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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눈빛으로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바라봐주길 바라는 그런 눈빛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푹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쓰는 돈과 시간으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스킨십이나 연락의 빈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직관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있다. 그녀는 원래 그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알 수밖에 없었다. 그를 보면 너무나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는,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바라봐주길 바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본다. 그는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의 히스레져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본다.





그는그녀를 만나러 다시 부산으로 갔다. 그는 400km를 운전해서 가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다. 오히려 그가 힘들까봐 그를 걱정해주는 그녀가 걱정된다. 그는 운전하는 내내 한가지 생각만 한다. 어떻게 고백할까. 원래 남자는 여자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한 날, 하루종일 어떻게 고백할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원래 남자는 그렇다. 그는 그녀와 만나기로 한 공원 입구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그는 기다리는 동안 한가지 생각만 한다. 어떻게 고백할까. 그녀가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인다. 그는 드디어 다른 생각이 들었다. 와, 너무 이쁘잖아.


그와 그녀는 공원을 함께 걸었다. 그들은 천천히 여유로운 속도로 걸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계절마다 보는 영화가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봄에는 플립, 여름에는 어바웃타임, 가을에는 이터널 선샤인, 겨울에는 러브 액츄얼리. 그녀는 계절에 한번씩 영화를 돌려보며 감동을 다시 받고 눈물을 흘린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척 하지만, 어떻게 고백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서 그녀의 영화 취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는 몰랐다. 앞으로 평생 영화의 대사를 다 외울 지경으로 그 영화들을 반복해서 보게 될 줄. 그리고 해마다 감동을 받으면서 그녀가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을 옆에서 조용히 닦아주게 될 줄.




그녀는 걷다가 그물 놀이터를 발견한다. 그녀는 그물 놀이터를 볼 때마다 들어가서 놀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니 성인은 입장이 제한된다는 표지판을 보고 아쉽지만 늘 몸을 틀었다. 그는 그녀에게 들어가서 놀자고 제안했다. 그게 뭐 그리 어렵냐고, 그렇게 아쉬운데 왜 안하는 거냐고. 그는 'Why not?' 문장을 의인화한 그 자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해는 졌고, 그물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이 닫혀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냐는 그녀의 질문에, 인간 와이낫은 그 당연한 걸 물어보기까지 하냐는 듯이 대답했다.

"담을 넘으면 되지."


그녀는 한번도 담을 넘어본 적이 없다. 그녀는 일탈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이성이 감성을 뛰어넘는 사람이다. 그녀는 늘 아쉬워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물 놀이터를 지나치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를 그는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부추긴다. 월담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받침대를 찾고 그녀 앞에 깔아준다. 응원해준다. 뒤에서 밀어준다. 그는 꾸러기처럼 개구지게 웃는다. 꾸러기 웃음은 곧 그녀에게 전염된다. 그녀는이제 일탈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원래 일탈은 혼자서는 힘들지만 파트너가 있다면 훨씬 쉬워진다. 그는 좋은 일탈 파트너다.


사람들은 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았더라, 재밌게 잘 살았나 생각해보는 기회와 반드시 마주치게 된다. 그때 추억이 풍요로운 사람은 인생 재밌게 잘 살았다며 행복감을 누릴 것이고, 추억이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지루하게 살았다는 사실 때문에 후회할 것이다. 가슴에는 피가 철철 흘러내릴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풍요로운 추억은 주로 일탈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와 함께 월담해서 그물 놀이터를 방방 뛰어다니며 어린 아이처럼 놀았던 소소한 일탈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훗날, 그에게 평생의 숙원사업을 이루었다며 고맙다고 그를 안아줄 것이다. 그녀는 그날 담을 넘었다. 원래 담이란 게 처음이 어렵지 다음부턴 쉽다.




그들은 그물 놀이터에서 실컷 뛰어놀다가 벤치에 앉았다. 그녀는 해사하게 웃으며 모든 게 신기하다고 했다. 라오스에서 만난 그와 월담을 하고 뛰어놀 줄이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접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남이었는데. 그녀는 그에게 물었다.

"너는 좋은 남자야?"

그는 막 웃다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응. 나같은 사람이 좋은 남자라고 그랬어."

"누가?"

"전부 다."

그녀는 막 웃었다. 그런데 여전히 진지한 그가 역습한다.

"너는 좋은 여자야?"

그녀는 막 웃지 않았다.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그녀는 천천히 대답했다.

"원래는 좀 부족했어. 되게 어리게 굴었었는데 많이 성숙해졌어. 이제는 좋은 여자에 가까워진 것 같아."

그는 그녀를 향해 해사하게 웃었다.


그가 웃자, 그녀는 직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가 그녀에게 푹 빠졌다는 것을.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푹 빠졌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눈빛이라는 것을. 그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바라봐주길 바라는 눈빛이었다. 그녀는 도무지 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새치기 당했다며 웃었다. 그리고 그도 그녀가 좋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제 연인이 되었다. 그는 더이상 어떻게 고백할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이제 그녀의 남자친구라는 사실에 세포 하나하나에 행복이 퍼진다.


그녀는 벤치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앉아있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한다.

"손!"

그는 펄떡 튀어오르면서 말한다.

"벌써!?"

 그는 인간 와이낫이지만, 은근히 쑥스러움을 많이 탄다. 그녀는 원래 쑥스러움이 많지만 남자친구에게는 타지 않는다. 그가 손을 조심스럽게 주자, 그녀는 그 손을 와락 잡는다. 그녀는 손 잡는 걸 좋아한다. 손을 잡은 채로 20보 정도 걷자, 그는 잠깐만 손을 놓자고 한다. 그녀는 그를 올려보며 왜? 하고 묻는다. 그는 심장이 터질 것 같으니까 잠깐 심호흡 좀 하고 오겠다고 한다. 그는 후다닥 뒤돌아서서 뒷짐지고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쪼르르 그녀에게 돌아왔다. 그는 그녀와 사귀는 게 너무 행복하지만 심장에는 좀 무리가 많이 간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다시 걷는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무화과를 좋아하는데, 일년 중에 딱 이맘때만 무화과가 나와서 꼭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가 와이낫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일 또 만나자며 그녀의 집 앞으로 그녀를 데려다 주었을 때, 그는 무화과 한 박스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손 잡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무화과 박스를 드느라 손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팔짱을 낀다. 그는 펄떡 튀어오르면서 말한다.

"벌써!?"

그는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라며 심장이 너무 아프다고 울면서 웃는다. 그는 그녀와 사귀는 게 너무 행복하지만 심장에는 해롭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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