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사람의 마음에 간섭하지 말도록, 사람의 마음이란 깎아 내릴 수도 있고 추켜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유화로써 강함을 부드럽게 할 수도 있고, 강함으로써 이를 깎아 내릴 수도 있다.
달면 불길처럼 뜨거워지고, 식으면 얼음처럼 차가워진다. 가만 있으면 연못처럼 고요해지고, 움직이면 하늘까지 뛰어오른다.
사나운 말처럼 가만히 매어져 있지 않는 것, 이것이 곧 사람의 마음이다. '
아침이면 습관처럼 e-book을 열어 고름없이 아무 책이나 열고는 한다.
오늘 아침에도 6시반 눈을 떠 5분여 뒤적이다 핸드폰을 통해 열은 책이 장자의 책, 그 한 문구를 옮겨본다.
어제는 가족들과 함께 영웅본색을 뮤지컬로 보았다. 젊은 시절 유행처럼 이쑤시게를 입에 물고, 긴 롱코트를 입게 만들었던 영화, 주윤발과 장국영이라는 한 시대의 배우들의 시작을 열어준 영화를 그대로 뮤지컬로 옮기다보니 아마도 연출자의 욕심이 조금은 과했던 것일까? 아니면, 나와 같은 세대로 그 시대에 대한 열망이 아직 꺼지지 않아서 일까, 조금만 자제를 덜 보여주려 무대를 간소화했으면 좋은 노래, 배우들의 연기에 더 촛점이 가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도 다소 있지만, 노랜 참 좋았다. 내용도 과거로 나를 보내줄 수 있었고, 오늘 아침 출근길 영웅본색속 옛 노래를 들으며 2020의 첫 진료의 도로위를 밀려 밀려 출근을 했다.
옛 정치인중에 '허주'라는 분이 계시긴 했지만, 금년 한 해는 빈배로 가고 싶다.
갯벌위로 올려져 있는 배보다는 바다위에 떠 있는 빈배, 바람결에 이리저리 일렁이는 물결의 흐름을 다 몸으로 받으면서 흘러갈 때는 그래도 아직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흘러 가 버리기에는 해야할 일들이 잡은 발목을 그냥 무심함속에 놓아 버리기엔 힘듬이 있기에 닻은 내린채로 일렁여보련다.
양준일이라는 옛가수가 화제인가보다.
그에 대한 기사하나를 읽다보니 공감이 가는 문구가 있구만, '내가 10대로 돌아간다해도 내가 뭘 원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대에 원했던 걸 현재 내가 원하지 않는다.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에 원하는게 다 다르다. 그걸 갖는다고 해서 끝까지 행복이 이루어져서 더 이상 뭘 원하지 않는게 아니다. 그 때 원한 걸 10년, 20년 후에도 원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내려 놓으면 마음 고생도 덜 할 수 있다는거다.......... 네 20대의 꿈이 모든 것이 아니다. 그걸 미리 내려 놓을 수 있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일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지금 내 맘, 생각을 대신 해 준 듯
지난 시간, 내 젊었을 때의 꿈들은 그 때의 것들이었지 지금은 지금 내게 맞는 꿈을 꾸고자한다. 어제의 꿈에 대한 미련과 회한속에 너무 오랜 시간들을 버려오며 나 자신에게 스스로가 짐을 얹어 주어온 듯 싶다. 아쉬움, 배신, 이용당함이나 미움도 다 어제의 일들이고, 이제서야 50의 중반도 넘어서며 괜스레 미련을 부려왔음을 그래도 늦지 않게 알았다 생각하며 지금의 내 꿈을 꾸련다.
무대위의 극들을 더 보고, 턴테이블위에 판을 올리고, 누가 읽든 아니든 내 글을 쓰고, 읽었던 책들을 다시 소환해서 읽고, 못그리면 어떤가? 아내는 제대로 한 번 배워보라 하지만, 그냥 엉터리 방터리라해도 나 혼자 그려보고 싶다. 배움속엔 특정 틀이 있어 조금은 나아질지 몰라도 그냥 내 멋대로 그려보련다. 산도 올라보고, 캠핑도 다시 다녀보고 싶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술 한잔도 하고, 새벽 눈을 떠 산사에 들려 아침 공양도 해 보고, 낯선 언어를 쓰는 곳으로 여행도 더 많이 다녀보고 싶다.
현실속의 내용이야 어떠하든, 꿈을 꾸는 것은 내 몫이니 무엇을 내 품에 안든 나 스스로가 하면 그만일테니, 오늘은 어떤 꿈을 꾸어볼까?
오랜 내 형님이자 친구, 또 멘토시던 분이 2020년 첫 손으로 저녁에 오겠다 한다.
금년 시작을 한 바탕 웃음과 편안함으로 시작하게 되나보다.
커다란 쓰레기통하나 두고 맘속 버릴 것들을 다 버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