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시간은 비존재를 향해간다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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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이듬이 아닌 익어간다고도 했지만,

사실 나이듬은 익어가기보다 낡아가는 과정이라고 몸이 말해준다

지난 주부터 웬지 모르게 딱 어디다 할 수는 없게 몸이 내게 자꾸만

경고등을 보내주며 편하지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이 딱 인생의 시간인 듯

인생의 시간은 ‘없어지는 것’을 향해서 간다했던, 시간은 존재하는 것이라기 보다 비존재로 향해간다고 했다 현재의 시간은 항상 과거로 향해가기에 현재라 믿는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순간 과거가 된다. 우리의 존재는 당장은 눈에 보이지만, 결국은 비존재인 죽음을 향해간다던 그의 말


애중이라 해야할 듯

그가 과외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난 대학을 꿈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 대학과 20대 전체를 그와의 다꿈속에서 지냈던 듯

입학후에는 거리에서, 그리고 골방에서 선배들이 필사해주는 지금보면 유치한 금서들을 읽고 외우고, 학년이 올라가서는 새벽이면 가라앉는 공기속의 매운 새벽공기를 느끼며 국가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그 시절의 20대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듯 싶다

다소 비현실적이었다 할 수도 있었을까?

다른 철학사고들도 있었겠지만, 기억에 그 때는 두 가지의 대표적 사조들로 서로들 시시비비 논쟁들을 했었던 듯, 하나는 니체나 야스퍼스, 특히 사르트르와 초기의 카뮈등을 논하면서 했던 실존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숨어서 읽던 마르크스주의가 우리의 어린 치기들에 불을 지폈던 시절이었던 듯

이즘이란 돌고 돈다함은 그 시절엔 이 둘 사이를 말하던 프롬의 철학을 따르면 회색분자, 사실 말도 안되는 염세주의로 치부를 했었는데 프롬이 주창하던 것은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중간적인 사상이었던 듯, 아니 조금은 마르크스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듯도 싶고, 그의 책 ‘소유냐 존재냐’를 통해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허상,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를 예찬하지는 않았던 프롬을 따랐었다. 그 때는 이를 회색분자라 욕했었던 것이 지금은 중도주의라 하는 듯


만성두통

오늘은 좀 더 심하다

오전 진료를 마치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좀 자야겠다

20-30대엔 죽으면 지겹게 자는 잠이라 했는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편해졌다

많은 소유가 삶을 풍족하고, 행복하게는 하여주지 않아도 편하게는 해 주겠지, 하지만 그 보다 정신적인 여유와 나에 대한 만족, 진정한 나라는 의미의 존재를 느끼는게 더 편한 삶일까? 프롬의 소유와 존재에 대한 생각이 주말사이 돌현듯이 나를 지배하더니, 진료를 위해 켜 놓은 컴퓨터에서의 그의 죽음을 속보로 알려온다

결국 시간은 비존재로 흘러감을, 모든 사람의 내일을 100%맞출 수 있는 단어 하나는 죽는다는 것임은 인간의 유한함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 원칙이다. 존재의 시간속에 무엇을 담든 결국은 비존재의 대상이 되는 인간들의 시간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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