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지인 Apr 07. 2024

6년간의 커리어 정리

커리어디깅나잇의 1기 연사 경험

어떤 기회로

6년간의 커리어를 정리했나요?


지난 23일 토요일, 선릉에서 커리어디깅나잇 1기 세션이 열렸다. 나는 그 자리의 1일 멘토였다.

1부는 멘토(나)의 강연, 2부는 디자이너들끼리의 대화로 이뤄졌다.


어.... 음.... 아....

멘토 제안을 받게 된 것은 지난 1월, 링크드인을 통해서였다.

디자이너 커뮤니티 '이스터에그 캠프'를 운영하고 있는 리오랩은 내 '제로베이스 특강 준비글'을 감명 깊게 봤다며, 마찬가지로 경험공유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몇 번의 퐁당 끝에 나는 이스터에그캠프가 가진 방향성에 깊게 공감하게 됐다. 양산형 부트캠프가 아닌 디자이너 커뮤니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솔직히 나는 일개 디자이너다.

내 포트폴리오 코칭과 강연을 들었던 분들이라면 의아해할 수도 있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내가 잘했던 건 그저 내 경험들을 브런치로 담백하게 실었던 것 밖에 없다. 그런 내가 경험 공유를 하자니... 무엇이 있을까 조금 막막했다. 


하지만 기획의 고민이 있던 것도 잠시, 이스터에그캠프에서 열심히 기획해 오셨다. 형식은 온라인 커피챗 1회와 커뮤니티 세션 1회였다. 커뮤니티 세션에서는 내 경험을 폭넓게 공유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커피챗은 그보다 더 압축된 콘텐츠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커피챗을 준비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2월 17일, 나는 넥스터즈 연사로서 짧은 세션을 진행했었고 그 내용을 그대로 활용했다. '스타트업에서 대기업 계열사로의 이직, 그 준비'의 내용이었다.


해당 내용은 아래 글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확인해 주시길 바란다.


문제는 커뮤니티 세션이었다. 약 20명이 모이는 곳에서 약 1시간의 나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할까 정말 많이 고민했다. 원래대로라면 듣는 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내용을 주로 생각했을 거다.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많을 테니 포트폴리오, 취업에 대한 팁이라던가, 시니어로서 주니어들에게 바라는 점? 이런 걸 생각했겠지.


그런데 이번엔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나의 6년간의 커리어를 복기하고 그 사이에 쌓은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로서의 초창기 내 모습을 떠올려 봤다. 그랬더니 고등학생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됐다.

나는 발표자료를 막 적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로서의 시작 (~취준 전)


나는 원래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 진로를 결정하고, 서울 디자인 고등학교 패션 디자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내 꿈은 그리 명줄이 길지 못했다. 서울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그중에 재능 있는 친구들을 보며 내 꿈은 자연스레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대학교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운 좋게도 특성화고 전형으로 성신여대 산업디자인학부에 입학했다.


산업 디자인 학부는 1학년 때는 모든 종류의 전공을 다 듣는다.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미디어디자인, 리빙스페이스디자인... 그렇게 1학년 때 모든 전공을 경험하며 2학년때는 세부 전공을 정하게 된다. 내가 선택한 전공은 제품 디자인학과였다. 내가 제품 디자인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그게 가장 인간의 삶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삶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디지털 서비스를 만들고, 디자인 프로세스를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2학년까지 다니고 나는 돌연 휴학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를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22살의 나이로 디자인 회사에 알바로 취직하게 된다. 가산 디지털 단지에 있는 작은 디자인 회사였는데, 내가 들어오기 전 디자이너 한 명이 입사하고 5명이 우르르 퇴사한 이력이 있던 회사였다.(도망쳤어야 했다.) 여하튼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개발자와 협업을 하게 된다. 개발자는 비상주 인력이었음에도 내게 개발적으로 많은 걸 알려주신 분이었다. (아이콘 이름을 한글로 저장해서 보냈던 내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까.) 처음으로 개발자에게 넘기기 위한 아이콘, 이미지 정리를 하고, 화면 디스크립션도 작업했다. 참 웃긴 사실 하나는, 나보다 일찍 정직원으로 취업한 디자이너 언니는 (나보다 2살 많았다.) 경리와 재무 업무를 보고 있고 알바인 내가 디자인 업무를 했다는 사실이다. 보다시피 대표는 여러모로 무지막지했다. 나는 스트레스로 혈뇨까지 봐버렸고 그 길로 퇴사했다. (그냥 빤스런했다.)


