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핵심교리는 '프리뭄 논 노체레' 뜻도 모르는 라틴어를 외우는데 힘겨웠었다.
그 뜻은 '무엇보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뜻이라 한다
대학병원 첫 실습을 돌던 본과 3학년시절
기억이 이젠 가물거려 어느 과 교수님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를 않는다
내 지도교수셨는데, 죄송스럽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만큼 나도 낡아 갔다고 변명을 하고 싶다
실습에 들어가기 전에 주셨던 말씀
적어둔 작은 노트가 아직 내 책장 한 컨에 놓여져 있다
첫 실습에서의 채혈
척추천자
그 전날 울며 두려워하던 한 여대생의
골수채취 과정을 지켜보던 내 마음을 적어둔 수첩이 다행히도 아직 내 곁에 있어준다
후배몇이 찾아오겠다 오전중 연락이 왔다
이젠 내몸하나도 어쩌지 못하고, 판단력도 시대에 맞지 않기에 도움보다
오히려 너희들에게 혼선을 줄 듯싶으니 오지 말랬건만
기어이 그래도 잠시만이라며 퇴근시간에 맞추어 병원으로 오겠다 한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맞다, 그 문장 하나로 나만이 아닌 많은 동료, 선후배들이 병실을 지켜왔던 듯
당직이 아니어도 내 환자곁을 떠날 수 없었던 몇 마디들
생각해보니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후배도 사람임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의료현장의 무너짐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찌 선배보다 적으랴
10시, 10대에 들어선 의료라는 길
이제 60대가 되면 퇴근할 수 있을까?
분명 들어올 때는 몸이 아닌 맘이 들어왔었다
나갈 때는 맘이 아닌 몸이 나가는 기분이 강해진다
나갈 수 있을까?
하긴, 친구들은 배부른 소리하지 말라한다
남들은 퇴직당할까봐 긍긍하건만 넌 그런 걱정은 없지 않냐고
그렇지, 세상속 나 혼자 사는게 아닌
밥달라 참 오랜 시간 우리안을 안떠나고 연신 입을 벌려대는 새끼들도 있고
나를 믿고 전 인생을 기대살아온 아내도 있으니
여름이 다 가나보다
아침 출근길 길가의 배롱나무꽃들이 다 피지도 못한채
금년에는 지고 있다
이번 여름은 없듯이 지나가 버리나보다
없었었던 지나가 버린게 계절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