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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도남 Dec 31. 2021

2021년 회고

연말회고는 못참지

벌써 한 해가 지나갔다. 코로나 종식을 3년째 기다리는 날이 기어코 와버렸다. 재택근무의 달콤함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묘하게 공존한다. (일단 내년 3월까지는 재택이 연장됐다.)


올 한 해는 시간이 빠르면서도 느리게 간 것 같다. 아마 취업준비라는 인고의 시간은 느리게, 취뽀 후 기쁨에 취해 흘려보낸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취업이 2021년을 관통하는 키워드였지만 이 외에도 여러 일이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기에 회고를 통해 산재되어있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보려 한다.


졸업

대학을 졸업했다. 척척학사로 전직함으로써 사회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평범함의 조건을 또 하나 갖추게 되었다! 와 정.말.기.쁘.다-!

한 번의 휴학 없이 스트레이트로 달렸다. 말년휴가를 모으고 모아 전역하기도 전에 복학을 했다. 공부든 운동이든 인간관계든 나름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뭐라 한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꽤나 임팩트가 컸던 4년이다. 참 많은 인연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고 감사하게도 졸업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만나며(때로는 zoom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취업

졸업 직후에 취업을 했다! 짧다면 짧은 취준 기간이었지만 잠시나마 지옥을 맛봤다. 취업을 하면 인생이 행복해지고 성공이 보장된다는 식의 허황된 기대는 없었지만 막상 결과를 얻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별 게 없었다. "그냥 이것도 인생에 지나가는 한 시점일 뿐이구나" 싶었다. 성대하게 잔치라도 열어야겠는 마음은 첫 월급을 받고 내 노동의 가치가 거대한 세상 앞에 얼마나 작고 귀여운지 실감하면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렇다고 허무주의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일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자아실현 측면에서도 큰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흔히 직업을 선택할 때 잘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의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이 교집합 영역에 개발이라는 키워드 하나가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다. 남들보다 특출 나지도 않고 회사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앞으로도 개발을 내려놓을 것 같지는 않다.


슬럼프

입사를 하고 3개월쯤 지났을까? 꽤나 일찍 슬럼프가 찾아왔다. 사춘기인지 오춘기인지.. 아래는 내가 7월에 쓴 글 중 일부이다.


개발 실력도 그렇고, 타인에게 그렇게 nice한 사람이 못 되는 내 모습에도 실망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방향을 못 잡겠다. 지금까지 살면서 딱히 이런 적이 없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 발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 좋은 동료가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것이기는 싫은데 좋은 사람이고는 싶다. 취업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 같은 유토피아는 당연히 없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인생의 몇 가지는 선명해질 것 같았는데 그것조차 아니었다. 죄다 흐려졌다.


인생에서 분명 큰 허들을 하나 넘은 것 같은데 내 앞길은 전혀 선명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컸다.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노래 중에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라는 가사가 너무 와닿았다. 그렇게 노력하고 아등바등 몸부림쳤던 것이 겨우 이런 평범함을 위한 것이었다니. 앞으로 나는 어떡해야 하지? 그 이상의 노력을 쏟아부어서 위로 올라가야 하는 건가? 그럼 언제까지? 평생? 노력의 보상은 확정적이지 않은데 어디를 바라보고 무얼 동기로 살아가야 하지? 등의 질문들이 계속 안에서 피어올랐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한 학기를 마치며 해주신 말씀이 있다.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졸업을 하면, 취업을 하면, 학위를 따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사는 대로 평생을 살게 될 테니,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너무 멀리 보면 때로는 거대한 세상에 압도되어 허무감과 우울감이 나를 지배한다. 미래를 살지 말고 현재를 살자. 지금 내가 행복한 것, 지금 나에게 의미 있는 것,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충분히 느끼면서 살기로 했다.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부스트캠프 6기 코드리뷰어/멘토

개발자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개발자들은 번아웃이 오면 그걸 개발로 푼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든지, 스터디를 해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한다든지 등. 나도 그런 부류다. 위에서 말한 슬럼프를 나름 극복해보고자 부스트캠프 코드리뷰어와 멘토에 지원했고 무사히 활동을 마쳤다. (부스트캠프가 궁금하다면?  여기로!)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루에 6명의 코드를 리뷰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도 많이 할애해야 했고, 부캠 미션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난이도여서 모르는 것은 찾아보고 공부해보면서 캠퍼들의 질문에 답해주는 경우도 잦았다.