두 번째 회사는 압구정에 있는 디자인 회사였다. 첫 번째 회사 대표와 다르게 대표는 멀쩡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무난하게 막내로서 이쁨 아닌 이쁨 받으며 잘 지냈다. 압구정 근처에 있는 회사다 보니 주변 성형외과, 한의원의 운영디자인을 하고 랜딩 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 사수도 있어서 사수의 디자인을 보면서 그래픽 디자인의 밸런스를 배웠다. 요기서 손 빠르게 디자인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두 번째 회사 알바를 마치고 복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지막까지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었던 나는 고대&연대 창업 모임의 한 팀의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된다. 거기서 실제로 앱을 론칭하게 되는데,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 'Blur'였다.

 

그 당시 만들었던 온라인 팸플릿



Blue(이하 블러)는 카테고리별로 익명 게시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이었으며, 사진을 올리는 경우에는 Blur처리되어서 올라간다. 그래서 Blur처리된 사진을 보고 싶으면, Long press를 하면 됐다. 그렇게 사진이 보이면 View Count가 잡혔다. 이 콘셉트가 흥미로웠는지, 유입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창업 동아리가 그렇듯..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다.

그때 당시 만났던 팀원들이 정말 잘해줬었는데.. 이 글을 쓰니까 그리워진다. 나는 참 인복이 좋은 것 같다.


이후 나는 복학을 했고, 졸업을 코앞에 두게 되었다.

이때의 나는 별로 졸업과 취업에 대해서 마냥 생각이 없었다. 휴학해서 동기들보다 1년이 늦었는데도 말이다. 주변의 친구들은 삼성 디자인 멤버십을 하며 삼성 취업 준비를 하고, 네이버 등 대기업을 준비하는 데도, 나는 안일하게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지금 뒤돌아서 생각해 보면 '어차피 나는 안될 거니까' 같은 패배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나는 될 거니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던가. (하하)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해야지 해야지 하고만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물어보기도 싫었다. 이러다가 어디든 저절로 취업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던 때,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교에 '서비스 디자인 학과'라는 새로운 학과가 생기는데 그 학과의 조교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당시 나는 대학원생이 아니어도 조교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친구랑 같이 조교를 하게 됐다.


조교를 하면서 디자인 외주를 했다. 조교 월급하고 외주 월급을 받다 보니 돈을 꽤 받으며 생활을 하게 됐다. 이 기간 덕분에 혼자 유럽여행, 태국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고 마사지도 받고 좋은 호사는 다 누린 것 같다. 그렇게 1년간의 조교 생활도 끝났다. 옆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도 디자인 회사에 취업을 했고, 나도 이제는 더 이상 취업 준비를 미룰 수 없었다.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하나의 부트캠프를 발견하게 된다.

아카데미 정글이었다.



취준 시작, 부트캠프


아카데미 정글은 두 달간 진행하며, 2개의 프로젝트를 만들어 포트폴리오를 완성시키는 부트캠프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중소기업과 연계하여 면접도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자소서 첨삭도 도와주고 말이다.(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난 정말 글을 못썼다.)


취업 준비의 1도 몰랐던 나는 아카데미 정글 면접을 어찌저찌 좋게 봐서 수강생이 되었고,

2달간 프로젝트와 포트폴리오를 만들게 되었다.


당시 만들었었던 앱 런처화면 (;;;)


이때 처음으로 맥북 프로 2018년형을 사고, (지금은 동생 줬다.) 포트폴리오 만들기에 집중했다.

생활비는 내가 이디야 알바와 디자인 외주로 벌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이 가능했다. 하지만 중간에 고난이 있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위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종양 중에서도 악성 종양이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라 하던가, 당시 어머니가 병원에 근무하셨던 터라 빠르게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주된 보호자는 나여서, 아카데미 정글에는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쪽의 배려로, 마지막 포트폴리오 발표 및 취업 연계 도움은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찌어찌한 상황에서 포트폴리오는 완성됐다.


