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있으려나?
속초시장에 가면 항상 들리던 곳중 하나가 국밥골목
그 푸짐한 한 그릇이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해도 먹기전에 이미 마음이 따스해지던 곳
속초나 바다하면 회를 생각하지만, 국밥을 떠올리는 내가 이상한 건지는 몰라도 가족과 함께 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한 때 속초 MBC를 주기적으로 할 때면 항상 들려 운전때문에 한 잔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얼큰함에만 만족했던 곳이었는대...
대학시절, 명동에서 남산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작은 골목들안에 작은 선술집들이 자리잡은 곳들이 몇곳 있었었다. 우리보다 조금 연배의 선배님들의 주무대가 명동이었다면, 우리는 종로세대라 해야하나?
그래도, 우리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호화로움과는 다소 촌스럽고,
허름한 구멍 구멍들이 보이는 골목도 많았던
그 명동의 곳곳에는 젊은이 들이 들락이며 아직 덜 익었지만 그래도 그 때는 나름 심각하게
시국을 논하며, 시를 읅고, 떄론 젊은 남녀간의 어떤 사연이라도 하는 기대감에 자리를 하던 곳
그 명동 끝자락 신세계를 지나 있던 4거리넘어 남산쪽의 왼편으로 작은 골목하나가 있었고
그 골목안에는 할머님이 하시는 감자탕집이 우리 친구들 아지트였었는대
이 곳은 들어갈 때 그냥 인원수에 맞는 빈 양푼 그릇을 준다
홀 한 쪽에선 감자탕이 연신 끓는다, 24시간 쉬지 않고 바닥으로 내려가면 갈 수록 진한 국물이 국저를 맞이해주고 이미 그 형태를 포기한 채모든 것을 국물과 함께한 빈 뼈들만이 나올 때도 있지만 그 때 그 맛은 그만 이었던 듯
멋번을 오고가며 양푼을 비우고
술잔의 갯수를 늘리며 취기에 정신들이 흐려지며 괜한 능력도 없는 오만들이 발동하면 벽에 이런 저런 글들도 적고
뜻이 맞으면 옆테이블이 한 테이블이, 때론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던 청춘의 시절의 국밥집
그 시절엔 나랏님이야기 잘 못하면 언젠가 어딘가를 가게 될지 모른다는 말도
또, 실제로 그랬다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접하던 시절
하긴, 닮았다는 것만을도 곤혹의 시절을 겪었다 하니
누군가 아르바이트로 조금의 돈이 생기면 성당아래 썬웨이나, 화신백화점 지하의 웨이브에서 통기타를 들으며 맥주를 마셨고, 또 누군가 물주가 되어주는 선배라도 같이 자리하면 나폴레옹이나 캡틴Q, 아주 횡재하는 날이면 패스포트한 병을 마실 수도 있었는대... 그래도, 결국 마지막은 국밥집에서 소주 한 잔의 입가심으로들 자리를 마치고는 했던 시절
이젠 국밥집들도 어느 고급 식당 부럽지 않게 잘 꾸며져 있다
그 만큼 재료도 좋아겼겠지만... 그 때 우리가 먹던 그 가격대로는 상상하기가 어려운 국밥이 되 버렸다.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며 카바이트 불빛아래에서 잔술로 오뎅에 한 잔들 하며 나누던 아쉬움
아마도, 그 아쉬움이 젊음의 인연에 대한 정이 아니었을까?
그 친구들 몇몇은 이미 세상밖 저 어딘가에서 쉼의 시간을 얻었다
또 다른 몇몇은 나와는 그 지위가 다른 곳에서 그 시절을 잊은 듯하고...
겨울이라 그런가?
갑자기 골목길이, 대로변의 어떤 골목길이 아닌 돌아서면 다시 보이던 그런 골목길... 그 골목길 한 편에 아련한 불빛을 따라가면 보이는 선술집과 국밥집이 그리워진다.
'골목에서 골목으로
거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
빔은 깊어가는데,
할머니 등 뒤에
고향이 뒷산이 솟고
그 산에는
철도 아닌 한겨울의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산너머
쓸쓸한 성황당 꼭대기,
그 꼭대기 위에서
함박 눈을 맞으며, 아기들이 놀고 있다
아기들은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한없이 즐거운 모양이다'
처 상병 시인의 '주막에서'의 일부다
그래... 국밥은 이래야 그 의미를 자기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