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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의 계절

by 깨단

그날의 나는 겨울과 봄 사이,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바람은 차가운데, 햇빛은 따갑고, 공기는 버석버석 마르고. 저마다 제각각인 사람들의 옷차림만큼 마음도 마구 뒤섞인 이상한 계절이었다. 작년 겨울, 누구보다 바쁘고 힘든 연말을 보냈음에도 정규직 전환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고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당연하게 비워진 내 자리와 통장 잔고를 보면 한숨만 나오는 일상에 내 마음은 겨울지나 봄이 아닌 또다시 겨울이었다. 가파른 원룸촌 오르막을 꾸역꾸역 오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건너편 주택에 살던 부부가 이사를 가는지 오래된 수납장이며 의자 따위의 짐들이 마구 버려진 자리에 꼭 나 같은 화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희끗하게 지워진 이름표에 적힌 글자는 ‘라벤더’였다. 물도 빛도 없이 방치하다시피 기르다 버리고 갔는지 바싹 마른 흙에 줄기는 얇고 곧았다. ‘나 하나 키우기도 절절매는 와중에 무슨 식물까지...’하면서도 손을 뻗어 화분을 들어 올렸다. 작은 은빛 털로 뒤덮인 라벤더 잎이 대답이라도 하듯 반짝거렸다.



덥석 집어 온 라벤더라도 제대로 키워보고 싶은 생각에 이것저것 검색하다 알게 된 사실은 이랬다. 라벤더에게 환절기는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모드를 전략적으로 바꾸는 시기였다. 생명의 리듬을 계절에 맞춰 조절하며 성장을 멈추거나 오히려 새롭게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 겨울의 라벤더는 잎의 크기를 줄이고 표면에 털을 만들어 수분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뿌리는 아래로 더 깊게 내려보내 양분을 저장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용을 쓰며 살아남는다. 추운 겨울을 버텨내는 ‘버티기 모드’에 돌입하는 것이다. 라벤더에게 환절기는 생장을 잠시 멈추고 생존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겨울을 버티다 봄이 오면 기온이 올라가고 일조량이 증가하면서 새순과 눈꽃을 틔우며 다시 생장 모드로 돌아가면 된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그 얇고 곧은 라벤더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마음속 무언가를 깊게, 그리고 조용히 가라앉혔다. 수없이 스스로 질책하던 말들, 남과 나를 비교하며 쌓아 올린 불안들, 당장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까지. 매일의 나를 휘감고 있던 그것들을 그냥 깊숙이, 그리고 천천히 내려보내자 내게도 뿌리가 생긴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용을 쓰며 버틸 힘을 가진 라벤더의 것과 같은 뿌리. 바람은 차가운데 햇빛은 따갑고 공기는 버석버석 마르는 봄도 겨울도 아닌 오늘을 나도 그렇게 버텨보기로 했다. 내 안의 양분을 차곡차곡 저장하며 아래로, 아래로 질긴 뿌리를 내리다 보면, 어느새 이 이상한 계절을 걸어 나가 새순과 눈꽃을 틔울 완연한 봄이 올 것이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북향의 원룸이지만 창가에 놓은 라벤더를 올려다보며 나는 이렇게 적었다. '누군가는 잎을 작게 줄이고, 누군가는 뿌리를 깊게 내리며 그저 버티고 살아 내면 된다고. 그리고 그걸 가르쳐준 건 작은 화분 하나였다'고. 라벤더 줄기는 여전히 가늘었지만 어딘가 단단한 기운이 있었다. 혼자인 줄 알았으나 내내 같이 버티고 섰던 뿌리의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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