중간에 맥북 액정이 깨져서 엄마랑 나랑 엉엉 운 적도 있었고, 디자인 외주 하느라 새벽에 보호자 침대에서 일한 적도 있지만 난 이때의 경험이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다행히도 지금은 무척 건강하시다!


휘황찬란한 포트폴리오를 보시라!


포트폴리오 발표를 마치고, 몇 개의 중소기업에서 면접 제안이 들어왔다.

처음 면접을 본 곳은 PXD였다. 솔직히 자신 있었다. 나는 당시 내 포트폴리오의 문제점도 모르고, '그래픽'에만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래픽만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던 주니어였기 때문에 (ㅋㅋㅋ) 붙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 질문은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리디라는 액티브 시니어들을 위한 서비스를 기획하셨는데, 액티브 시니어들의 신체적인 특징을 고려해서 디자인하신 점이 있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고려할 점인데, 당시 나는 하나도 고려 안 했다. 시각적인 특징에서 오는 대비감이라던가, 텍스트의 가독성이라던가 너무나 고려할 점이 많았을 텐데 나는 그저 이쁘게만 디자인, 아니 그린다고 그런 것들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어버버 대답을 못했다. 나는 아마도 거기서 면접 아웃되었을 거다.


면접이 끝나고 나서 찜찜한 기운이 계속 남아있었다.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걸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은 면접이 남아있었고 최종적으로는 유플리트라는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회사에 취업하고 나니, PXD 면접 이후 남아있었던 찜찜함은 사라졌다. 내가 어디에 취업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자신감은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 거다. 나는 내가 잘난 줄 알았다.



중소기업에서의 운영디자인


입사하고 나서는 평탄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나와 같이 유플리트에 입사했던 동기 언니는 다양한 구축 프로젝트, 개선 프로젝트에 차출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나는 운영 디자인만 계속하고 있던 것이다. (지금은 이유를 알겠지만) 그 당시 내가 하던 운영 디자인이란 이미 완료된 이미지 PSD에서 텍스트, 이미지만 바꾸는 작업이었다. 물론 주기별로 기획안을 받고, 작업을 하고 정리하는 일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오타 검수, 이미지 검수 등 소소한 것들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니까.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 이거 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닌데, 나 더 큰 거 중요한 거 잘할 수 있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불만을 가질 때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본인이 다니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를 뽑는데, 생각이 있느냐고. 나는 그 말을 덥석 물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내가 회고를 이때부터 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첫 이직, 스타트업의 시작


스타트업은 리워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였다. 나는 운영 디자인에서 벗어나서 '서비스'의 디자인을 맡게 됐다. 친구와 같이 일할 수 있는 것도 큰 메리트였다. 우린 당시 많이 친했었기 때문에 잘 다니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 내가 PXD 면접에서 놓쳤던 찜찜한 무엇인가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 찜찜한 것은 '내 디자인엔 이유와 논리가 없다'는 거였다. 친구와 일하면서 그것이 더욱더 뚜렷해졌다. 친구는 논리적인 기획자였으므로, 본인이 한 와이어프레임을 가지고 내가 디자인을 하면 내 디자인에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대답을 뭉그러뜨려서 했다. '보통 그렇게 하니까'라는 게 내 주 대답이었다. 그 당시에서는 '왜 그런 것까지 물어보지?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는 의문스럽고 답답해했다. 나에게 질문하는 게 깊어지기 시작했다. 왜 버튼의 크기가 이런 지, 왜 이 UI를 차용했는지, 해당 플로우를 이해하고 있는지, 이 기능이 우리 서비스의 가치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까지. 모든 것이 질문이었다. 난 대답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아직 깨우침이 없었다. 레퍼런스를 참조한다는 의미도, 서비스가 가지는 가치라는 의미도,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것도 등등 모든 것이 대답하기 어려웠고 힘들었다.


우리 사이는 좋지 않아 졌다. 친구는 많이 인내하면서도 나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나도 따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서로 만족할 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새벽까지 남아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 사이는 개선되지 않고 친구가 다른 좋은 곳으로 이직함으로써 그 갈등은 끝나게 되었다. 


