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건축주의 아버지의 고향이었던 경주는 아버지에게 울타리 같은 곳이었다. 아버지는 서울 상경으로 서울에서 살았던 순간에도 늘 가슴 한 켠에 경주가 그리웠고, 서울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셨다. 경주에서 단독주택의 삶을 꿈꾸고 계획하던 중 프리패브 목조주택 전문 ‘공간제작소’를 알게 되었다.
건축주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모두가 눈치를 보며 선생님께 질문 드리기 힘들어할 때도 자신감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소년이었다. 바른 의견 내기를 좋아했으며, 책임감 있는 성격 덕분에 줄곧 임원이나 리더 역할을 도맡았다. 아버지는 건축주에게 한없이 멋진 분이었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늘 바빴다고 했다. 그 부분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건축주는 이제라도 아버지가 그리 염원했던 단독주택에서 가족과 더욱 행복하고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전원주택의 꿈을 꾸게 되었다.
전원주택을 결심하다.
아버지의 삶에 정년은퇴라는 잠시 멈춤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정년은퇴를 앞두고 많은 생각을 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당신에게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가족과 함께 오래도록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꿈에 그리던, 아버지의 성격을 꼭 닮은 책임감 있고 견고한 전원주택을 짓게 되었다.
아버지는 프리패브 전문 목조주택 업체인 공간제작소를 찾았다. 집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집이라는 것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어려운 현실임을 깨달았다. 전원주택에 관한 정보들을 모으면서 여러 업체를 비교 선상에 올렸는데 공간제작소는 특이했다. 공장에서 집을 짓고, 현장으로 옮겨 조립만 하면 된다는 것.
현대 사회는 복잡하다. 오죽하면 ‘복세편살’ 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줄임말) 아버지는 바로 공간제작소의 공장이 위치하고 있는 평택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조립식주택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으로 설계가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가졌는데, 반대였다. 아버지와 건축주의 바람대로 설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모듈러주택, 조립식주택 특성 상의 모듈을 지켜야 하지만 그 모듈도 다양했기 때문에 설계의 제한이 없었다.
아버지는 전원주택을 지으면서 생각했다. “다른 곳은 신경 쓸 게 많아 집 짓다 10년 늙는다는데 난 여기서 다 해주니 그저 전원주택 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갈 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전원주택은 건축주와 그 아버지를 닮아 참 견고하다. 그리고 이 가족에게 울타리가 될 것이다.
주말이 되고 가족들이 아버지가 계신 경주 집으로 찾아왔다. 손에 달린 케이크와 꽃다발, 그리고 편지 한 통, 편지 한 통에는 이러한 문구가 적혀있다.
“아버지, 당신의 은퇴가 아쉬움보다 환희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여태까지 달려왔던 그의 열정과 패기가 영화처럼 파노라마같이 한 순간에 지나간다고 하셨다. 은퇴와 함께 찾아 온 인생의 제 2막은 행복과 편안함 속에서 보내길 바란다.
ⓒ 사진, 글 - 공간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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