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막 석양 무렵이었는데 하늘이 핏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을 위로 불과 피의 혀가 돌아다녔다
친구들은 모두 떠났다
그때 공포에 떨면서 자연의 큰 절규를 들었다’
(몽크의 독백 중)
잘 알려진 몽크의 절규의 초기 작품명은 자연의 절규였다 한다.
화가였던 몽크는 어떠한 사람이었을까?
그의 다른 작품들속에도 핏빛 속에 슬픔, 죽음과 광기 등 어두운면들을 많이 담고 있다. 몽크의 삶에 대한 글들을 보면 가난과 어머니나 누나, 동생 등 가까운 이의 죽음과 병, 그리고 사랑에 대한 뼈져린 배신 등 힘듦의 시간을 보냈기에 그러했던 것일까?
꼭 그러하게만 그의 그림들을 설명하기 어려운 비교대상이라면 반 고흐의 작품들과의 비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몽크가 화가가 아닌 글을 쓰는 이였다면 마음속 상처, 인간의 아픔에 대해 글들을 남기지 않았을까?
같은 환경, 같은 조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서로 다른 모습
감정은 객관성이 아닌 주관성이다
한 때 독일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대변하던 관념주의에서는 이성을 말했다. 1+1=2라는 이성에서 인간은 출발한다 했지만, 쇼펜하우어는 이를 쓰레기라 칭했다. 이성은 그 순서에 의해 결과를 설명하지만, 우리의 삶 속 각자는 결과를 바탕으로 원인을 설명하려는 주관적, 이성보다 나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주관성이 더 강하다고, 이성으로 포장되고 설명하려는 인간의 본능 중에는 악함도 적지 않음을 …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자주 깨고는 했기에 잘 자고 싶었는데
몇몇 일들 때문인지 잠들면 지저분하고, 두려운 악몽을 꾸게 되어 잠드는 것이 오히려 싫어지기까지 한다. 인간의 본성, 본능, 주관성에서 난 왜 약함 쪽을 더 많이 담고 있는 걸까?
허허하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