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푸른 풀밭 위에서 꾸미라는 작은 애벌레가 살고 있었어요. 꾸미는 다른 애벌레들과 달리 번데기가 되는 걸 너무나도 두려워했어요. 다른 애벌레들은 번데기로 잠깐 자고 일어나면 아름다운 나비가 될 거라며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꿈나라로 갔지만, 꾸미는 그 변화가 너무 무서웠어요. 번데기는 딱딱하고 뾰족한 껍질로 둘러싸여서,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거든요. 더군다나 그 안에서 잠만 자야 한다니, 너무 지루할 것 같았어요.
꾸미는 늘 말했어요.
"나는 번데기가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자유롭고 말랑말랑한 애벌레로만 살고 싶어!“
그러던 어느 날, 꾸미가 풀밭을 지나던 중, 온통 흰 꽃들로 가득한 꽃밭에서 눈에 띄는 분홍색 꽃을 발견했어요. 바로 목화꽃이었죠. 목화꽃은 다른 꽃들과 달리 유독 분홍색을 띠고 있었고,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어요. 꾸미는 아름다운 목화꽃에게 다가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어요.
”저는 번데기가 되는 게 두려워요.“
목화꽃은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나도 처음엔 하얀 꽃으로 태어났단다. 온 꽃밭이 하얀 꽃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몸의 색이 점점 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처음엔 두려웠단다. 왜냐면 나도 다른 꽃들처럼 하얗고 순수한 흰 꽃으로만 존재하고 싶었거든. 네가 번데기가 되기 두려웠던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나는 조금씩 용기를 냈어. 내가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고, 내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거든. 대신 그 변화 속에서 꺼지지 않을 나만의 빛을 찾기로 결심했어. 나는 분홍색으로 물들면서 흰색일 때는 낼 수 없었던 더 풍부하고 깊은 향을 낼 수 있게 됐고, 그 덕에 온통 흰 꽃들이 난무하는 이곳에서 벌과 나비를 더 강력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분홍 꽃이 되었단다.”
“이제는 내가 흰 꽃으로 태어나 분홍 꽃으로 저무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됐어. 그건 원래의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저 어른이 된다는 거지. 난 흰색이든 분홍색이든 여전히 나인걸. 내가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오히려 그런 변화를 통해 나만의 빛을 찾게 됐으니 축복이지. 애벌레가 번데기로 변하는 것 역시 두려운 일이겠지만 너도 그 속에서 진짜 너를 찾게 될 거야. 말랑말랑한 것도 좋지만 반짝이는 날개를 갖게 된다는 게 신나지 않니?”
꾸미는 목화꽃의 말을 들으니 두려움보단 설렘이 생겼어요.
”나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번데기를 넘어 멋진 나비가 될래요.“
용기를 낸 꾸미가 번데기가 되어 깊은 잠을 자는 동안 향기로운 분홍 목화꽃은 저물었고, 시간이 지나 새로운 흰 목화꽃들이 피어나면서 꽃밭은 다시 하얗게 물들었어요.
온통 흰 꽃들로 일렁이는 꽃밭 위로 오랜 꿈을 꾸고 나온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어요. 번데기가 되는 게 두려워 평생 말랑말랑한 애벌레로만 살고자 했던 꾸미였죠. 그때 꾸미의 찬란한 날갯짓을 본 흰 목화꽃 한 송이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어요.
”저는 분홍색으로 물드는 게 두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