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아마도 내 연배의 누군가라면 한 번정도는 읽거나, 접해본 책이리라
평생 자살기도만을 다섯차례, 네번의 실패와
마지막 다섯번째 연인과 수원지에 투신해 자살에 성공한 작가
인간실격은 자살이전 탈고를 마칠 수 있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마지막 소설이다
자살을 작품 속에 그리며 이를 자신화하려던 작가들은 많았지만,
스스로 그리도 자살에 집착한 작가는 몇이나 될까?
시대가 만든 우울함이었을까?
아니면, 시대에 맞지 못한 부적응의 결과였을까?
원치 않는 부유함속의 고립감 속의 성장기
모르나, 부모의 부축적에 대한 죄의식이 그에게
공산당, 사회주의에 대한 어설픈 이끌림을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실격속에서도 스스로가 쓰고 있듯이
그는 사회주의 운동클럽속에 들어가 뛰고 일을 맞아 하지만
그 스스로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채
그리 중요하지도 않을 듯한 얘기들을 목소리 죽여 논함에 비웃음을 던진다
다만, 그도 어딘가에 속할 수 있고
자신에게 그 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이 맞겨지는 것에 만족을 가진다
책은 그 시작부터 혼동속에서 시작한다
웃는 얼굴의 가족사진 속 한 소년
'귀여운 도련님이군요'
하지만, 조금만 더 사진속 소년의 웃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몸시 기분 나쁘다는 듯한 섬뜻한 아이'임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란 주먹을 꽉 쥔 채 웃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원숭이다.
웃고 있는 원숭이다.'
'인간의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걸린다.
피의 무게랄까 생명의 깊은 맛이랄까
그런 충실감이 전혀 없는, 새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깃털처럼 가벼운, 그냥 하얀 종이 한 장처럼 그렇게 웃고 있다'
인간 실격속의 오바 요조에 대한 스스로의 평은 책의 처음부터 시작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들과 섞일 수 있으려
스스로 웃기보다 억지로 광대처럼 웃음을 제공하려 했고
배가 고파본적이 없는, 공복을 느끼지 않았음에도
잘 먹는 모습을 보이며 그렇게 사회 속의 한 사람으로 적응하려 한 요조
그는 행동과 생각이 다르다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한번도 자기 자신에게 회의를 느낀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편하겠지'
하지만, 그는 이기주의자가 되기를 바랬을 뿐 책속의
요조는 지독한 외로움속에서 벗어나려 스스로가 밑으로 밑으로 침잠해간다
'길을 걸으면서 무얼 생각할까?
돈?
설마 그것만은 아니겠지,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돈 때문에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아닐 거야, 그러나 어쩌면, 아니, 그것도 알 수 없지'
요조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려 만화를 그리고
이도 떨어지면 외설만화로 한 푼이라도 벌어 술을 마신다
혼동속 요조가 택한 것이 바로 익살, 광대의 몸짓이었다고 서두에 논했듯
'생각하면 할 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다.'
'익살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인간들의 속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 했건만,
요조가 가게 되는 길들은 원치 않았다 해도
자꾸만 다른 사람들의 길과 멀어져만 가게 된다
사실, 고백컨데 인간에 대한 두려움은 나에게도 심하다
시간이 가면서, 더 심해진다
잘해주면 쉬운 대상이 되고, 편하게 대하면 이용대상이 되고, 믿으면 배신의 대상이 되는
겸손해지면 밟히고, 자기 주장을 하려하면 무언가로 상처를 주려 달려든다
세상속의 많은 관계들이 그리 맺어진다
요조도 상류의 삶, 부유한 삶에서 떨어져 내려만 간다
시대도 또, 일본이라는 정서도 그 한 몫을 했겠지만 책속의 정조는 매우 가볍다
'창녀라는 것은 인간도 여성도 아닌
백치 혹은 미치광이처럼 느껴져서 그 품 안에서는
완전히 안심하고 푹 쉴 수가 있었습니다. '
쉽게 누군가의 정부가 되고,
결혼한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자신의 눈앞에서 겁탈인지
아내가 창녀였던 것인지 혼동이 되도 다른 저항을 보이지 않는다
기억이 잘 안난다 다독의 함정이 이런거겠지
한 삶에 지친 남자가 어느 하루의 밤을 걷다 보니 만난 유흥가
나이든 이젠 찾는 이 없는 창녀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기만 하며
안아달라 하던 문구가 떠오른다
춥다고, 체온으로 안아달라던 그 남자의 애원만이 시간이 오래 지났건만
내 맘속에서 울림을 남겨두고 있다
요조의 삶도 그러했던 듯 하다.
요조는 행복할 수 있는 기회들도 있었다, 하지만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 하는 법' 이라며 발로, 맘으로, 행동으로 도망을 한다
요조는 도망을 할 뿐, 누군가를 탓하고, 욕함이 없다
모든 것들은 부끄러운 자신의 탓
유일하게 나오는 친구,
아니 친구라기 보다는 요조에 남아 있는 돈과 함께 하던 호리키와의
말장난
'죄, 죄의 반의어는 ... 법이지'
'설마... 죄의 반의어는 선이야'
'선은 악의 반의어지, 죄의 반의어는 아니야'
'악과 죄는 다른가?
'다르다고 생각해, 선악의 개념은 인간이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아,
인간이 멋대로 만들어 낸 도덕이라는 것을 말로 표현한 거지'
'감옥에 가는 일만이 죄는 아니야
죄의 반의어를 알면 죄의 실체도 파악될 것 같은데,
죄의 반의어는 뭘까?'
'신뢰는 죄일까?'
'무저항은 죄일까?'
아마도 이 소설이 이 시대에 나왔더라면,
여성 작가나 평론가들에게 뭇매를 맞지 않았을까?
한 가지, 그는 부끄러움속의 삶으로 자신을 평하지만
많은 외로움속에서 살아가건 아니었을까?
그의 자살은 혼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항상 동반자가 있던 자살과정을 보면,
그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자살의 시작은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홀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