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자유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인도게르만어에서 그 시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인도게르만? 사실 이것도 생소하지만...
그들의 언어로 'fre'는 사랑하다를 뜻했고, 이 단어에서 파생되어지면서 독일어로 'frei' 자유롭다, 'freund'친구와 단어들이 이어지며 생겨났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부족에 대한 친밀도, 자부감이 강하던 그 들에게 친구란 결국 그 속에 남아 경계를 풀고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대상의 하나였었던 듯하다. 모든 것들을 나누며, 소유의 의미가 아닌 함께 풍족하고, 배고픔은 함께 하는... 인류 문명의 발달이란 이런 것들을 많이 빼앗아 간 듯하다. 난 풍요로와도 상대의 배고픔엔 둔감해져감을 넘어서 오히려 남은 빵마져도 뺴앗으려 하는 문명으로만 가고 있는건 아닌지...
자유의 진정한 의미, 또 해당 언어가 파생되어지며 가진 뜻은 어딘가에 속하고, 묶인 속박의 의미가 아닌 오히려 해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해 스스로가 묶여 있음으로 해서 얻게 되어지는 전체의 안전함과 함께 함을 자유라 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 문화의 변화는 그 내용도 변하게 했나보다
효율성과 이용성
사람에 대해서도 이는 어김없이 작용을 한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나 그를 보기에 앞서 효율성과 이해득실을 따짐의 관계, 그 이용가치의 지속성과 사실 사람에 대한 좋은 감정,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이 아주 오래 지속되고 이어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것이 우리 인간이 가진 불완전함이 시간이 갈 수록 더욱 더 상대에게 드러날 테니... 그래도, 그 때는 서로의 관계, 의미에 대한 중요성을 잊지 않기에 불꽃은 식어가도 사람들은 적어도 내 손해를 보아도 상대를 보호하려는 마음과 상대의 아픔에 대해 상대의 상처에 대해 아파하는게 정상적 감성아닐까?
한 분과 몇주전 참 오랜 대화를 나눴다
그 분은 자네가 살아오면서 자네에게 따스함을 주었지만, 이어 상처를 준 사람들을 중간과정은 잊고 다시 안으면서 따스함을 그 자와 무관하게 자네가 느끼라고, 언제 그 자가 나 당신에게 상처를 줘도 되하고 허락받은 적없었을 테니, 그 사람의 반응이나 감정에 무관하게 그냥 자네 마음가는대로 그 따스했던 시절로 돌아가 안아주고 안겨보라고
또 하나, 세상사람들은 오늘이 당신이 살아가는 가장 젊은 날이라고들 말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오늘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생각한다면 내일이라는 또 한 번의 여백의 시간이 없다면 오늘 내 앞에 주어진 시간들의 의미가 달라지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젠 이기적으로 살도록, 다른 사람들이 어떠하든 돌아봄보다 1순위에 나를 두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을 때면 이유를 만들어서 하라고,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내게 선물해야하는 날이고 생각하고, 하늘이 맑으니, 비가 오니 선물을 해야지 하면서...
맞은 듯싶다
그분과의 대화를 돌아보니,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은 오히려 내게 먼저 다가온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만약 내가 의사가 아니었다면 다가왔을까? 아니, 상처는 어떤 분야에서 뭘 하며 내 삶을 살아왔다해도 가졌을 것이다. 상처없는 삶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 상처를 주는 사람은 한 번도 내게 허락을 받으며 상처를 준 적은 없다.
중간을 다 잘라내고
따스했던 시절, 내게 웃으며 다가와 내게 거리감을 좁히려 했던 그 시절만 기억하고
그의 생각은 내 알게 뭐람, 그냥 그 시절의 따스함만을 기억하며 안으면 되는거겠지
어제 내게 파이프담배를 선물했다
그냥 이유는 하나도 없다. 물론, 싸구려지만... ㅠㅠ 언젠가는 멋진 것을 가질 수도 있겠지...
손떼를 묻혀보고 싶다. 담배를 피운다기 보다 ... 손떼 입힌 파이프, 싸구려도 아마 손떼가 묻으면 좀 더 먹져 보이지 않을까?
마지막...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산다는거
왜? 그 단순한 걸 생각지 못했을까?
그냥 세상 모든 일들, 사람들, 사연들... 푸하하하하 놀고들 있네...
하며, 웃으며 가볍게 그냥 구경꾼으로 넘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