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퇴근후
어제부터 아파하던 아내의 통증이 심해져 응급실을
가게 되면서 환자와 의사로서의 모습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간 걸어온 길들은 곧게 뻗은 아스팔트보다는
험로에 더 가까웠지 않았을까?
그 누구도 문을 열고 어서와보다는
내 걸어가 열리지 않으려는 문과의 씨름의 시간들
그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윤 흥길의 소설 완장
그 속의 임종술은 저수지 감시관이라는 작은 권력, 완장만으로도
기고만장하게 주어진 힘을 과시하려한다
응급실을 들리며 느끼게 되는 것은
아무리 시국이 어쩌하다해도
코로나 이외의 다른 질환도 병이건만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킨 듯한 코로나가 아닌
이를 방폐삼아 그 뒤에 숨은 작은 완장을 찬
접수와 당직자들의 모습에
내 모습을 둘러보게 된다
난?
누군가의 눈에 어찌 보였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찌 보이고 있을까?
시스템을 논하고
시국을 논하지만 그보다 우선되야할 것들이 있음을
내가, 그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에 대해
지배와 통제를 위한 자리가 아닌
있는 그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되는
가르침을 주었던 시간에 감사한다
오늘도 내 앞의 주어진 길
내일도 가야할 길은 분명 밝고도 탄탄한 길은 아니겠지만
그런 길은 어쩌다 만나면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루하고 졸릴 듯
돌이 튀는 길이라해도
가다 한 밤 하늘위의 별과 달을 바라보며 가는
이 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