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년간 몸이 예전같지 않더니만, 지난 해 부터는 유독 더 심해진다
처음엔 감기라 별 생각없이 대하며, 자가 처방을 했었지만 한 달이면 반 이상을 주사와 약으로 넘기다 보니, 오늘은 근육통에 먹이 잠기며 말이 잘 나오지 않아 출근해서 바로 진통 소염제를 몇대 맞고 진료에 들어갔다.
꼭 이런날은 이건 무슨 법칙일까?
환자분들이, 그것도 처음 오시는 분들이 평소보다 더 많고는 하니 분명 얄굿은 무언가의 심술이 세상의 삶속에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가보다. 유치원생일때부터 후원을 하던 한 학생이 조리학과에 입학을 했다며, 감사의 편지가 왔다. 이젠 대학을 들어갔기에 후원도 마무리되고, 다른 대상을 선정해야한다는대, 글쎄 모르겠다. 이젠 나눔이 아닌 옮김의 시간이 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가는 것도 아마도 시간이 주는 마음의 변화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었는대, 이젠 내가 뭘 하고 싶었었는지 그리 욕심은 사라져간다.
그져 건드려짐없이, 조용하게 평온한 시간들을 기대하게만 되니... 아직은 내 나이에 너무 빨리 시간들이 흘러가 버리고 있는건 아닌지, 아직 해야할 일들이 다 마쳐진 것도 아닌것을... 어제는 아들과 대화를 나누다, 아직은 어리구나 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중 하나는 선지식이다. 그것도 학교를 다니고 배웠다고 스스로가 느끼는 사람들이 가지는 선지식은 편견이 되어버리기 싶고, 그 편견은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 수 있기에 스스로가 배웠다 말하는 사람들의 편견과 선지식을 접할 때면 때론 두려움과 다가갈 수 없는 그 들의 무장에 이젠 눈돌림으로 보지 않으려 하게 되니, 대화를 하고 내가 틀렸거나 상대의 생각이 다소 맞지 않음을 말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로 되어지는대 그러기엔 자신감보다도, 열정이나 그런 것에 힘을 쏟을 자신감이 사라져감을 느낀다.
한 젊은이가 프랑스로 망명을 신청했다는 뉴스를 언젠가 접한 기억이 난다.
이유는 군대를 감을 거부하기에, 의무로 가야하는 군복무는 정치적 판압이라 하여 망명을 신청했고 그 과정이 어찌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정부로 부터 망명이 인정되어 찾아보니 무국적자로 나오는구만, 그리도 이 나라가 싫고, 군복무에 대한 저항감이 강했었을까? 나라를 버리고, 무국적을 택할 정도로의 싫음이라면 분명한 그에 따른 철학을 가졌을텐대... 아마도, 다시는 자신의 모국땅으로 돌아오지 못할 텐대... 그러한 자신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타국에 망명을 신청할 정도의 용기라면 다른 무언가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부모나 형제, 혈연들을 다 버릴정도의 가치관을 가질정도로 군복무라는 하나의 과정에 대한 거부감이 분명했다해도, 그로 인해 버려야하는 것들의 가치가 그렇듯이 작은 것인가 물어보고 싶다. 나이들어가며 후회를 한다해도 이미 어려운 행동을 한 뒤이니...
미국과 유럽에서의 흑인 노예들, 그 들이 해방되면서 미국은 흑인들을 다시 아프리카로 이주시키며 라이베리아라는 국가를 만들게 된다. 백인들 사회에서 이미 서구의 발달된 문명을 익힌 흑인 노예들은 아프리카로 돌아와 아프리카의 발전을 위하기 보다 백인들에 당한 것보다 더 혹독하게 같은 흑인민족들을 탄압하고 억압하며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악순환의 반복만을 현재진행형으로 하고 있음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란 이해가 어려울 때도 많다. 강자앞의 약자, 그 약자가 더 약자앞에 놓였을 때의 모습, 지켜야할 것과 지켜짐에 따라 가지게 되는 내 행동의 자유와 나 스스로 지켜야할 때의 모습...
몸은 맘과 정신을 지배함이 맞는가보다
몸이 불편하니, 오늘의 글들은 어둡구만 ^^
턴테이블위에서 옛 영화들의 OST가 흘러나온다.
다 돌아가고 헛 도는 턴테이블위의 바늘이 지지짓거리며, 자기가 할 일을 다 했음을 알려준다.
일어나 다른 판을 찾아 다시 걸며 책상에 앉으며 생각해보니, 나라는 판도 다 돌고 지지짓거림을 보이기에 다음, 다들었구나 하며 전원을 끄기엔 아직 이르고, 다른 판으로 갈아야하나보다. 아직은... 중고 LP판이라 돌며 잡음을 섞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갈아 다시 돌려야할 시간속에 있는 듯... 하긴, 언젠가는 그 지지짓거림속에서 판을 갈 기회를 가지지 못할지도 그게 언제일지는 몰라도... 그 전에 옮김을 해야겠지, 이젠 나눔보다 옮김의 시간들이 남았다 함이 더 옳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