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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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은 한 마지기 논이다

물꼬로 물 흘러 들어가 한 마지기 다 채우고서야

논이 논인 것처럼

내 마음 책장으로 흘러 들어가 쪽쪽 헤집고

머금고 보듬다가 다시 넘쳐 돌아 나오고서야

책이 책인 것을

책은 책꽂이에서는 목정논이다

마음이 흘러 들어갈 수 없는 딱딱이 의자에

앉아 있는 책

마음이 흘러 들어가지 않는 책의 글자는

빼뿌쟁이거나 피

목정논에 솟아 오르는 잡풀인 것을'

강희근시인의 시인 "책'이다

1940년대를 사신 분이기에 생소한 용어들도 눈에 들어온다

목정논, 그 뜻은 오랜 시간동안 쓰여지지 않은 거친 버려진 논을 말한다 한다

뺴뿌쟁이는 그 거친땅에 의미없이 삐죽 삐죽 자라는 질경이들을 말하고, 책의 의미에 대해 이렇듯 잘 표현해준 시가 있을까? 책꽂이에 꽂힌 책들, 사실 나도 시를 읽으며 얼굴이 붉어지게 된다. 책욕심에 저자의 이름을 보고, 또 읽고 싶은 마음에, 책욕심에 사서는 책꽂이에서 미쳐 다 뽑아 읽지 못한 책들이 내게도 적지 않기에 오늘부터 몇달은 새 책보다 책꽂이의 책들부터 다시 한 번 돌아봐야겠다.

아침, 출근하여 무심한 마음에 달력을 보다 갑작스레 놀래 버렸다

설이 보름남았구나, 시간이란 놈은 뭐 이리도 무감각하게 지나가 버리려하는 것인지 새해운운한 것도 몇일이 어느사이엔가 후딱 지나가 버렸나보다. 건물안에서 도움을 주시는 수위분들이나 청소를 하여 주시는 분들의 선물부터 골라 주문을 넣었다. 매년 1년에 두 번, 설과 추석에는 작지만 감사의 표시를 하곤 했었는대, 오늘 달력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만 그 시간을 놓쳐버릴 뻔했다. 매일 병원식구들의 아침 시작일과는 계란 삶는 작은 기계에 계란을 올리고, 토스터기 옆에 식빵을 두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지역이 아무래도 대치동이다보니 새벽부터 집을 나서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나 건물내 수위, 청소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아침이면 들려 간단하게 나마 요기라도 할 수 있게, 또 환자분들도 편한 마음으로 좋아하심을 보면서, 나 역시도 큰 것보다 주변의 소소한 배려에 느껴지는 마음의 따스함을 돌아보게 되어 작은 것이 주는 것들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목표로 삼은 '그냥'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을 가지려하지만, 솔직히 맘처럼 그것도 쉬운게 아닌 듯 싶다.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나서의 에이 괜한 말과 짓거리를 했구나 싶은 후회들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니 이 어리석음의 챗바퀴에서 언제나 내려설 수 있을런지...

젊은 시절엔 헌 책방들을 자주 다니고는 했었는대, 그 때는 평화시장과 동대문 사이의 청계로에 헌책방들이 많았었는대 지금은 어떠려나 모르겠다. 찾는 책을 말하면 그 수 많은 책들속에서 해당 책을 찾아 주시던 서점 주인분들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또 꼭 어느 책을 사야지 하는 마음 없이도 들려 이 책 저 책을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사이 몇 권의 책들이 손에 들려 있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동네의 서점들도 보기 힘들어지고, 나 부터도 e-book에 갈 수록 익숙해지면서 종이와 멀어져간다. 헌 책방에 들어서면 맞을 수 있던 독특한 책냄새도 잊혀져 가고, 몇년전 부산 학회에 갔을 때 들렸던 헌책방거리가 불현 듯이 떠오른다.

연극

영화

뮤지컬

음악회

그리고, 책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지려한다

솔직히, 시간이 없어 어쩌고 저쩌고의 핑계나 피곤함을 말하며 그 간 마음만이 가던 것을 일상속의 나에게 집어 넣으련다. 시인이 말을 하 듯이 물고를 떠서 논에 물을 받지 못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일테니, 그냥 내 하고 싶었던 것들을 내 시간속에서 하련다.

새로운 책보다, 젊었을 때, 어렸을 때 접했던 책들을 다시 읽어보는 시간부터 시작해야겠다

카뮈의 패스트와 손님을 주문했다. 현대의 편함중 하나는 서점을 가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클릭 몇번으로 책을 주문하면 내일이면 내 손에 들어오고, e-book은 그냥 그 자리에서 내 핸드폰으로 다운되어지니 편하다면 편하지만, 서점의 낭만이 사라짐은 못내 아쉽다. 퇴근길 대형서점이 아닌, 동네의 작은 책방에 들려 책을 고르는 건 이젠 어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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