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알고 있던 가족의 정의가 혈연, 결혼, 입양으로 형성된 집단을 의미했다면 반려형 AI가 발달한 요즘 사회에서의 가족이란, 말하자면 상품 옵션 같은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 개인주의가 심화됨에 따라 가족, 친구, 연인, 이웃 등 각각의 공동체와 관계가 줄어드는 현상이 극대화되며 유전적 요인을 나눠 가진 부모나 형제들과의 관계를 더 이상 ’ 가족‘의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고 그들과의 관계와는 별개로, ’나‘를 주체로 하여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각각의 역할을 부여한 반려형 AI로봇과 함께 형성된 집단을 ’ 가족‘으로 정의하는 문화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이제 진짜로 가족을 직접 선택하는 시대가 열렸을 뿐 아니라, 연인이나 배우자에 이르기까지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들을 ’ 남‘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닌, ’나‘의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을 그대로 가진 로봇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집안일이나 요리 같은 단순 노동을 해주는 살림꾼 로봇, 언어나 수학, 과학 등 자기 계발을 위한 학습을 도와주는 선생님 로봇, 연인이나 배우자처럼 감정을 공유하는 상대가 되어주는 심리 로봇, 쓸데없는 사고를 칠 때도 있지만 귀여움만으로 승부 보는 동물 로봇, 취향을 분석하여 제품을 추천하는 쇼핑 로봇, 범죄나 안전사고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경비 로봇까지 다양한 종류의 로봇 중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로봇을 각각 골라서 내 입맛에 딱 맞는 가족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다.
물론 부모나 형제, 직장동료, 이웃 등의 인간관계는 그 자리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 사람들을 우리는 더 이상 ’ 가족‘이라는 단어로 부르지 않게 된 것이다. 내 어머니의 가족, 내 아버지의 가족, 내 형제의 가족, 내 친구의 가족, 내 이웃의 가족 구성원이 각자가 원하는 정체성을 부여한 로봇으로 서서히 대체되면서 인구수는 더욱이 급감하고 있다. 정부는 인구수 급감의 대책으로 정부 차원에서 공동체 활동, 사회 모임, 공공 행사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세대 간 소통 프로그램을 강화해 가족과 지역사회의 연결을 회복하려 노력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미 가족을 입맛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 선택적 유대감‘의 맛을 본 현대인들에게 ’ 가족‘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사회 평론가들은 이전과 다른 정의의 ’ 가족‘을 현대인들이 너무 쉽게 선택하고 버릴 수 있게 되면서 관계의 안전성에 대한 인식 부족이나 ’ 가족‘이라는 단어의 취약성을 언급하며 우려를 내비쳤다. 무엇보다 가족의 선택이 가능해지면서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가족 구성원이 달라져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은 가족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고 불평등이 심화됨은 물론 더 이상의 인구 증가를 기대하기 힘들어지면서 근미래에 인간은 결국 멸종할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그러나 첨단로봇 과학자들은 가족을 직접 선택하는 현대의 문화와 같이 유전자 조합 기술을 통해 부모의 유전적 요소를 선택하고 조합하여 꼭 인간의 출산이 아니더라도 우수한 신체적, 지적능력을 가진 아기 또한, 직접 설계하여 ’ 맞춤형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부 인간의 유전자만 있다면 인공 자궁을 통해 태아를 성장시키고 출산 후 AI 양육 로봇을 통해 아이들의 정서적, 육체적 성장을 돕는 방식으로 인간이 직접 출산을 하지 않고도 AI 기반 로봇을 통해 일정 인구수를 유지하며 현대의 가족의 형태를 구성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AI로봇이 가족의 역할을 대체하며 가족 간 정서적 결핍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시대의 포문인 동시에 감정적으로 대체된 관계만으로 생명을 기계화하거나 ’ 가족‘이라는 개념이 상실되는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이게 될 ’ 가족‘이라는 단어의 운명은 어떤 미래로 흐르게 될까? 지금, 모두가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