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생각들은 어떠한 것일까?
삶속에 있다는 3가지의 선택
태어남과 살아가는 과정,, 그리고 죽음
그 중 태어남과 죽음은 선택할 수 없이 주어진다했지만
죽음도 선택이 가능한 것일 듯 싶다
자살
안락사
과정과 결과는 같다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게 아닐까?
인도영화중엔 되새김질하게 되는 영화들이 종종있다
그 중 하나가 ‘청원’
천재 마술사, 어느날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정신은 살아있어도
내 육신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살아있는 미이라로서의 생활
그래도, 그는 자신과 같은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주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모습뒤, 그 속은 사람답게 죽고 싶어함이 항상 자리잡고 있어
안락사가 불법인 인도에 헌법소원, 청원을 넣는다
사람답게 죽게 해 달라는
자살이 아닌, 스스로 죽음을 택할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상을 지키게 해 달라는
청원은 기각되진다.
사고였던 줄 알았던 당시의 일이
마술사로서 그의 재능을 시기했던 한 동료의 고의에 의한 것이었다는
고백을 받지만, 그는 웃으며 용서를 해 준다
누구의 탓이건 자신의 운명이었음을 받아 들이며
다만,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마지막을 희망하는 그의 모습
유사한 내용의 책들도 몇권이 있는 듯
그 중 대표적인게 아마도 영화화도 됐었던 모예스의 미 비포 유
재능있고, 부유하며 자유분방했던 젊은이가 어느날 오토바이사고로
전신마비를 보이고
그도 존엄한 죽음을 선택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행을 택한다
그를 돌보다 사랑에 빠진 여인
또, 가족들도 결국은 그의 뜻을 저버리지 못하고
동행을 하게 되지만
죽음의 방관자라는 비난을 벗어나지는 못하게 된다
안락사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면
숨을 쉬고, 정신은 멀쩡해도 내가 내가 될 수 없다면
그 때의 내 선택은 어떠한 것일까?
대학동료
외과의로서 참 순수했던 친구
5-6개월전 진료를 마치고 퇴근하다 뇌출혈로 운전중 이차 교통사고로
그래도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한 팔과 다리의 부자연스러움과
어눌해진 말투로 더 이상은 외과의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었던
좌절감떄문이었을까?
자살로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는 소식에
어제 몇몇의 동기들과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아니, 잠시 자리하다 나와 서로들 말없이 술 잔만을 기울이다
헤어졌다
‘……..
나는 걱정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그리고 나의 오랜 육신을 끌고 바깥으로
아침 속으로 나갔다
그리고 노래 불렀다.’
시인 메리 올리버가 노래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은 역설적으로 ‘나는 걱정했다’
걱정으로 아무런 변화도 줄 수 없는 삶과 죽음에 대한 걱정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태어남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지만, 살아가는 과정들에서의 선택과
그 결과는 내 책임이 듯
죽음에 대한 선택권도 이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라면
존엄사, 안락사가 논의되어질 시대가 된건 아닐까?
20-30대는 꿈을 가지고
계획을 가지고 고됨을 잊고 살아가지만
갈수록 노년기에 들어서며 생계형 노동이 늘고 있고
내가 살던 곳, 내가 선택한 곳이 아닌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비율이 사회적, 언론적으로 그리도 좋아하는 OECD 기준 최고 수준에 달한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덜하다해도 어디서든 찾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요양병원, 요양원들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있을까? 마지막을 그렇게 맞이하는 것은 어쩌면 그 밖에 있는 다른 자들이 스스로를 위안하고자 함이지 당자를 위함인 것일까를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는 나이가 돼가나보다.
때가 되면 날아가는 철새들
그 철새들중에서도 앞서가는 부류가 있다면
낙오되어 뒤쳐진 철새들도 있고
미쳐 따라 떠나지 못하는 철새도 있는 것이 자연스런
삶의 모습들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