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부쩍 심해진 두통
이유가 뭘까?
어제도 두통으로 간신히 든 잠이 수시로 깨다보니 아침이 무겁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아직은 밤 공기는 차다.
잠에서 깨어 창가에 서서 창문을 여니 바람이 상쾌함보다는
사람을 다소 가라앉게 그리 유쾌롭지 못한 기분의 차가움으로 다가온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에 특별한 이유를 대지 못하는 경우들이 더 많지 않을까?
이유를 말함도 어찌보면 상대에 대한 하나의 변명조로
내 이래서 이걸 좋아한다 말할 뿐이지,
실제로 내 안의 맘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대학시절 카프카나 카뮈의 부조리에 매력을 느꼈었다
또, 당시 한 창 연극을 좋아했었고
그 때만해도 연극을 볼 공간도 지금처럼 대학로에 몰려있기 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소극단들도 많았었다
그 소극단들에선 많은 경우 부조리극들을 올리고는 했었는데,
명동의 창고소극장에서 극을 보고 그 위의 섬이라는 작은 선술집에서
작가와 극에 대해 나름 열띤 토론들을 하곤 했던 기억이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건만 더 생생해진다
아마도, 그 기억의 편린들은 부분 부분 실제와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한 밤중 잠에서 깨
갑자기 읍조림처럼 인생은 나그네길을 불렀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냥 불현듯이 떠올랐다
구름처럼 흘러가는, 어디서오고 오디로 가는지도 모를 인생
카뮈의 책중 '시지프의 신화'속에서 사람들의 자신의 삶속 시간에 대한 지적중 하나
'매일', '좀 더 있으면', '네가 나이를 먹으면'등으로 내일을 말하지만
이 처럼 어처구니 없는 전제도 없다고 카뮈는 말한다
결국 내일의 끝은 죽음일 뿐이기에
사람들은 마치 내일의 끝이 죽음인 것에 대해 모르는 듯이 살아간다
그건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 타인을 통한 간접 경험은 있어도
직접적 경험은 가지고 있지를 못하기에 그러하고,
원래 살아오던, 익숙함 속에서 가지게 되는
오늘의 연장 속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당장의 고됨을 포장하려하나
스스로도 많은 경우 알고 있다
내일도 결국 오늘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다고, 삶에 대해 너무 깊게 사고함도 그리 의미를 가지지는 않을 듯하다
칸트가 비웃듯이 말했듯, 인생은 고뇌하는 인간에게 아무것도 주는건 없다고
가볍게
가볍게
심각하고
무겁게 뭔가를 대한다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지는 못할테니
그 가볍게가 문제는 말처럼 그렇듯 쉽지만은 못한게
못난 인생의 한계인가보다
인생은 나그네와 같다해도
정해진 도로를 걸으면 언젠가는 시간에 맞추어 나를 태워줄 버스가
지나가 줄터인데
그 버스가 어디를 가는 버스인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