힘들었지만 각각 6주간의 코드리뷰와 멘토 활동으로 슬럼프에 빠졌던 일상에 조금이나마 루틴이 생겼고 개발 공부를 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또, 온라인으로밖에 만나지 못했던 멘티들과 부스트캠프가 끝나고 오프라인에서 만나 같이 닭갈비도 먹고 일상적인 이야기도 나누며 더 가까워졌다. 5기 수료생으로써 멘티라기보다는 같은 캠퍼라는 마음에 애정이 더 갔는데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고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지어서 다행이었다.


데브툰

올해 가장 큰 도전이자 새롭고 의미 있었던 시도는 인스타툰을 시작한 것이다. 계속 회사 일(개발)에만 묻혀서 살기보다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나 스스로가 무얼 좋아하는지 탐구하기 위해 안 해본 무언가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브런치에도 올리고 있는데, 개발 이야기를 일상에 접목시켜 재미있게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똥손이기 때문에 원고만 작성하고 그림은 딱숭님이 작업해주고 계신다.

나름 우리만의 mission statement를 두고 기준 삼아 매 화를 구성하고 있다. 첫째는 비개발자가 이해할 수 있고 개발자들의 세상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이야기, 둘째는 전문적 지식을 보편적 진리로 확장시켜 인생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는 꽤 즐겁게 작업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평소에 생각했던 이야기를 재밌게 전달하는 채널로 키워보고 싶다.

인스타: @dev._.toon (팔로우와 좋아요는 사랑입니다ㅎㅎ)


독서

데브툰에 이어 세상과 나에 대한 탐구로써 독서를 시작했다. 여기서 핵심은 개발 서적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사내 스터디로 Expert Swift클린코드를, 지인들과 클린 아키텍처를 읽고있다. 이렇게 그룹으로 스터디하는 것 외에도 개발 교양 카테고리로 컴퓨터과학이 여는 세계, 비전공자를 위한 IT 지식을 읽었다. (난 전공자인데..?) 이 외에 내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마케팅, 콘텐츠, 돈, 신앙, 인문학 등에 대한 책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해 Free Workers, 게으르지만 콘텐츠로 돈은 잘 법니다, 무명, 돈의 속성,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고 있다.

그동안 너무 개발이라는 도메인에 갇혀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삶을 이루는 코어 지식이자 가치는 개발이지만 여러 방면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과 상상력을 확장시키고, 그것들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하며 훨씬 풍성한 내가 되어가는 것 같다. 너무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다독하는 2022년이 되길!


브런치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사실 인스타툰 내용으로 글 포맷이 위주인 플랫폼에 작가 등록이 될까 반신반의했지만 하루 만에 통과됐다! 평소에는 노션이나 네이버 블로그에 개인적으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이것들을 브런치 갬성으로 다듬고 가공해서 올려보고 있다. 운 좋게도 만화를 올리자마자 브런치가 추천하는 글로 선정되어서 뜻밖의 트래픽이 몰려 이틀 만에 조회수 1000을 넘겼다! 3일 정도 유지되다가 추천글에서 내려가면서 조회수도 내려갔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ㅎㅎ 플랫폼 특성상 인스타에는 툰만 올리지만 브런치에는 글도 자주 올려볼 예정이다.



평소 감정에 큰 흔들림이 없는 타입인데 이번 해는 새로운 내 모습을 많이 만난 2021년이었다. 그동안 사회에서 정해준 목표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지만 이제 더 이상 누구도 내게 방향을 제시하거나 목적을 부여해주지 않는다. 마치 시작점과 결승선이 있는 수영장에서 열심히 수영 연습을 하다가 정해진 방향이 없는 바다에 던져진 해였다. 많이 헤매기도 하고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 노력했는데, 오는 2022년에는 이 성장통을 조금 여유를 갖고 즐겁게 겪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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