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다시 뜬다. 전 날의 이야기가 어떠하든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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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Bact to the future' 시리즈로 유명한 헐리웃배우

마이클 J.폭스

항상 젊은 소년으로 기억되던 그도 이제 한갑의 나이가 된 것을 보면

이 시대의 배우라 하긴 어려울 듯 싶다


그의 영화 중 내 인생영화 한 편이 있다.

1900년대 초반에 나왔었던, 'Doc. Hollywood'

나온 뒤로 바로 접한 영화는 아니지만,

대학교단을 벗어나 유학을 준비하다 좌절을 접했을 때

다시 삼성의료원으로 돌아가야하나?

나를 필요로 하는 대학 어디를 찾아봐야하나?

개원을 할 까? 를 고민하다 우연찮게 접하게 된 영화


잘 나가는 성형외과 닥터로 비버리힐스에 취직 되어 멋진 생활을 꿈꾸던

젊은 닥터 벤, 워싱턴에서 차로 동부에서 서부로 가던 중

우연찮은 사고로 잠시 머물게 된 오래된 작은 시골마을


그 곳의 닥터는 단 한 명, 이미 노쇄한 한 분 뿐이다

의료적,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처방전에 그럼에도 아픈이들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달라져가던 닥터 벤


늙은 닥터는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음을 알기에

벤에게 자신의 방에 걸려진 사진들을 보여주며 말한다

아이 하나하나 이미 다 어른이 되 버린 그 들이지만

자신이 받아 생명을 얻고 아프면서 싸우면서 다치면서 자라서

어른이 된 마을 사람들의 모습들이 다 그 안에 있었기에

어떤 누군가가 어디가 아프다 하면 말하지 않아도 미리 많은 것들을

판단할 수 있게 된 노 닥터의 모습


젊은 닥터보다 의학적 이론은 적지만

적어도 마을 사람들의 아픈 이유는 안다는

자신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 들이 주는 믿음은 어디서도 얼마의 연봉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다는


결국 닥터 벤은 비버리힐스의 화려함이 아닌

노 닥터의 뒤를 이어 마을의 한 사람이 된다


'신앙은 인간의 위기, 좌절, 무력, 절망 속에서 시작된다'는

변증법적 신학자의 대표적 1人이었던 미국 신학자 니버


니버가 보기에 인간에게 합리적인 부분은 있을지 모르지만,

'합리적인 사회'는 있을 수 없다

이성이 욕구를 제어하며 기질과 본성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욕구를 강화하고 기질을 합리화하여 본성을 극단적으로 이끌어 내게 된다고

말하는 니버


더구나,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집단속에 존재한다

집단과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성은 왜곡되어지고

모든 집단은 해당 집단의 이상과 이득을 추구하기 떄문에

합리적 이성이 극단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니버는 경고를 준다


오늘이 제헌절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처음으로 공포된 날이라 한다

그 뒤 크고 작게, 그 누가 주도했고, 목적이 어떠한가는 달랐었겠지만

9번의 개정이 이루어진 헌법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지만,

그 주 내용의 기본이 된 것은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이었다


종이위의 문구들 몇 줄이 가진 것보다는

그 문장들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보아왔기에 사실 잊고 지냈다기보다, 외면하여 왔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머리와 마음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은

뉴스를 거의 보지 않은지 오래됐다


어떤 계기가 생겨 헌법에 대한 책을 몇일째 다시 읽고 있다


왜? 어떻게? 어느 누가 헌법이란 것을 만들었는지도 궁금해졌고

어떻게 이용해 왔는가도 궁금하기에 접해본 헌법과 관련된 역사들

그 내용엔 솔직히 지금도 그리 큰 관심은 없다

실행자의 해석하고자 하는 의지의 여백이 많은 만큼

항변과 다툼에 대한 정의는 더 어려워진다


아내가 이거 한 번 봐봐 재미나네 해서 본 '킹 덤'이란 시리즈물

거의 마지막 대사에 왕자가 외친다

'당신이 틀렸소, 왕이 있어야 백성이 있는게 아니라, 백성이 있어야 왕이 있는 것이요'


모두가 바라는 것이겠지만,

사실, 한 단어로 말해지는 국민이나 백성

그 안에는 또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담겨 있기에 니버가 말하 듯

개인은 집단에 속하고 집단은 집단과 집단간의 이해득실과 목적에 따라 나뉘어지겠지


다름을 틀림이 아님으로 받아 들였던 시절이

우리 스스로가 이성적 동물이라 자청하는 인간의 역사속에 있었을까?


갑이 을이 되고, 다시 을이 갑이 될 뿐의 반복된 이야기들만이 흘러 흘러 온 것은 아닐까?


에이, 술을 그리도 좋아하던 옛 친구가 이젠 술 한잔마시지 못하고 누워 있는 모습에

오늘의 맘이 좀 어두워 졌다보다


언제부터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됐을까?

아쉽다.


하긴, 붉은 날은 의지로 만들면 되는 거겠지만

누가 쉬라해서 쉬고, 말라해서 일해야하는 삶의 시계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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