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by 고시환
DSCF3197.jpg
DSCF3120.jpg

몇 달 됐나?

불현듯이 아내가 가스라이팅에 대해 묻는다

아마도, 당시 언론에서 몇번 가스라이팅에 대해 언급이 있었던 듯

옛 영화를, 연극을 좋아했었고, 또 영화화된 원작을 좋아했던 시절

연극 가스등은 1900년중반경 잉그리드버그만에 의해 영화화된

영화사에 남는 유명영화중 하나

해당 영화는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했고, 그 내용을 기초로

미국의 정신분석자였던 로빈 스턴이 만든 용어가 가스라이팅


아내와 제주를 주말사이 다녀오며 소설로 마쳤던 나를 찾아워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조디악의 감독인

길리언 플린의 영화화된 작품을 오고가는 비행기내에서 보았다


어려서부터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천재 소녀로

어린 나이 작가로 대성공을 거두고

하버드를 나온 재원에 뺴어난 매력을 가진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도는 여인

하지만, 정작 본인은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연작 동화와 책속의

등장인물에 갖힌 유년을 보내고

그 부모에 의해 인생의 길이 굳어져 버린채

성년이 된 스스로안의 외톨이가 된 상태


사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외부인이 아닌 내가 나를 가스라이팅할 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 뛰어난 머리, 뺴어난 미모, 작가로서의 명성, 품위있는 행동과 자태 그는 완벽해야했고 자신의 뜻에서 주변이 벗어나서는 안되며, 모두가 다 자기를 칭송하고 자신의 뜻을 따라야만 하지 버림을 받는 다는 것에는 죽음을 생각케하는 어려서부터이미 그리 되어진 삶의 정의


몇일간 떠나지 않는 젊어 접했던 이 책, 저 책에서의 프롬의 이야기

어느 내용이 어떠한 책에 있었던지는 다시 그의 책을 읽으며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사람들은 왜 권위적인 누군가를 따르고, 이데올로기에 종교에 광신자가 되어지는 것일까? 다른 곁의 누군가가 지켜볼 때 너 그러면 안됀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하나의 종교와 정치인에게 맹신적인 빠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들, 이는 꼭 종교나 정치인이 아니라해도 한 개인에게도 그러할 수 있고, 또 개인 스스로가 본인에 메여서도 그러할 수도 있는 듯


이를 신봉하는 대상이 무엇이든, 사실 그 대상을 위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신봉일 것이다. 신을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고, 정치 지도자를 신봉해야 출세를 하고 불이익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고, 그것이 진리라 믿으면 믿을수록 스스로가 정신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진리보다는 정신적 안정을 추구한다

권위주의적인 종교나 이데올로기, 특정인물들은 인간을 정신적으로 성숙시키기 보다 그 권위에 대해 무비판적이 되게 만들고, 자신의 진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의 독선적이고 배타적 인간을 만들어 놓게 된다

더 재밌는 것은 이를 만든이보다 이를 추종한 이들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출발점보다 더 강해진다는 점이다 당장 선서전에서 서로들 말한다. 이 사람이 되면 나라가 망하니 절대 저 사람이 되면 안된다는 신념.


소설 ‘나를 찾아줘’속 에이미의 존재가 그러하다

자기를 거부하면 안되는 존재로서 스스로가 자리매김한 에이미 본인

뛰어난 머리로 그를 떠나려는자, 거부하려는 자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수렁에 빠지고, 사회적 매장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지만 그 비난과 비판의 대상은 그 들이고 에이미는 항상 유명세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희생양의 모습

자신을 떠나려는 남편을 살인자로 만들어 사형제도의 이슬이 되게 실종극을 꾸민 에이미, 계획의 차질로 오히려 곤경에 처한 에이미를 도우려던 고교동창을 살해후 자신을 강간하려 죽일 수 밖에 없었다며 남편에게 돌아온 에이미, 이미 에이미의 정체를 아는 남편은 어찌할 줄 모르지만, 에이미는 웃으며 말한다 평소처럼 웃으며 평화롭게 살면 된다고

그녀에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져 자신의 뜻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된다


타인을 조절하는 가스라이팅

나를 조절하는 가스라이팅

모두 동일한 것은 당하면서도 스스로는 인식하기가 어렵다는 점아닐까?


오늘은 글이 두개나 되 버렸다

어둠속을 비추는 등은 그 가치가 있지만

맑은 하늘위의 등의 역할은 어떠한것일지


오늘의 죽음

그 자도 아마 스스로의 가스라이팅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의

종착점에 도달해 비존재의 시간속에 들어선건 아닌지

그의 눈엔 그 가 한 행동들을 비난 하는 자들의 부족함이 아마 끝내 마땅스럽지 못해 보이지 않았었을까 싶다.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중 하나가

보편적 타당성이란 단어때문이었다

그 보편적 타당성은 객관적인 듯하지만, 사실 참 모호하고도 주관적인 단어다

내가 만든 보편적 타당성이 틀리다 인지하는이 몇이나 될까?


프롬이 떠오르고

그리워지고, 오늘 다시 그의 책 몇권을 주문하는 이유는

그는 주관성보다 객관적으로 본인 스스로도 평가를 하고 있었지 않았었나싶다

매거진의 이전글결국 시간은 비존재를 향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