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기억의 순서들이 바뀌기도 한다
앞의 것이 뒤로 가고 뒤의 것이 앞으로도 가고
나이가 들면서 기억의 내용도 바뀌어가고, 등장인물도 섞여버린다
그게 시간이 가진 마법일까?
아는 듯하면서도 정작 다시 곱씹으면 모르는 것들
안중근, 어느 분이 댓글에 인용의 글로 올려주셨던 책의 몇 문장
그 덕분에 언젠가 읽었던 책 한 권을 찾아 다시 읽어보았다
'안 중근과 걷다'
그래도, 명문대라는 SKY 한 곳의 교수입에서
안 중근은 테러리스트, 위안부는 매춘부라 책을 쓰고
강단위에서 학생들에게 수업을 했다한다
반론을 피려해도, 얼마나 안 중근을 우리는 알고 있을까?
지도상으로만 보아도 춥다
사실 안 중근은 나라로부터 그 지위를 부여받지는 않은 듯 하다
연해주에서 의병을 모르고, 그 의병내 총독은 김두성, 대장 이범윤, 좌군영장 엄인섭
그리고, 우군영장에 안중근이름이 올라가 있다
일본법정에서 대한제국 의병 참모총장이기에
자신의 행위는 일반 법정이 아닌 군사법정에서 이루어져야한다 주장한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라도 살기를 원하지 죽기를 원하겠습니가?'
안 중근에게도 죽음은 두려움의 존재였음은,
그를 더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하여주는 문장이 아닐까?
'세상에 의리없는 귀신은 되지 말자'
안 중근 스스로가 자신의 의병부대에게 했던 말이라 한다
아마도, 의병 그 누구에겐가보다 스스로에게 한 말은 아니었을지
국내에서의 의병활동은 초기에는 작은 마을 단위로의
습격에 성공을 거두나,
종국에는 중국으로 만주로 밀려나게 되고마는 의병운동
또 하나의 장벽
노비와 기생이었던 엄마를 둔 최재형
일찍이 연해주로 건너가 러시아인 양부를 두며 재산을 축적한
그는 독립군의 경제적 교두보가 되지만,
조선이라는 사회가 나라를 잃고도 버리지 못한 신분계급에 대한 의식은
나라와 그들이 그리도 모시던 국왕의 죽음뒤에도
자신의 안위와 너희와는 다르다는 의식울 버리지 못한 계급의식의 벽에 막혀
안 중근을 수차례 실망과 좌절속에 놓이게 만든다
'오죽하면 '카우리'라는 말이 나왔을까?
조선을 떠나온 동포들은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국명을 아예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구려인이나 고려인(카우리)으로 불리길 원했다'
안 중근은 책속 자신의 속마음을 이렇게 토로한다
또 다른 문장
'슬프다. 우리나라가 오늘날의 참혹한 지경에 이른 것은 다름 아니라,
뜻이 서로 맞지 않는 불합병이 깊이 든 탓이이로다.
불합병의 근원은 교오병(교만하고 건방진 병)이니 교만은 악의 뿌리다
그러나 교오병의 약은 겸손이나, 개개인이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존경한다면 어찌 화합을 이루지 못하리오'
나라가 버린 백성
백성이 또한 버린 나라
그 안 중근은 나라를 사랑하며, 백성을 지키고자 드 넓은 중국의 이 끝에서 저 끝을
마다함없이 다녔던 듯
1909년 2월 안중근은 크라스키노에서 김기룡 등 동지 12명과 함께
단지동맹을 맺는다.
지금도 그 곳, 고려학술문화재단이 세운 단지동맹 기념비가 놓여있다 한다
안 중근
그의 어머니 조성녀도 또 하나의 이 땅 호랑이였었나보다,
사형선고가 내려진 아들에게 보낸 편지속 내용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 했다 하니
테러리스트?
그가 테러리스트가 아님은 그의 일기에서 여실히 보여준다
1. 이토 히로부미를 반드시 쏜다
2. 달아나지 않는다
3. 코레야 우라(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4. 살아 체포되어 러시아 재판장에 서서 일본의 불합리함과 잔인함을 온세계에 알린다
하지만, 아쉽게도 안 중근은 당시 러시아령이었던 하얼삔이었지만
러시아와 일본의 뒷거래로 일본의 재판정에, 그 것도 암살자라는 이름으로
재판에 임해야했던 아픔이 남는다
그 아픔속에서도 그는 굴함없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여야만 했던 15가지 이유를 법정내에서 당당하게 외친다
책을 옮기는 것은 솔직히 내 글쓰는 취향은 되지 못한다
누군가에겐 푸념으로 들릴 수도 있을지 모르나,
글이나 영화, 연극, 어떠한 것도 보는 이에 따라,
같은 나라해도 그 시절의 내 감성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에
내 주변, 내 삶의 경로위의 모든 것들은 글이나 극과 함께 하는게 아닐까?
'안 중근과 걷가'를 옮긴다면, 시간과 장소의 나열에 그쳐버릴 수도 있을 듯
안 중근은 역사속 위인으로만 생각했다면, 책은 지루한 그져
르포형의 기록물일 뿐일 수도
인연
사연
어떠한 접점이 있다면 같은 글도 달리 다가와지는게 아닐까?
기형도의 시는 아름답다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1980년대 중반정도 되지 않았을까?
명동 창고극장에서 '빨간피터의 고백'을 친구들과 보고
'섬'이라는 작은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아주 작은 주점, 일행이 아니어도 합석을 하게 되던 곳
그 곳에서 처음으로 기형도라는 한 남자를 만났었다
그 만남이 없었다면,
아마도 기형도의 시는 내 취향이 될 수 없었을 듯
나와는 다른 마치 외국에서 온 듯한 말솜씨를 맵씨나게 하던
입은 옷도, 모습도 큰 나이차이는 나지 않으면서도
남달라 보였던 것으로 기 형도는 오래 기억에 자리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뒤로도 '섬'에서 2-3번 더 본 듯하다
안 중근
뮤지컬, 영웅을 4번, 5번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의 책도
접하지 못했을지 모르겠다
그의 책 마지막이 슬프다
'나는 정말 큰 죄인이다.
내 죄는 다른 죄가 아니라,
어질고 약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가 그리도 목놓아 슬퍼울었었던,
우리의 불합병, 교화병은 나은 걸까?
아니면, 죽으며 어질고 약한 한국인으로 태어난 죄
그 죄를 읇으며 울던 병은 불치병으로 지금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