아내와 살기로 했다 말하니 다들 반대를 한다. 나이가 들 수록 속함에서 벗어남을 택하는건 아니라며
네트워크에서의 벗어남이 나 스스로를 소외속으로 몰아 넣는걸까?
전기줄이 뻗어나지 않는 스카이라인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은 시대
지평선을 보기 보다 시원한 스카이라인이라도 보고 싶다
지난 주말의 몸살이 저녁 강아지들과의 산책길중 접한 강하지 않은 빗줄기이기에 무시하고 그냥 맞으며 걸은 것 때문일까? 밤새 근육통에 두통속, 잠시 잠이 들면 찾아드는 편하지 못한 악몽속 4-5번의 깨어남뒤에 맞이한 아침,
새벽에 눈을 뜨고는 다시 찾아들까 싫은 꿈이 싫어 침대 옆의 책을 들었다
창밖 조금씩 밝아오는 하늘은 맑아 보이건만, 지붕위로는 두드리는 빗방울소리가 들려온다
빗소리에 끌려 오른 옥상위에서 방울 방울 떨어지는 빗물이
상쾌함을 준다
소외되더라도, 사회속 메마른 네트워크에서는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그건 소외와는 다른 의미일 것임이 분명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