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담배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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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한 90년대중반정도였던가?

아내에게 담배 파이프르를 선물받았었던 적이 있다

젊은 시절, 그냥 멋으로 파이프담배를 입에 물고 논문을 쓰고 글을 쓰던 시절

그때만해도 인터넷이나 컴퓨터에 익숙치못해 악필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글들은 펜으로 쓰고는 했었다

하이텔, 천리안으로 어설픈 채팅을 하고,

프린트 하나하려면 도트프린트는 그 가격대도 만만하지 못해 집이 아닌 병원에서 출력을 걸어 놓고 퇴근하면 다음날 아침 찾아 보던 시절, 또 그 소리는 드르륵 드르륵 뭐 그리도 요란했던지 밤새 그 소리에 간호사실이나 옆방에서 항의도 만만치 않았던 시절인대...

그래도, 그 시절엔 따스함이 있었다

1주에 하루 퇴근이 벅차던 근무의 빡빡함속에 후줄근한 와이셔츠, 덥수룩한 턱수염에 환자분들은 와이셔츠와 면도기를 선물로 주기도 했고, 식사시간이면 먹을 것을 가운 주머니속에 넣어주고는 했었는대, 아픔과 병, 죽음을 함께하는 병동이지만 그래도 그 병동내에는 사람들이 있었었는대... 지금과는 많은 정서적 차이를 보이는 듯 싶다.

박카스 한 병과 몇번을 접고 또 접어 살며시 손에 쥐어주시던 500원권 지폐의 할머니 손

그 손들의 체온이 아마도 30년의 내 진료실을 지킬 수 있는 맘들의 쌓임이 아니었을까?

대학들어가 어울리며 시작하게 된 담배

그 담배를 2000년에 끊었다

내 앞의 어느 한 사람과의 대화중 전해지는 역한 담배내음에 나도 그러하겠구나 싶은 마음에 끊은 담배

내게 의사로서의 기능이란 외과의처럼 칼이나 기구가 아닌, 진료실 책상을 마주하며 나누는 대화인 것인대 그 대화가 담배내음속에 묻혀진다는 생각은 편하지 못해 하루아침에 끊었던 담배

그 담배

옥상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늘면서

아니, 예전 지난 나 스스로의 나를 조금은 더 내 편이 아니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늘어나다보니 파이프 담배생각이 났다. 뻐끔담배가 되겠지만, 그래도 입에 물고 가만 앉아 있으면 조금 더 덜 궁상을 버리고 어제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생각끝에 파이프 담배 하나를 구했다. 사실, 이건 누군가가 선물해주면 더 좋겠지만... 담배를 다시 피려하니 파이프 담배대하나 선물해 주련하고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그렇고, 담배를 피지 않는다고 이미들 알고 있으니 알아서 선물을 해 줄리도 없고 ^^

이상하지 만년필이나 지갑은 내 사기보다 누군가의 선물로 받아야 그 의미를 느끼게 되고, 다음 누군가의 배려가 있을 때 까지 끝없이 같은 것들을 쓰게 된다. 왜 그럴까? 물건마다 다 어떤 마음들을 담고 있어 그 맘을 내게 말해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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