비록 우리 사이가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어도 뒤돌아 생각해 보면 이 친구 덕분에 많이 배운 것 같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디자인에는 이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와서) 그리고 다양한 서비스들이 가지는 주요 가치에 대해 알고, 그 가치를 위해 어떤 서비스를 펼치고 있는지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그를 기반으로 한 제대로 된 레퍼런스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나의 이직도 친구가 이직을 하고 나서 시작하게 됐다.


친구와의 갈등으로 가려져 있던 회사 생활이 전체적으로 트이기 시작하면서,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직을 하자.



두 번째 이직, 자기 객관화가 필요해.


이직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첫 번째, 자기 객관화가 필요했다. 지금 나의 상황과 능력을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이상을 원하는지도. 그리고 마구 노션에 적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직을 하고 싶은지, 이직을 한다면 어떤 회사로 가고 싶은지, 결국에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적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디자이너인지 말이다. 내 경력은 무척 작고 소중했다. 유플리트에서 한 것은 없었으며, 스타트업에서 한 디자인은 기획자 친구가 했던 디자인이 거의 전부였고 나는 정보만 전달하는 홈페이지 등만 진행했기 때문이다. 동아리 넥스터즈에서 했던 디자인도 구축 프로젝트이긴 했으나 제대로 개발되어 운영되진 않았으니 콘셉트 디자인에서 그치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가진 것으로 승부해야지. 난 수능 이후 두번째로 치열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직 게시글을 확인해 주시면 좋겠다.



처음으로 간 대기업 계열사


치열했던 이직이 끝나고, 카카오의 이름을 단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카카오스타일이라는 회사로 갓 카카오로 인수된 회사였다. 원래는 크로키닷컴으로 여성 패션 버티컬 플랫폼 '지그재그'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였다.


처음 이직할 때 뽕이 차올랐다. 아니, 누구나가 다 아는 서비스의 디자인을 맡게 된다니! 노력의 성과가 빛을 발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나는 갑자기 카카오의 패션 서비스 리뉴얼을 맡게 되었다. 그 이름도 '패션 바이 카카오' 카카오가 카카오 스타일로 이관한 서비스의 이름이다. 우리는 이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 새로 디자인과 개발을 해야 했다. 그것도 두 달 안에 말이다. (퀄리티가 상상이 가시는가? 나는 그때 생각하면 그때 디자인 했던 나를 총으로 쏘고 싶다.)


다음 게시글을 확인해 주시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패션 바이 카카오'라는 서비스의 전담 디자이너가 되어서 UXUI는 물론, 배너 디자인, 마케팅 디자인 등 모든 디자인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인 내가 왜 이런 것까지 하고 있어야 하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체유심조라고, 생각을 바꿔버렸다. 나는 서비스의 모든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얼굴이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서비스에 애정이 생기고 더 의견이 생겨났다. 좋은 생각 작용이었던 것 같다. 


서비스는 급 성장세에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게 빨리 이뤄졌다. 의사결정도, 디자인도, 개발도. 그래서 나는 빠르게만 디자인했다. 빨리 쳐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아쉽다. 퀄리티를 많이 챙기지 못한 것 같다. 모든 후회는 지난 후에 생기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패션 바이 카카오의 제품 디자인을 맡고 있지 않다. 지금은 내가 이직 초반에 꿈꾸던 지그재그의 서비스를 맡아서 작업하고 있다. 리텐션 지면인데, 부디 잘되었으면 한다. 언젠가 리텐션 지면에 대한 회고도 작성해볼까 한다. (지금은 뭐랄까 생각하고 싶지 않달까...)



여기까지,

내 6년간의 커리어 훑기가 끝났다.


지난 내 6년을 되돌아보면, (대학교까지 생각하면 더 되었겠지만) 다양한 경험들로만 점철되어 있다는 게 느껴진다. 내 커리어에서 아쉬운 점은 하나의 지점을 딥다이브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 지점을 지그재그에서 느꼈으면 좋겠는데 내가 있는 지면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는 좀 더 생각해 보고, 시도해야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발표는 위와 같이 진행이 되었고 끝났다. 재미없을지도 없는 이야기였는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1시간 동안 잘 들어주시면서 질문도 많이 해주셨다. 나중에는 링크드인으로 따로 연락이 와, 포트폴리오 커피챗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험 자체가 누군가에겐 큰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연사 경험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품카드 개선 프로젝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