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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영 Jan 06. 2019

[17도] 잃어버린 노천극장에 대하여

술꾼

 학교에 가고 싶다. 노천극장 다섯째 칸 어딘가에 앉아서 맥주 한 캔을 딸 때면 건너편 두 번째 칸 정도에는 항상 기타를 들고 영어로 된 노래를 부르는 누군가가 있었다. 밤은 깜깜했고, 도서관에서 나오는 불빛과 극장 바닥 조명에서 나오는 빛들이 별보다 밝았다. 그땐 사는 게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누가 학생 때가 좋다고 했는지 만나면 쥐어박고 싶을 만큼 미웠다. 진로가 정해지지 않은 불안함은 어떤 안주보다 술을 찾게 만들었다. 잘못하면 평생 내 몫을 하지 못하며 존재 자체가 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가던 길도 자꾸만 멈춰 서게 했다. 


 그래서 날이 선선한 날들에는 도서관 뒤편에서 플라스틱 잔에 담긴 크림생맥주 두 잔과 감자튀김 스몰을 사서 손에 들고 극장에 앉았었다. 언제나 칠리 혹은 갈릭마요 소스를 위태하게 얹은 상태로. 그러면 찾던 술도 손에 있고, 걷고 있지 않아 멈춰 설 필요도 없으니 괜찮아졌다.


 나는 학교가 미워서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다. 학교 바로 뒤편 고시텔에 누워있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근데 반지하에 가까웠던 그 노천극장이 없어졌을 때는, 슬펐다. 거기서 더 많이 앉아있을걸, 더 많은 크림생맥주를 비우고, 더 많이 불안해할걸. 혼자라도 앉아있어야 했다. 귓등을 스치는 바람을 맞으면서 가끔 코드가 엇나가는 기타소리를 듣는 게, 몇 백원이 아까워 미디움이 아니라 스몰로 샀던 감자튀김을 반씩 베어 먹는 게 건조한 대학시절의 유일한 낭만이 될 거라는 걸, 그땐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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