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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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일 봄을 찾았건만 봄은 없었네

산으로 들로 짚신이 다 닮도록 헤맸네

지쳐서 돌아오는 길, 뜨락의 매화 향기에 미소 짓나니

봄은 여기 매화가지 위에 활짝 피었네'

산사를 들려 적혀있던 어느 비구승의 오도송문구다

한 때는 토요일이면 진료를 마치고, 아무 길이나 막힘이 적은 곳으로 달려 해가 지면 세워 캠핑의자에 앉아 해짐을 바라보며 술 한잔에 저녁을 먹고 잠자리를 만들어 잠들고는 했었다. 새벽이면 일어나 부근의 산사를 찾아 올라 기도를 기리고, 아침 공양후 서울로 올라오곤 했었는대...

종교?

군대를 전공의를 마치고 다소 늦은 나이에 갔었다. 하필이면 경북 영천의 훈련소에 입소하고 김정일의 서울불바다 어쩌고하는 공격성 발언이 나오는 바람에 훈련소는 평소와 다르게 비상상태였고, 외부와 달리 안에서의 긴장도는 실제 마치 전쟁이라도 날 듯 불안감이 조성되던 시절, 서울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이 있기에 더 불안감에 평소 무교였던 나지만, 주말 종교활동에 법당을 찾으면 편안함을 느끼고는 했던게 시작이 된 듯 싶다. 당시 도아(稻芽)양질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란 뜻의 법명을 받았었다.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지만, 결국 집에 돌아와보니 자신의 새장안의 파랑새를 보게 된다는 이야기는 '파랑새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지만, 나 역시도 어쩌면 그 간 무언가가 빈 듯한 허전함과 숙제를 못한 채 등교를 하는 학생의 불안감을 버리지 못함도 나 자신을 밖에서 찾으려함 때문은 아닐까?

봄은 곁에서 이미 그 꽃을 피우며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참 오랜만에 형님이자, 친구이고, 내 힘들때면 의지하며 맘속 이야기를 허물없이 털어 놓곤 하던 분과 함께 한 잔을 했다. 아니, 이야기에 이야기가 쌓이면서 한 잔은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고 ... 오랜만에 취했던 듯 하다. 아침부터 이어져 온 숙취는 어제의 술자리뒤의 당연한 결과지만, 역시나 힘겨움이 오전중 이어져 오더니 오후들어 조금씩 나아진다. 모든 것들은 시간과 함께 하는 가보다.

못그리는 엉터리 방터리의 그림이지만, 오전중 그림을 그려보았다.

따스한 어느 곳인가에서, 시간에 연연함없이 있어보고 싶다.

어제의 술로 인한 숙취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안에 나를 놔 주었지만, 지난 시간 속 20대, 30대, 40대의 치열한 삶뒤에 쌓인 숙취는 언제쯤 나를 놔 줄까?

정해진 시간아래에서, 뭔가를 해야하는 그런 시간들이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다시 이젠 뭔가를 해볼까 싶은 마음이 들때까지 쉬어보고 싶다. 입학과 졸업, 다시 입학과 졸업이 이어지고, 수련의와 전공의, 군대, 의사로 교수로 강단과 진료실, 개원 끊임없이 이어져온 시간들의 고리를 한 번은 끊어볼 수 있을까?

'꽃이 피어서 봄인가? 봄이 와서 꽃이 피는가?'

현진 스님의 책속에 들어가 있는 한 문장이다

술을 마셔서 숙취가 오는 것처럼 답은 단순한게 좋은대, 삶의 피로함이 만든 숙취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못한 듯 싶구만, 내일을 위한 오늘이 아닌 오늘을 위한 오늘을 그냥 흘러가듯이 큰 의미담으려 말고 살다보면 삶의 숙취도 줄어들어 줄까?

오늘은 그림을 그려놓고 보니 못그리지만, 유화에 도전을 해보고 싶어진다

못그린다고 누가 잡아가진 않겠지?

다행히도, 못그리면 그려선 안된다는 법은 없는 듯 싶다.

고집을 버리고 그림을 배워볼까?

배움뒤엔 어느 틀에 갖혀 그리는 기술이 늘어남이 웬지 싫어 혼자 해 보고는 있지만 뒤에 내 그림을 내가 보며 남는 아쉬움이 갈 수록 더해진다.

고민이다

틀에 갖힘, 기술을 익힐까?

못그리지만, 자유로움을 택할까?

하긴, 배운다해서 그림이 나아진다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세상속 많은 것들이 배운다해서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다 배워서 될 수 있는 것만은 아닐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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