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충청남도 공주군 공주읍 금학동
몇번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태어난 집의 위로는 작은 대나무숲의 나즈막한 산이 있었고
그 앞으로는 물이 많아 목욕도 하고
여름에는 수영도 할정도의 시냇물이 흘렀고
아주머님들은 그 곳에 모여 빨래를 하시던 빨래터
나중엔 작은 다리가 놓여 시냇물의 이쪽과 저쪽을 편하게 넘었지만
처음에는 징검다리로 건너고는 했던 곳
징검다리를 건너 큰 길가로 내려가면
이발소와 작은 슈퍼가 하나 있었다
할머님은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으면 아이스케키하나를 사주시곤 했었는데
신작로의 양쪽으로는 높다란 프라타너스길들이
어린 내눈에는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저 쪽으로는 우금재고개를 넘어 부여로 들어서고
이 쪽으로는 공주군내로 들어가는 길
시냇물을 건너지 않고 큰 길쪽으로 내려가다보면
중간 좁은 터하나를 중심으로 나뉜 삼거리에 작은 교회가 있었고
교회를 지나 내려가면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이룬 뽕나무밭
그 밭의 뒤에는 공주여고가
그리고 더 내려가면 공주고등학교가
더 내려가면 서울로 가는 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태어나 잠시 머문 공주
대부분을 서울에서 자랐지만
방학이면 내려가 여름이면 커다란 멍석위에 모기장을 치고
마당에서 잠이 들고
겨울이면 안방과 붙어 있는 부엌에서 불을 지핀 구들장에
몸을 담아 잠을 이루던 시절
이른 아침이면 할머님이 자는 나를 깨워 막 나아 따끈한 달걀 하나
여어 먹고 또 자라 하시곤 했던 곳
서울로 올라올 때면
신작로에서 버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 쓰시면서 구부러진 허리를 한 채
버스의 뒷모습을 지켜보셨고
난 버스의 맨 뒷자리에 무릎으로 거꾸로 앉아 힘껏 손을 흔들었던 고향
그 고향이 이젠 사라졌다
땅은 남았고
주소도 남았지만
시냇가엔 물이 없고
신작로엔 아스팔트 8차선위로 정신없니 차가 달려만 간다
할머님 산소를 찾으면 그 아래사시는 분들은
간혹 늬가 누구 손주구나 하시지만
대부분은 낯선 분들
고향을 잃으니
맘이 아프고, 쓸쓸해도 갈 곳도 사라져 버리나보다
마을대신 작은 도시만이 들어서 있는 곳은 내 고향이 아니다
그 곳은 단지 내 있는 조금 더 큰 도시를 흉내낸 작은 도시일 뿐
조금의 시간만 지나도 새로 생기는 길 위에선
네비게이션의 안내가 없다면 내가 어디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길을 잃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