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잘 알려진
예일대 철학교수 셀리 케이건은 또 다른 책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그 부제가 '사람과 동물의 윤리적 공존을 위하여',
또 하나의 부제는 '내 인생은 돼지의 삶보다 가치 있는가'
그의 책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니다
어떤 누군가의 죽음
대학시절 절친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고교, 대학동창으로 아마도 그 친구의 대리출석이 아니었으면
한 창 사진에 빠져 살던 시절이라 결석한 과목들로 인해
졸업도 염려됐을텐데 ^^
예과시절 독일어 과목
수업시간엔 거의 들어가지 않다, 시험때 들어가니
감독하던 교수님의 하시던 말씀 '그래도, 시험시간엔 들어왔네!'
이미 다 아시고 계시던, 교수님께 사과를 드려야할텐데 ^^
빌 게이츠가 그랬던가,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사실 살아가는 삶, 그 시간속에서도 그러하겠지만,
'죽음' 그 모습도 공평하지는 않은 듯
셀리 케이건의 책속 지나다 식물의 잎을 뜯어 죽음을 부르는 동작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고양이에 휘발유를 부어 태워죽인다면 고양이의 도덕적 존재에 대한 부정일까?
아니면, 이를 지나다 보게 될, 또는 보도로 듣게 될 다른 이의 정서에 악영향을 주기에
사회가 화를 내고 죄를 묻는 것일까?를 묻는다.
인간은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고,
이는 때론 동물에게만이 아닌 타인에게도
한 게그멘이 말하듯 '나만 아니면 돼~~~ '
모든 죽음에는 그 죽음의 대상이 가지는 자아가 기준이 되는것과
이를 지켜보는 이의 도덕적 기준인 것일까를 묻지만
사실, 철학자의 질문에 답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속의 다양한 인물상은
언제 어디서 그 대상이 식물이건 동물이건, 아니면 같은 사람이건
다른 목적을 위한 피해자로서의 죽음이건, 죽음자체의 즐김이든
그러한 폭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사라진 소녀들'
2010년, 뉴욕의 롱아일랜드, 바닷가 해변을 낀 부유층의 독립된 한 마을
지나던 경찰차안의 경찰견이 배변을 위해 잠시 머문 것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시작이 된다.
아름다운 해변가와 숲속에서 연이어 발견되어지는
이미 백골이 되어져 버린 사체들
지난 저녁 딸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실종된 한 엄마가 영화를 이끌어간다
뉴스나 언론, 경찰들은 살해된 여자들, 실종된 여자들앞에 매춘부라는 수식어를 쓴다
마을 주민의 경찰 신고에는 15분만에 출동하던 경찰이
실종된 딸아이의 통화 내역에선 1시간도 더 지난 뒤에야 출동하는 모습은
그 신고자의 신분이 사회에 가진 힘이고 차별임을 말하려는 것일까?
끊임없이 이 곳, 저 곳에서 나오는 사체들은
그 실종 시간대가 근 10년전부터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국, 실종 신고만 받았을 뿐 경찰은 부유층, 사회적 인사들의 마을을
수색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견의 배변을 위해 해변가에 개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영원히 묻혀버렸을 죽음들
여전히 언론과 경찰은 사망한 매춘부의 숫자로만 나타낼 뿐
부유한 마을내의 수색이나 cctv조차도 조사를 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모습
딸의 실종을 찾아 뒤지는 엄마 스스로가 뒤지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서 의심되어지는 집과 사람을 말하지만,
거짓말 탐지기에서 아니라 나왔다며 오히려 무고죄를 논하는 경찰
그 집뒤의 늪지대를 의심하여 수색을 주장하며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
1년뒤, 경찰 국장은 퇴임을 하면서 무언가 걸렸던지
자신의 마지막 업무로 늪지대를 수색 실종된 딸의 사채를 발견하지만
그 사인은 외상후 살아서 오래 방치되어 죽음에 이른 것으로 나오며
영화는 스크린에 자막이 올라간다
아마도, 그 수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도
수없이 많은 죽음들이 그 원인과 결과, 때로는 사체도 찾지 못한 채
미해결로 남아 있지 않을까?
죽음에도 차별은 존재한다
거부하려해도 현실속에서 엄연한 사실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살아서의 삶속엔 죽음이나 아픔, 힘듬 모든 것에 차별이 존재함을
모든 국민은 평등함을 말하지만, 종이위에 쓰여진 것과 현실은 같을 수 없나보다
죽은 망자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말을 할 수 있다면?
죽음 저 뒷편엔 적어도 차별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